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2>
2.
남자는 일주일 간격으로 다녀갔다. 점심때 첫 손님이거나 저녁때 마지막 손님이 되었다. 남자는 가끔 맥주를 시켜놓고 자작을 했다. 입이 무거운 사람이었다. 손님이 없을 때면 남자는 지혜의 잔을 채웠다. 빙그레 웃으며 지혜를 지긋이 바라보곤 했다. 가족사를 묻는 일도 없었다. 지혜는 가끔 맥주를 서비스로 제공했다. 또한 몇 가지 반찬을 통에 담아주곤 한다. 혼자 사는 남자는 어딘가 외로워 보인다. 남자는 지혜가 싸주는 반찬통을 말없이 들고 나갔다. 다음에 올 때 빈 통을 깨끗하게 씻어 반납하곤 했다. 맛있다거나 고맙다는 인사도 없었지만 몸짓에서 고마움이 느껴졌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그런 날은 공사판도 쉬었다. 공사판 인부가 없는 날은 점심시간에도 손님이 뜸했다. 저녁장사는 공치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은 일찌감치 장사를 접었다. 긴긴 겨울밤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지혜는 인근 도서관에 들러 소설책을 한 보따리 빌려 와 펴 놓고 읽거나 만화책을 빌려와 보곤 했다. 그날도 날은 흐리고 추웠다. 꼭 눈이 쏟아질 것 같은 날이었다. 지혜는 일찌감치 식당 문을 닫았다. 안방에서 만화삼매경에 빠졌는데 누군가 현관을 두드렸다.
오늘 장사 끝났습니다.
지혜는 안방 문을 빠끔히 열고 큰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 곰국 한 그릇만 주세요.
남자의 목소리였다. 지혜는 벌떡 일어나 식당으로 나갔다. 현관 앞에 남자가 떨고 있었다. 두 손을 비벼 볼에 대며 웅크린 모습이 어찌나 불쌍해 보이는지. 지혜는 잠가놨던 현관문을 열었다.
이래 추운데 오셨어요? 들어오세요.
지혜는 서둘러 거실 난로를 피웠다. 남자는 난로 옆에 앉았다. 파리한 얼굴이 금세 쓰러질 것 같았다. 지혜는 손님이 먹다 남기고 간 소주병을 찾아 잔술 한 잔을 따랐다. 남자는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남자가 난로에 언 손을 녹이는 동안 곰국을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고 반찬을 챙겼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곰국이 남자 앞에 놓였다. 남자는 곰국에 소금과 후추를 뿌리고 한 숟가락 떴다. 혼자 밥을 먹는 남자를 보고 있자니 왠지 가슴이 아렸다. 지혜는 남자 앞에 앉았다. 남자는 곰국을 먹다가 지혜를 바라봤다. 눈빛이 젖어 있었다.
고맙습니다. 이런 날은 혼자 있기가 힘들더이다. 방구들이 아무리 쓱쓱 끓어도 사람 온기가 그리웠어요. 갈 곳도 없고 생각나는 사람이 아주머니더군요. 염치불구하고 왔습니다.
집이 가까운가 봐요.
등 너머 골짝입니다. 그 골짝에 들어온 지 3년 만이군요. 몸이 아파서 요양 차 왔는데 겨울 지내기가 힘들군요.
겨울에는 가족 곁에 가시지 그러세요?
집 사람이 힘들어해서요. 안 보면 서로 편할 것 같아서 졸혼을 했습니다.
졸혼요?
법적으로 부부관계를 이어가되 현실적으로는 부부관계를 청산하고 각자 사는 것을 졸혼이라고 하더군요. 아내가 졸혼을 하자고 했어요. 이제 자기 뜻대로 살아보고 싶다고. 나도 그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직장생활하다 퇴직하고 겨우 둘만 남았을 때는 행복했어요. 젊어서 못 준 사랑을 듬뿍 주고 싶었지요. 그런데 덜컥 내가 병이 들었어요. 나을 수는 없고 조금 빨리 죽거나 조금 늦게 죽거나 차이만 나는 병이죠. 아내가 많이 힘들어하더군요. 그때 아내를 놔줄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헤어지자고 했지요. 아내는 반대하더군요. 아픈 나를 두고 떠날 수 없다고요. 애들 얼굴을 어찌 보겠느냐고. 남매가 있어요. 둘 다 가정을 꾸렸고, 손자손녀가 세 명이나 됩니다. 그러더니 졸혼을 하자고 했어요. 나는 요양 차 시골에 집을 마련해 들어오고 아내는 도시 집에 남기로 한 것이지요. 그렇게 됐어요.
