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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y 27. 2024

대나무가 죽어간다

대나무가 죽어간다.  

   

 희한하네. 죽순이 없더라. 

 누가 먼저 꺾어 갔겠지. 죽순 철인데 죽순이 안 날 리 있어?

 날마다 살펴봐도 없어. 산죽 죽순은 짜드라 올라왔던데.

 철이 늦었나?


 아니다. 오월 초면 죽순이 올라올 때다. 지난해는 이맘때 날마다 죽순을 꺾어오는 농부에게 귀찮다고 툴툴거렸던 것이다. 죽순을 다듬어 삶아서 냉동실을 채우고 쇠고기나 돼지고기 볶음에도 넣고 죽순나물도 심심찮게 했었다. 죽순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도 죽순에 질릴 정도였다. 지금은 냉동실에 얼려놨던 죽순나물도 떨어졌다. 감산 가는 농부에게 부탁을 했었다. 죽순 철인데 대나무 밭에 죽순 올라왔는지 살펴보라고. 없더란다. 죽순 올라오는 것도 안 보이더란다. 설마? 나도 살펴보기에 이르렀다. 없었다. 


 무성한 대나무의 우듬지를 바라봤다. 대나무 꽃이 피었고 초록이어야 할 대나무 잎이 누리끼리하다. 죽어가는 대밭이었다. 대나무는 뿌리부터 썩는 것일까. 죽순이 안 올라온다는 것은 뿌리가 썩어 새 순이 발아가 안 된다는 뜻이 아닐까. 우리 고장의 대나무 밭이 하얗게 망해가는 것은 몇 년 전부터였다. 처음에는 주인이 대나무를 죽이려고 제초제를 친 줄 알았다.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자 사방에 널린 대나무 밭이 눈에 들어왔다. 희한하게 야생의 대나무 밭도 하얗게 죽어간다는 것을 간파했다. 


 대나무가 죽으면 나라에 큰 변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사람 살기가 팍팍해진다고 했어. 


 대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도 읽은 것 같고, 최명희의 『혼불』에서도 읽은 것 같다. 책에서 읽은 것보다 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가 더 실감 나게 떠오른다. 세상이 뒤집어질 낌새가 보이면 대나무에 꽃이 피고 죽는다고 했었다. 우리 집도 대나무 밭이 울창했었다. 죽순은 어려서부터 입에 익은 먹을거리다. 죽순을 삶아 찢어서 널어 말린 것을 물에 담가 볶아놓으면 그 쫀득쫀득 한 맛에 다른 반찬 필요 없었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엄마는 죽순을 삶아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일 년 먹을 찬거리로 보내주시곤 했었다. 그 울창하던 우리 집 대나무 밭도 친정 부모님 돌아가신 후 시나브로 망해갔다. 지금은 명색만 남았다.


 우리 지역만 아니고 경남 지역의 대나무 밭은 대부분 망해 가는 것 같아. 왜지? 

 왜 대나무가 죽을까? 대나무는 백 년 만에 꽃이 핀다거나 꽃이 피면 대나무가 죽는다는 말은 들었지. 수명을 다 한 건가? 대나무는 올곧은 선비정신의 대명사잖아. 사철 청청해야 할 대나무가 하얗게 변해 쓰러지는 것도 이상해. 어떤 조짐을 미리 알려주려는 의도는 아닐까? 나라가 하 수상하니 대나무 죽어나가는 것도 무심할 수 없네.  

 북한이 또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단다. 태국이 물에 잠길 위기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세계는 어지럽고 경제는 침체기다. 금값은 오르고 물가 역시 오르기만 한다. 사람 살기 팍팍해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 노인 인구는 늘고 젊은이는 줄고, 아이의 울음소리 귀해진 세상이다. 시집 장가 안 가는 것인지, 못 가는 것인지 헷갈리지만 부모들이 예전처럼 시집장가가라고 닦달하기보다 방치하는 수준이라 거, 혼돈스러워진 세상에 대한 경고인가. 불안한 사회, 불안한 삶, 불안한 마음을 대변하는 건가.  


 아파가며 산다는 노인 세대, 노인의 몸이 아픈 것은 당연한데도 안 아프고 싶은 마음, 건강하게 살고 싶은 마음, 천년만년 살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욕심이고 욕망이다. 의술이 좋아져서 병원이 쉼터 같고 약이 건강식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삼시세끼 밥 먹듯이 약을 안 먹으면 움직이기도 어렵다는 노인들, 약 기운으로 산다는 말이 자연스럽다. 구구팔팔이삼사라는 우스개도 한 물 갔다. 오래 사는 것 안 좋더라. 치매 안 걸리고 팔십까지만 살다 죽었으면 좋겠다. 육칠십 또래의 소망이다.       


 나는 밤만 되면 어깨와 무릎이 쑤신다. 겉으로는 멀쩡한데 속이 곪아간다는 증거다. 나잇살 느는 것은 환영받지 못하지만 인간의 정해진 길은 바뀌지 않는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사람은 하루가 다르게 늙어간다. 늙는다는 것은 잘 익어간다는 것이 아니라 삭아간다는 뜻으로 들려서 더욱 쓸쓸해진다.

 

 누렇게 뜬 대나무 밭을 바라본다. 현대 노인들도 저 대나무 같다는 생각을 한다. 기세 좋게 뻗어나가던 청정함도 한 때였다. 시나브로 죽어가는 대나무처럼 노인도 시나브로 죽음을 향해 길을 가고 있다. 가져갈 것도 남길 것도 없는 몸뚱이 하나 시나브로 삭아가고 있을 따름이다. 하얗게 변했던 대나무 밭이 어느 날 민둥산이  됐을 때 내 기억 속의 푸른 대나무 밭을 떠올리며 중얼거린다. 

 

 우리 모두 저렇게 갈 건데. 애달 복달하며 사는 이유가 뭘까.  

            202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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