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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y 10. 2024

아나, 끽다거

아나, 끽다거     


 작가의 역량을 느낄 수 있는 책을 읽었을 때는 읽고 난 후에도 오랫동안 그 책에 빠져있다. 고아 노든의 『위대한 영혼의 주술사』가 그렇다. 새 소설 기리노 나쓰오의 『얼굴에 흩날리는 비』를 잡았지만 몰입이 덜하다. 작가의 혼을 살라 쓴 작품은 독자의 혼도 빼앗는 것 같다. 다시 읽고 싶어질 만큼 나는 강하게『위대한 영혼의 주술사』에 빠졌었나보다. 


 날은 흐리고 숲은 초록으로 청량하다. 까마귀가 며칠 째 사랑채 주변을 빙빙 돌면서 우는 바람에 신경이 쓰였다. 알고 봤더니 그 곳에 까마귀 깃털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어리바리한 까마귀가 들 고양이에게 잡혀 주검이 됐던 모양이다. 우짖는 까마귀들의 동료였을까. 새끼였을까. 농부는 까마귀 깃털을 모아 치워주었다. 덕분일까. 까마귀 우는 소리가 멀어졌다. 


 창문을 닫아놔도 거실 바닥에 깔리던 송홧가루를 막을 수가 없다. 그나마 잦은 비덕에 말마다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바람이 불어 송홧가루가 날리기 시작하면 골짝 전체가 뿌옇게 변해 꼭 연기 같았는데. 비가 씻어 내려주니 숲은 맑은 초록으로 반짝이고, 흰 꽃들이 사방에서 핀다. 불두화에 이어 이팝나무가 포문을 열었다. 옆에 있는 은행나무를 따라 곧게만 자라던 나무에서도 밥풀 닮은 꽃송이가 뚝뚝 떨어진다. 


 농부는 감꽃 솎으러 가고 나는 이틀을 발효시킨 황차를 꺼내 바람을 쐰다. 녹차나 황차 만드는 것은 정해진 규칙이 없는 것 같다. 장인들에 의해 각자가 터득한 방법으로 맛을 낸다. 똑 같은 재료로 반찬을 만들어도 주부의 손맛에 따라 반찬 맛이 다른 것처럼 차도 그런 것 같다. 내가 만든 덖음 차나 발효차 역시 나만의 솜씨다. 물론 처음에는 차를 만드는 과정을 공부했다. 여기저기 발품도 팔았고, 선지자들 차 덖는 방법을 엮은 책도 봤었다. 기본을 익힌 후에는 차를 만드는 공정 과정을 내 식대로 하게 됐다. 차를 덖는 방법을 반복하다보니 몸에 배는 게 있는 모양이다.


 황차 맛이 어떨지. 지난해는 황차가 맛있었다. 덕분에 꽤 많이 발효시켰던 황차가 먼저 소비됐다. 물론 몸을 차게 하는 녹차보다 황차나 보이차를 즐기는 농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선물 들어온 중국 백차를 마셨다. 몇 십 년 된 보이차도 먹는다. 차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차다. 덕분에 차를 즐기는 손님이 오면 느긋하게 풀어져 만포장이 된다. 예전에는 아침 먹고 나면 농부와 마주앉아 차를 마셨지만 지금은 가끔이다. 차보다 커피에 길들어서 그럴까. 간단하게 마실 수 있어서 편한 것일까. 


 나는 머슴차를 즐긴다. 큰 컵에 차를 담아 물을 부어 우려 놓고 들며나며 마시길 즐긴다. 분위기 잡는 차보다 편하게 음료수처럼 마신다. 차는 여유와 분위기로 마셔야 제 맛이 난다지만 나는 폼 잡고 마시는 차에 거부감이 있나보다. 오히려 혼자 마시는 차가 달다. 올해 내가 만든 황차 맛이 어떨지. 내일쯤 환한 햇살이 났으면 좋겠다. 발효된 황차를 그늘에 널어 바싹 말려야 한다. 그 틈새에 자연발효도 가미된다. 마지막 갈무리를 한 후에야 맛볼 수 있지만 차 맛을 기대하긴 어렵겠다. 귀찮아서 대충 했으니까. 