남자는 묻지도 않은 가정 사를 단숨에 풀어놨다.
지혜는 술병과 잔을 챙겨 남자 앞에 앉았다.
졸혼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진짜 그런 생활을 하시는 분은 처음입니다. 몸도 아프신데 혼자 어떻게 견뎌요? 건강을 챙기려면 우선 음식부터 잘 드셔야 하는데. 혼자 먹는 밥은 서럽기만 한데. 반찬은 있어요?
처음에는 아내가 반찬 몇 가지 만들어 택배로 보내주더군요.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귀찮더군요. 먹는 것도 귀찮을 때가 있어요. 남은 음식 버리는 것도 힘들다고 그러지 말라고 했어요. 요즘은 아주머니 곰탕 덕에 기운이 납니다.
지혜는 남자와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셨다. 그 사이 식탁에는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놓이고 수육을 담은 냄비가 올려졌다. 냄비에서 구수한 곰국 냄새가 났다. 밤은 깊어가고 남자는 묵묵히 술병을 비웠다. 지혜는 초라한 남자의 모습에서 어떤 그림자를 본다. 건설현장으로 떠돌던 초로의 사내가 풍기던 끈질긴 외로움을. 지혜는 창밖을 바라봤다.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얀 눈꽃이 탐스럽다.
눈이 오나 봐요. 세상이 환해졌어요. 첫눈이네요.
눈을 좋아하시나 봐요.
여기선 귀한 눈이니까요.
남자는 지혜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지혜는 남자의 눈길이 부담스러워 창밖을 바라봤다.
눈이 펄펄 날리네요. 내일 아침이면 세상이 온통 새하얗게 변하겠어요.
아주머니도 혼자 사시는 것 같은데 사별 했어요?
남자는 조용히 물었다.
아니요. 헤어졌어요. 제가 원해서. 딸이 하나 있지만 먼 나라에 살아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술잔을 내밀었다.
우리는 둘 다 외로운 사람들이니 이 밤에 한 번 취해 봅시다.
아프다면서요. 술은 적당히 드셔야지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공수래공수거지요.
지혜는 남자를 바라보며 남편을 떠올린다. 첫 정이었다. 사람은 지나간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되새김질을 할 수 있어 추억이라 하고, 그것을 삶이라 한다.
지혜는 가난한 가정의 맏딸이었다. 아버지는 건설현장 노무자였다. 친 엄마는 세 살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재혼을 했고 배다른 동생이 줄줄이 태어났다. 지혜는 계모의 눈칫밥을 먹으면서 중학교를 졸업했다. 새엄마는 공장에 취직해서 동생들 공부 뒷바라지를 하라고 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었던 그녀는 가출을 감행했다. 집을 뛰쳐나오긴 했지만 갈 곳이 없었다. 하루 종일 거리를 헤맸다. 배도 고팠고, 다리도 아팠다. 취직자리만 찾으면 돈 벌어가며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눈이 확 뜨였다. ‘종업원 구함’이라는 쪽지였다. 지혜는 다방 문을 힘차게 밀었다. 손님 앞에 앉았던 여자가 일어났다. 화장을 짙게 한 중년 여자는 지혜의 아래위를 쭉 훑어보더니 물었다.
학생 어떻게 왔어?
종업원을 구한다기에.....
딱 봐도 미성년자네. 집 나왔구나. 고생하지 말고 집에 돌아가지.
여자는 매몰차게 말했다. 그때 여자와 함께 앉아서 차를 마시던 남자가 손짓을 했다.
아이, 사장님, 또 이러신다. 지난번에 그 애도 차비까지 줘서 보내더니. 얘, 너 운수 대통이다. 저 사장님 눈에 띈 것만 봐도 복 터졌네. 일로 와 봐.
