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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y 05. 2024

울릉도 가족여행

<돌아오는 길>

 나흗날, 돌아오는 길      


 울릉도 마지막 조식을 느긋하게 즐겼다. 외진 해안선 비탈에 있는 숙소였지만 관광객이 제법 붐볐다. 고릴라를 닮은 바위산을 바라보며 아침을 먹었다. 차와 커피를 마시고 주변 경치를 마음에 담으며 짐을 챙겼다. 오후 3시 30분에 저동 항에서 울진 후포 항으로 가는 크루즈가 예약되어 있었다. 바다가 잔잔해서 좋았다. 강풍이 불면 어쩌나 지레 걱정 했었다. 입항 하는 날 배 멀미로 혼이 났기에 미리 멀미약도 준비했다. 


 울릉도에서 유명한 따개비 칼국수 집을 찾아 들었다. 줄을 서야 한다는 칼국수 집이지만 점심시간을 피해 갔더니 한산하다. 따개비 칼국수는 소문만큼 감칠맛이 났다. 점심을 먹고  독도 박물관을 관람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에 올라 바다를 둘러봤다. 아슬아슬한 전망대에 서서 망원경으로 멀리 독도를 봤다. 직접 가 보진 못했지만 눈으로 도장을 찍었다.  이 섬에 또 올 수 있을까. 자신 없지만. 섬에서 보낸 사흘간의 기억은 평생을 가리라. 남매의 보살핌 없이는 힘든 여행이다. 남매는 벌써부터 내 칠순에는 어디로 가면 좋겠느냐고 여행 계획을 묻는다. 애들 기 꺾일까봐 자신 없다는 말을 못하겠다. 이번에도 사실 자신 없었다. 내가 섬 여행을 다녀올 수 있을까. 불안했다. 안 먹던 약부터 챙겼었다. 나 때문에 승용차를 배에 실었었다. 세 사람의 보호자 덕에 낯선 땅, 낯선 잠자리에 잘 적응했지만 남매를 힘들게 하지는 않았는지. 


 드디어 배를 탔다. 멀미약을 미리 먹은 탓인지. 침대칸이라 편하게 누워 올 수 있었고 텔레비전으로 영화 <메가노돈> 한 편을 보고나니 바다 한 가운데 있었다. 배 위에서 낙조를 봤다. 붉은 해가 바다 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지켜봤다. 장엄하다고나 할까. 어떤 생각도 없이 빨려 들었다. 타원형의 수평선을 물들이는 노을은 바라만 봐도 가슴이 벅찼다. 무념무상으로 바라보는 바다. 붉은 해는 서서히 은회색 구름 사이로 가라앉고 수평선과 맞닿은 하늘은 불그스름하게 물이 들었다. 장관이었다. 남는 게 사진이라든가. 사진도 많이 찍었다. 이젠 사진 찍는 것도 벅차다. 마음속에 그림 한 장 새겨 놓으면 되는 일인 걸.  


 후포 항에 내리니 밤 8시가 넘었다. 바로 출발했더니 저녁 먹을 곳이 없었다. 중간에 휴게소 편의점에서 딸이 라면을 사서 끓여 주었다. 물을 붓고 라면을 끓이는 기계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주먹밥은 전자레인지에 데우면 됐다. 세상은 날로 달로 빠르게 변화하는데 거기 맞춰 갈 수 없는 나는 뒤처지는 노인이었다. 어쩌랴. 지나가는 것은 지나가도록 두는 것이 삶이다. 남은 나날은 바라보는 것도 힘에 겨운 시기가 오지 않을까. 편의점에서 끓여 먹는 라면은 별미였다. 울릉도 깊은 골짝의 정자에서 끓여 먹은 라면 맛에 비할까마는.


 자정 무렵 집에 도착했다. 집은 무탈하다. 나흘간 비운 마당의 잔디가 파랗다. 나흘인데 계절의 변화가 확 눈에 들어왔다. 마당의 풀은 자랐고, 텃밭의 감자도 싹이 돋아 파릇하다. 우리가 없는 사이에도 집은 저들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는 뜻이다. 외로웠던 보리가 낑낑 우는 소리를 하며 꼬리를 흔든다.


 미안하다. 보리야. 그래도 네가 집을 잘 지켜 줘 고맙구나.

 남매에게 참 많이 고맙다. 

       202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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