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1>
어떤 사랑
박래여
1.
지혜는 손님 받을 준비를 끝내놓고 물 묻은 손을 앞치마에 닦았다. 커피를 진하게 내렸다. 커피 잔을 들고 북창을 바라봤다. 밤사이 된서리가 내렸다. 지붕에도 서리꽃이 하얗게 피었다. 풋풋하던 푸른 나뭇잎들이 바스락거리며 부서져 내린다. 뒤란의 논밭에도 서리가 하얗다. 무와 배추를 뽑아낸 자리에 널린 푸성귀 잎도 뻣뻣하다. 산기슭의 칡넝쿨도 앙상한 뼈를 드러냈다. 짙푸름이 조금씩 엷어서 연둣빛과 노란빛이 곱던 칡잎이 며칠 새 폭삭 늙은 파파할미가 되어버렸다. ‘나도 저렇게 떨어져 눕겠지, 죽어 거름이 되면 우리 향이가 오려나.’ 지혜는 무심히 중얼거린다.
밥 됩니까?
현관문이 열리면서 굵직한 저음이 뒤통수를 때린다.
예, 됩니다.
지혜는 잽싸게 커피 잔을 싱크대에 놓고 식당 홀로 나왔다. 푸른 비니를 푹 눌러쓴 초로의 남자가 현관 앞에 서 있다. 며칠째 깎지 않은 듯 희끗한 수염, 파리한 얼굴, 검정색 잠바 차림에 코르덴바지, 흙 묻은 낡은 운동화를 신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지혜는 상냥하게 웃으며 아무데나 앉으라고 했다. 홀은 식탁만 가지런히 놓였을 뿐 텅 비어있다.
신발 벗지 마세요. 우리 집은 노가다 하시는 분들이 많이 와요. 작업화를 벗기 힘들어해서 그냥 받아요. 뭘 드릴까요? 한방곰탕과 비빔밥만 해요.
지혜는 물 컵과 물을 챙겨 나오며 싹싹하게 말했다.
편하네요. 곰탕 주세요.
남자는 구석진 자리에 가 앉았다.
마침 점심때만 도와주는 정자언니가 왔다. 지혜는 언니에게 물병과 컵을 넘기고 싱크대 앞으로 돌아왔다. 이틀 전부터 가마솥에 푹 고은 곰국을 떠서 불에 올리고 대추 두 알, 인삼 한 뿌리, 은행 두 알을 넣었다. 곰국이 바글바글 끓자 물에 불린 당면을 넣고 얇게 저민 쇠머리고기를 두툼하게 올렸다. 그 사이 언니는 남자 앞에 반찬을 가져다 놓았다. 무채, 시금치나물, 콩나물, 깍두기, 김장김치, 풋고추와 된장이다. 손님상에 오르는 반찬가짓수는 날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남자 앞에 곰탕을 대령했다. 남자는 눈을 지그시 감고 냄새부터 맡더니 숟가락으로 국물 맛을 본다.
곰국이 진하네요. 어릴 때 우리 엄니가 끓어주시던 곰국 맛이 나요.
남자는 지혜와 언니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지혜의 마음을 따사롭게 한다. 티 없이 맑은 웃음이다. 혈색이 없는 파리한 얼굴인데도 눈빛은 온화하고 깊었다. 칠십대 중반쯤 됐을까. 지혜는 남자의 모색을 살피며 나이를 가늠하다 별일이야. 속으로 찔끔한다. 처음 보는 남잔데 왠지 그 남자가 낯설지 않다. 언니도 남자가 편한지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이집 사장은 직접 가마솥을 마당가에 걸어놓고 쇠머리 하나 사다 다듬어서 이삼일 씩 푹 고운다고.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양념 재료 모두 싱싱하고 좋아야 한다면서 돈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고. 마침 흙 묻은 트럭 몇 대가 들어선다. 여남 명의 손님이 들이닥치기 직전이다.