지혜는 여자 손에 끌려 남자 앞에 가서 앉았다. 지혜는 남자를 빤히 쳐다봤다. 난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그런 눈빛으로 남자를 봤다. 남자는 빙그레 웃으며 지혜의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지혜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처음 만난 남자가 왠지 친근했다. 마치 예전부터 알아온 사람처럼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학생에게 꿈이 있지?
예.
어떤 꿈인데? 내게 말해줄 수 있어?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돈 벌어가며 야간 고등학교를 가고 싶어요. 요리사 자격증을 따고 싶어요. 저 공부도 잘 했고, 셈도 잘 해요. 영어랑 수확은 항상 백점 받았어요.
그럼 우리 사무실에 나올래? 마침 경리가 필요한데. 낮에는 우리 사무실에서 일하고 저녁에 야간 고등학교 다니면 되겠네. 마담, 이 애 자취방이나 알아봐 줘. 내가 보답할 테니. 일단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나랑 같이 부모님 뵈러 가지. 내가 널 책임진다고 해야 부모님도 걱정 안 하시지.
얘, 너 오늘 땡 잡았다. 사장님께 잘 보이면 대학 졸업장도 딸 수 있어. 좋은 일 많이 하시는 분이란다. 내가 보증 할게 믿어도 돼.
그렇게 됐다. 며칠 후 지혜는 모 대기업 건설사 현장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밤에는 야간 고등학교를 다녔다. 주경야독을 하면서 주산 4급, 부기 2급 자격증도 획득했다. 그는 지혜를 딸처럼 보살펴줬다. 공사현장에 나갈 때도 데리고 다녔다. 누구냐고 물으면 딸이라고 했다. 그는 지혜가 사무실에서 퇴근하면 기다렸다가 학교에 데려다 주고 학교를 마치고 나오면 자취방까지 바래다주는 것이 예사였다. 지혜는 안 그래도 된다했지만 ‘남자는 늑대 근성이 있어. 예쁜 처녀는 누구든 먹잇감이 된단다. 언제 어떻게 돌변해서 어린 양을 잡아먹을지 모른다. 너의 부모님도 나를 믿고 너를 맡겼으니 책임져야지.’ 그랬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이었어요. 꽃다발을 들고 왔더군요. 그날 처음으로 그 사람과 맥주를 마셨어요. 얼큰하게 취기가 오르자 ‘지혜야, 나 제주도로 발령 났다.’하더군요. 이젠 저를 볼 수 없어 어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눈물을 흘리더군요. 그때 제가 뭐라 했을까요? 당신 따라 가겠다고 했어요. 당신 부인이 허락해주지 않을지라도 당신과 함께 하겠다고 했어요.
당신 미래는 생각 안 했어요?
사랑은 계산적일 수가 없다고 봐요. 그냥 그 사람이 좋은 걸 어떡해요. 그 사람이 외로워하는데. 그 사람 곁을 지켜주고 싶었어요. 그 몇 년 동안 한 번도 그가 서울 본가에 간다는 말을 듣지 못했거든요. 매달 생활비와 아들 학비를 보내준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우리 마님은 고고하게 핀 꽃이야.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살아도 관심조차 없는 여자지.’ 그러더군요. 나는 그가 불쌍했어요. 아니, 그냥 좋았어요. 그를 따라 제주도로 갔어요. 거기서 한식과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땄어요. 어려서부터 음식 만들기를 좋아했거든요. 주판 두들기는 것보다 주방에서 음식 만드는 것이 좋았어요. 그 덕에 음식점을 열게 되었지만.
아직도 그를 사랑합니까?
모르겠어요. 내 할 도리 다했다 싶으니 편해요. 가끔 외롭긴 해도.
저도 그렇습니다. 병들어 죽어가는 길, 외로운 길이지요.
지금 생각하니 그 사람도 졸혼을 했던 것 같아요. 졸혼이란 말이 최근에 생겼는지 모르지만 그랬지 싶어요.
그런데 남편분이 퇴직했을 때 왜 부인에게 가라 했어요?
글쎄요. 그래야 제가 편할 것 같았어요. 함께 늙어갈 사람은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저도 환갑 진갑 다 지나고 나니 인생길이 보이더군요.
저도 내년이면 환갑인데요. 여기저기 아파요.
그 사이 바깥세상은 새하얀 설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