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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Apr 25. 2024

사할린에 핀 벚꽃

<단편 소설. 2, 3>

2.      

 “만수 있는가?”

 집 뒤란에서 장작을 패던 만수는 놀랐다. 조만간 닥칠 일이었다. 만수는 도끼를 소나무등걸에 꽂아놓고 마당으로 나왔다. 동네 이장 박 씨다. 삽짝 옆에 서 있던 박 씨는 뒷짐을 진채 거들먹거리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만수는 오금이 저렸다. 일본인 밑에서 형사노릇을 하는 박 씨의 형이나 박 씨나 사천왕보다 무서운 존재였다.  

 “요새 밥이나 묵는가? 자네한테 돈 벌 길이 열렸는데 어떤가? 솔깃하지?”

 박 씨는 능청스럽고 은근하다. 박 씨는 잡은 쥐를 앞에 놓고 요리조리 굴리는 고양이의 눈으로 만수를 뜯어봤다. 만수는 중키에 다부진 몸매였다.  

 “뭔 일인데 예? 돈벌이가 좋다면 몽구 보내지 와 접니꺼?”

 “우리 몽구를 보내도 되지만 조 대감 댁에서 니를 보내모 좋것다 쿠네. 조대감 댁 도련님이 한양에서 공부 하들 안 능가. 그 도련님이 나라의 부름을 받았다네. 황국 신민으로서 흥감한 일이지만 우짜것노. 4대 독자에 약골이니 못 보내게 된 겨. 조 대감이 큰 맘 묵고 아드님 대신 갈 청년을 구한다네. 자네 사정이 딱해서 말씀 디렸네. 갈랑가? 자네는 일본 대기업 군수공장에서 일하게 될 게야. 매달 봉급도 나온다니 아니 좋은가?”

 “며칠 말미를 주이소. 엄니한테 말씀 디리 보것거마요.” 

 “그려, 결정되면 내 섭섭지 않게 해 줌세.” 

 박 씨는 만수의 어깨를 툭툭 치며 친한 척은 혼자 다했다.   

 만수도 알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나라 안팎이 술렁거렸다. 1937년 일본은 중국을 침략했다. 1940년 5월부터 조선인 징병제도가 실시된다는 소문이 지리산 골짝까지 퍼졌다. 조선의 청년들은 강제 징집 당해 전쟁터로 가거나 일본 군수품 공장과 탄광촌으로 가고, 처녀들은 정신대로 차출되어 군수공장이나 탄광촌의 위안소로 보낸다고 했다. 일제 강점기는 일본인보다 일본인을 등에 업은 한국인이 더 무서운 세상이었다. 만수는 멀어져가는 박 씨의 등을 향해 침을 탁 뱉으며 중얼거렸다. 

 “이런 밀어먹을 세상, 안 간다면 무슨 수작을 부리든지 순사한테 끌려가 매타작 당해 죽을 끼고 간다면 개죽음인데. 우리 엄니랑 순임이는 우짜노.”

 이미 박 씨에게 찍혔으니 피할 방법이 없다. 도망을 친들 어디로 가겠나. 불통은 어머니와 어린 아내에게 튈 텐데. 분명 낌새를 보니 조 대감이 박 씨에게 몇 마지기 논문서를 주며 아들 대신 몽구를 보내라고 했을 것이다. 박 씨는 징병제에 끌려가면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아니 만수를 택했을 것이다. 민수는 뒤꼍으로 돌아갔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났지만 내 맘대로 되는 세상이 아니지. 저 인간이 저거 아들 대신 나를 죽으로 가라니. 돈 준다고? 취직 시켜 준다고? 누가 그 말을 믿어. 이런 개 같은 세상.’ 만수는 씩씩대며 장작을 내리 찍었다. 

 그러나 만수는 어머니와 아내를 생각했다. 무슨 짓을 해서든 돈은 벌어야겠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이 참에 세상구경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만수는 홀어머니에 민며느리로 들어온 14살 어린 아내가 있다. 나라에서 처녀를 차출한다는 바람에 물 한 그릇 떠놓고 올린 혼례식이었다. 합방도 못했다. 