 『위대한 영혼의 주술사』에 얼마나 깊이 빠졌든지 왼쪽 눈이 쏙 빠질 뻔 했다. 눈이 벌겋게 충혈 되고 아팠다. 그 침침한 눈으로도 책을 덮지 못했다. 자잘한 글씨체의 두툼한 상하 두 권을 다 읽고서야 긴장을 풀었다. 며칠 동안 눈을 혹사한 덕에 또 며칠을 고생했다. 수시로 소금물 소독을 하고, 잠잘 때마다 안연고를 넣고 잤다. 푸른 숲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도 했다. 경직된 눈의 근육에 마사지도 하면서 머릿속을 비우려고 애썼다. 덕분일까. 사흘만에야 겨우 사물이 제대로 보인다.


 기리노 나쓰오의 『얼굴에 흩날리는 비』는 설렁설렁 읽히는 책이라 시신경에 무리는 안 갈 것 같다. 숲에서 꺼병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반갑다. 알을 깨고 나온 꺼병이가 어미 까투리를 따라 숲 속 산책을 나는 모양이다. 병아리 우는 소리와 같다. 들 고양이의 표적이 되지 말아야 할 텐데. 은근히 신경이 쓰여 자꾸 소리를 좇는다. 차밭 언저리에서 나는 것 같다. 제법 여러 마리지 싶다. 보통 대여섯 마리가 종종걸음으로 어미를 따르는데 그 중 몇 마리나 살아남아 장끼와 까투리가 될까. 


 자연에서는 삶과 죽음이 참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 같다. ‘잘 죽어야지.’ 농부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새나 산짐승이나 잘 살다 잘 죽는 것 같은데 유독 인간만 잘 죽기가 어려운 것 같다. 어떻게 해야 잘 죽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잘 사는 것이 잘 죽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싱긋 웃을 때가 있다. ‘잘 사는 게 뭔데.’ 묻고 싶기 때문이다. 


 황차를 소쿠리에 펴서 음식 냄새가 배지 않을 서늘한 그늘에 널어놓고 아직 덜 마른 찌꺼기를 거두어 차를 우렸다. 떫은맛도 안 나고 맑은 맛이 난다. 바짝 말린 후에 며칠 숙성시킨 뒤 먹어보면 제 맛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차를 마시면 정신이 맑아져 좋다. 피곤도 가신다. 오줌도 잘 나온다. 그래서 머슴차를 만들어놓고 마시길 즐긴다. 오랫동안 차를 마셨는데도 나는 차 맛을 잘 모른다. 차 한 잔에 마음이 맑아지고 눈빛이 맑아지면 얼굴색도 맑아진다는데. 그런 귀한 차 맛을 어디서 보나. 좋은 차 맛을 봐야 그런 차를 만들 욕심도 생길 텐데.


 차밭에 눈길이 머문다. 찻잎은 하루가 다르게 무성해진다. 입안에 고이는 달착지근한 맛을 음미하며 나는 또 찻잎을 따고 싶어 몸이 들썩거린다. 사월의 마지막 날 차밭을 보며 멍 때리기를 한다. 문득 내게 꿈이 있었던가. 꿈 생각을 한다. 꿈이 있긴 했다. 베스트셀러 작가를 꿈꾸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게 꿈이 있었던 것도 잊어버렸다.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텅 빈 마음으로 산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 속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복된 나날이 아닐까. 나는 나에게 ‘아나, 끽다거.’ 황차를 우린 머그잔을 내민다. 『얼굴에 흩날리는 비』속의 요코는 왜 사라졌을까.   

        202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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