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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Jun 07. 2024

새미골 아이

<단편소설. 1>

<단편소설>     

             새미골 아이     

1.


  우리 동네는 지리산 줄기에 있다. 연화산이라는 나지막한 산을 등에 지고 미끄덩하게 빠진 골짝 동네다. 새미골이다. 예로부터 물 맛 좋기로 소문났다. 그 새미골의 공동샘터는 흥미롭다. 동굴 같다. 장골 키 넘게 쌓아 올린 돌담과 여남 개의 돌계단을 내려가야 있다. 샘터 뒤편에는 늙은 고욤나무가 샘터를 껴안고 있다. 고욤나무의 뿌리가 샘의 바닥까지 깔려 있다. 샘은 디귿자 모양이다. 샘터 바닥은 반석이다. 샘은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른 적 없다. 맑은 물은 일정하게 차올라 넘쳐흐른다. 


 우리 집은 샘터 옆에 있다. 삽짝을 들어서려면 섶다리를 건너야 한다. 사람들은 우리 집을 대나무 집이라고 부른다. 6.25 전쟁 중에 태어난 내 이름은 명도다. 집안의 대를 이을 고추를 보고 싶은 욕심에 할머니가 지은 이름이란다. 할머니는 젊어서부터 오지랖이 넓었다. 거시기만 안 찼지 남정네 서넛 몫은 한다는 소문이 쫘했다. 그 할머니가 하필이면 내 이름을 명도라 지었다. 나는 그 이름이 싫다.


 “명도가 머꼬. 명도가? 큰엉가는 명자, 작은엉가는 명숙이, 나는 명희라 카제. 머스마 이름이라꼬 놀림받는다. 이름 바까도” 

 “와, 니 이름이 우때서. 밝을 明 길道 갈 길을 밝혀주는 이름인데 가스나한테 붙이기는 오감타. 할매가 역부로 신경 써서 준 이름잉께 니 이름대로만 풀어 무라.”

 “머스마들이 점 봐 도라꼬 놀린다카이. 할매 땜에 내 인생 조졌다.”


 할머니 앞에서 앙탈을 부리는 나는 일곱 살이다. 다섯 살도 되기 전에 글자를 깨친 영재란다. 위로 두 언니랑 예닐곱 살 터울이 진다. 덕분에 나는 할머니의 귀염을 독차지한 막내손녀다. 할머니 말에 의하면 칠성대왕님이 특별히 현몽해 준 귀하디 귀한 이름이 명도란다. 칠성대왕님이 잠깐 한눈 판 사이 톡 튀어나와야 할 부분이 쪽 찢어졌지만 어쩌겠느냐는 것도 할머니 말씀이다. 


 화가 난 나는 샘터로 달려간다. 엎드려서 물을 벌컥벌컥 마신 후 빨래터에 발을 담근다. 샘물은 여름에는 차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샘터의 반석 가운데는 적당한 홈이 파져 있고, 샘에서 넘친 물은 그 홈을 따라 도랑을 이루고 두 개의 웅덩이에 닿는다. 앞의 웅덩이는 푸성귀를 씻는 곳이고 뒤의 웅덩이는 빨래터다. 빨래터에서 넘친 물은 동네 가운데를 흘러 아랫녘으로 내려가 크고 작은 다랑이를 적신다. 그 샘터의 도랑을 경계로 비탈진 골목길이 있고 길 양쪽으로 열 가구가 산다. 집집마다 콩꼬투리 속에 든 콩알처럼 비슷한 또래 아이들이 자란다. 길과 맞붙은 집은 삽짝이 있지만 도랑 건너 집은 섶 다리가 놓였다. 섶 다리는 가마니 한 장 넓이다. 섶 다리에 앉아 다리를 대롱거렸다.


 “명도야, 니 또 할매 속 뒤집었나? 오늘은 구월 구일이다. 너거 할매 속 좀 고마 태우고. 오늘은 얌전히 있거라. 집집마다 제사가 있다 아이가. 부정 타모 안 되제.”

 나물거리를 씻던 못골 할머니가 말을 건다. 나는 벌떡 일어나 집으로 온다.

 우리 집은 미음자집이다. 안채와 마당이 있고 사랑채는 대문과 붙어 있다. 대문 옆에는 길이 있고 길옆에는 손바닥만 한 텃밭이 있다. 텃밭을 지나면 도랑이 있고 도랑 위에는 섶 다리가 놓여있다. 내가 아장걸음을 할 때 섶 다리를 건너다 발을 헛디뎌 샘터 도랑에 빠진 적이 있다. ‘칠성님이 받아 준기라. 그때 생각만 해도 간이 오그라든다.’는 할머니다. 

 “명도야, 새미에 가서 물 한 바가지 떠 온나. 칠성님이 목이 마르단다.”

 마루에 앉아 곰방대를 물고 있던 할머니는 삽짝에 들어서는 나를 다시 밖으로 내몬다.


 우리 집 안방에는 칠성당이 모셔져 있다. 북쪽 벽에 나무판자로 만든 선반이 있고 선반 위에는 작은 불상이 모셔져 있다. 불상 앞에는 물그릇과 쌀이 담긴 놋쇠주발이 놓여 있다. 물그릇에는 항상 샘터의 맑은 물이 담겨 있고, 쌀을 담은 놋쇠주발에는 초가 꽂혀 있다. 그 옆에는 몇 권의 염불 책이 놓여 있다. 할머니가 애지중지하는 염불 책이다. 연화사 노스님이 불자들에게 만들어 주신 것이었다.  


 첫새벽에 일어난 할머니는 동이를 이고 샘터로 가셨다. 세수를 하고 물을 묻혀 머리카락을 가다듬은 후에 동이 가득 물을 길어 왔다. 그 첫물을 칠성당에 올리고 촛불을 켰다. 비손을 끝낸 할머니는 아랫목에서 정신없이 곯아떨어진 나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해가 똥구녕에 솟았다. 퍼떡 일나래도.’ 마루에는 놋쇠로 만든 세숫대야가 놓여있고 차가운 물이 담겼다. 찬물에 손만 담가도 정신이 번쩍 든다. 찬물로 세수를 한 나는 칠성당 촛불 앞에 앉아 천수경, 반야심경, 법화경을 읽어야 했다. 까막눈인 할머니는 두루 백군이었다. 염불도 줄줄 잘도 외우셨다. 


 나는 샘물을 떠 왔다. 할머니는 칠성당의 놋그릇 주발에 새물을 담고 그 앞에 가부좌 자세로 조용히 앉았다. 나도 할머니 옆에 앉았다. 할머니는 반야심경을 건넸다. 읽기 싫었다. 웅얼거리다 슬쩍 색불이공 공불이색 할 것을 색불이색, 공불이공으로 읊었다. 철썩! 할머니의 투박한 손바닥이 내 등을 후려쳤다.

 “글자 아는 가스나가 눈으로 봄서로 제대로 못 읽나? 칠성님이 노하겠다.”

 중양절, 열에 아홉 집은 제사가 있는 새미골에서 내 하루는 염불 책 읽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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