 “야야, 한 삼 년만 키우모 합방 시켜 줄낑께 지달리거라. 그동안 에미가 끼고 자꺼마.”

 스무 살의 만수는 콩 각시 같은 순임이가 예뻤다. 하루빨리 합방하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어머니는 3년을 기다리란다. 3년 동안 일본에 다녀와도 될 것 같다. 돈도 벌 수 있다. 박 씨도 섭섭지 않게 해 준다 했으니 각서라도 받아놓고 가 볼까. 만수는 외아들이라 강제동원령에 따를 필요가 없다. 군 입대도 면제 받았다. 만수가 몇 년 집을 비워도 어머니와 순임은 굶어죽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고부간에 부지런하고 손재주가 좋았다. 고부간에 길쌈도 하고 산나물도 뜯어 팔았다. 예나 지금이나 농촌이나 산골은 부지런한 사람은 산다. 풀뿌리라도 캐 먹을 수 있으니 도시 빈민에 비하랴. 만수는 마음을 정했다.     

 

 3.       

 지리산을 떠나는 날이다. 박 씨는 새벽 댓바람부터 마루에 앉아 지켰다. 만수가 도망칠까봐 지키는 것이다. 만수는 옷 몇 벌을 싼 보퉁이를 등에 졌다. 등짐 안에는 순임이가 만든 주먹밥이 들어 있었다. 이별은 짧을수록 좋다. 

 “엄니, 다녀오겠습니더. 순임아, 서방님 댕겨 오께. 엄니랑 잘 있어.”

 “오메랑 아짐씨는 걱정 말어. 내가 잘 모실 텡게. 살아서 돌아오게. 봉급은 꼬박꼬박 자네 엄니한테 챙겨 드릴 텡게. 천황폐하를 위하는 일인데 가문의 영광이지. 아암 그렇고말고.”

 “아재, 울 엄니랑 우리 순임이 잘 부탁합니더.”

 “그럼, 그럼. 내가 돈 벌게 해 준 거 잊지나 말게.”

 박 씨는 생색을 냈고 어머니와 순임은 눈물콧물 바람으로 만수를 배웅했다. 

 만수와 박 씨는 시장 통에 닿았다. 파출소 앞에 군용 트럭이 서 있고 박 형사가 인원 점검을 했다. 덕산 면에서 그날 만수랑 같이 동원된 인원은 열 명이었다. 이십 대였고 머슴살이나 소작농의 아들이었다. 이장은 자발적이라고 하나 강제 동원된 사람들이었다. 지주 아들 대신이거나 주인 아들 대신이었다. 그들은 일본 군수품 공장이나 탄광촌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만수에게 몽구라는 이름표가 새겨진 작업복 한 벌을 받았다. 만수는 고국을 떠나는 순간 아버지가 준 이름을 버리고 남의 이름으로 살 것을 생각하니 착잡했다.  

 트럭은 출발했다. 만수는 멀어지는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봤다. 아홉 봉오리 아래 골을 따라 내려오던 눈길은 실골에 멎었다. 만수는 눈물을 흘렀다. 어머니와 순임을 다시는 못 볼 것 같았다. 덕천 강은 도도하게 흐르고 지리산을 품은 산천은 푸르고 아름다웠다. ‘내 꼭 살아 돌아오리라.’ 만수는 다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 낼 것이다. 남의 나라에서 개죽음은 당하지 않으리라. 이를 악물었다. 

 부산항에 닿았다. 부산항은 조선인과 한국인들이 섞여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일제의 침략으로 조선은 이미 사라지고 일본의 식민지가 된 지도 오래 되었다. 국호도 바뀌었다. 대한제국, 지리산 오지에서 살아온 만수에게 그곳은 요지경이었다. 비단옷을 입은 선비와 칼과 총을 찬 순사들, 서양 옷을 입은 사람들과 보퉁이를 들거나 메거나 이고 있는 한복을 입은 추레한 사람들이 뒤섞여 있다. 풍경은 낯설고 두려움을 컸다. 

 양복을 입은 인솔자가 나타났다. 관부연락선을 탈 것이라 했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잇는 정기 연락선이라 했다. 관부연락선, 일본이 한반도 침략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긴 배, 수많은 한국인이 징용으로 끌려갈 때도 그 배를 탔고, 일본인의 수탈에 농토를 잃고 살길을 찾아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이 그 배를 탔다. 일본 앞잡이 모집책의 감언이설에 속고 만수처럼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온 사람들이 타고 갈 배였다. 더럽고 지저분한 항만에 군용 트럭은 끝도 없이 도착하고 젊은 청년들과 처녀들이 보퉁이 하나씩 들고 잔뜩 겁먹은 얼굴로 트럭에서 내렸다. 그들은 일렬종대로 줄을 서서 배타는 출구로 나갔다. 

 출구를 빠져나오자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만수는 코를 막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커다란 배가 바다에 떠 있었다. ‘우리가 타고 갈 배가 저건 가베. 와따 엄청 크다.’ ‘니 내 꼭 붙잡아라. 이자삐모 못 찾것다.’ 술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만수는 처음으로 바다를 봤다. 저기를 헤엄을 쳐서 건너올 수 있을까. 만수는 덕천 강에서 갈고 닦은 수영실력을 생각했다. 군수품 공장이라지만 강제 노역이나 하겠지. 여차하면 토끼는 것이 상책이다. 낚시꾼은 잡은 물고기를 쉽게 놓아줄 리 없었다. 만수는 잡힌 물고기 신세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자 한 줄로 쭉 서십시오.”

 인솔자가 승선 구에 서서 한 사람씩 이름을 확인하고 배에 태우는 중이었다. 어떤 청년이 도망을 쳤다. 어디선가 호각소리가 났다. 순사들이 튀어나왔다. ‘저 놈 잡아라.’ 외치며 달려갔다. 순사들이 뒤쫓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총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인솔자의 목소리가 강압적으로 변해 울렸다. ‘당신들은 선택받은 조센징이다. 황국신민이 된 것을 감사하라. 도망자는 누구나 저 꼴이 된다.’고 외쳤다. 

 뱃고동이 길게 울었다. 손수건을 흔드는 사람들, 울고불고 하는 사람들, 희망에 들떠 돈 벌어 오겠다고 소리치는 사람들, 아비규환도 잠깐이고 배는 서서히 뭍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만수는 일행과 함께 3등 객실에 배정되었다. 둥근 창이 있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만수는 구석에 가서 쭈그리고 앉았다. 집을 떠난 것이 후회되었다. 다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일단 부딪혀 보자. 어디 가서 어떤 일을 하든지.’ 만수는 이를 악물었다. 산자는 말을 해도 죽은 자는 말을 할 수 없다. 산자가 되어야만 한다. 

 배는 길고 긴 시간을 바다 위에 떠 있었다. 긴 뱃고동 소리에 잠을 깼다. 갑자기 갑판 쪽에서 함성이 터졌다.  

 “일본 땅이다. 저기가 일본 땅이래.

 “시모노세끼 항이래.

 “우리는 어디로 가노?”

 “북해도 탄광이라 카더라.”

 만수는 갑판에 나와 일본 땅을 봤다. 항만 주변이 온통 벚꽃이 피어 있었다. 일본 땅에 내리자 한국인 인솔자는 일본인 인솔자에게 만수 일행을 넘겼다. 조선인 반장은 각자 이름을 불렀다. 너는 유바리, 너는 비바이, 너는 소라치, 너는 가와카미 등으로 분류되었다. 만수는 북해도 최북단에 있다는 가와카미 탄광으로 배정 되었다. 만수는 창 씨 개명 한 아라이 몽구가 되어 북해도로 향했다. 시모노세키 항에서 북해도 탄광까지 머나먼 여정이었다. 망망대해가 보이는가 하면 아담한 촌락이 보이고, 울창한 밀림이 보이는가 하면 화려한 꽃길이 이어졌다. 사쿠라, 벚꽃이었다. 만수는 꽃을 가슴이 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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