언니, 손님 받아야지. 서둘러 상차림 해요.
그때부터 정신없다. 첫 손님인 남자가 언제 계산을 하고 떠났는지도 모른다. 점심시간은 인근 공사장에서 오는 단골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언니는 홀을 맡고 지혜는 주방을 맡아 정신없이 몰아친다. 식당에는 셀프 반찬냉장고가 있다. 단골손님은 알아서 반찬과 술과 컵을 챙겨간다. 그만큼 스스럼없이 군다. 두 시간 정도 지났다. 식탁은 한바탕 전쟁이 휩쓸고 간 것 같다. 빈 그릇과 술병이 나 뒹군다. 싱크대에 수북이 쌓인 설거지를 끝내면 오후 두시가 넘는다. 그제야 지혜는 언니랑 먹을 점심을 챙긴다. 식탁에 앉자마자 언니는 뜬금없이
그 사람 말이야. 환자 같지 않던? 지나가다 들린 나그네 같지?
언니도 그 남자가 별나 보였나 보네.
지나가다 들리는 나그네 손님이 가끔 있다. 그 나그네들은 해가 바뀌도록 가끔이라도 오가면 단골이 된다. 그 남자도 또 오면 단골이 되겠지. 그 집 음식은 정성이 든 것 같아. 맛있더라. 소문이 나면 손님은 어디서든 찾아오게 되어 있다. 지혜네 곰탕집도 소문이 났다. 지혜는 예약을 받지 않는다. 선착순이다. 반찬과 그날 치 곰국이 떨어지면 장사도 끝낸다. 보통 점심때 복작거리고 저녁에는 지혜 혼자 담당해도 될 만큼 손님이 적다. 시골 외진 곳이라 그렇다. 그래도 괜찮다. 지혜는 돈 욕심 부리지 않는다. 남에게 돈 빌리러 다니지 않아도 되고, 통장에 여윳돈 조금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점심을 먹고 일어서는 언니에게 일당 3만원을 쥐어준다.
바쁘면 전화 해.
정자언니를 보내고 혼자 남은 지혜는 또 커피 한 잔을 진하게 타서 창가에 앉았다. 약초 골 입구에 『지혜네 곰탕집』식당을 연지도 십 년이 흘렀다. 우리 향이는 잘 살고 있을까. 딸과 헤어진 지 십 년만이다. 코로나 펜데믹이 없었다면 한두 번은 다녀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세계는 하나라는데. 아이 키우랴, 직장 다니랴, 시부모와 남편 뒷바라지 하랴, 저도 힘들겠지. 국제전화는 요금 많이 나온다고 못하게 한 것도 걸린다. 가끔 미제 옷과 영양제, 관절약과 화장품이 소포로 온다. 어미를 잊지 않고 있는 것만도 고맙다.
엄마, 같이 가자. 임 서방이 엄마랑 같이 오길 원해. 아이 낳으면 엄마가 키워줘야지. 엄마가 애 키워주면 나도 직장생활 할 수 있고, 같이 가자. 엄마를 여기 혼자 두고 갈 수 없어.
얘가 나약한 말 하지 말고 홀가분하게 돌아가. 엄마는 엄마대로 살 거야. 외국은 이제 질려서 싫다. 좋은 사람 있으면 재혼도 할 거고. 설마 엄마가 혼자 살길 바라지는 않겠지?
누구 있어? 그 사이 누구 생긴 거야? 아빠랑은 아예 끝난 거야?
아빠 때문은 아니야. 형님이 너를 받아주고 네 몫의 재산도 줬잖아. 네게 가족도 줬잖아. 얼마나 고마워. 나도 염치가 있지. 너는 내 딸이기 이전에 형님 딸이기도 해. 형님 내외께 잘 해야 한다.
엄마가 자비심의 원천인 보살은 아니거든. 그냥 평범한 여자라고. 딸도 빼앗기고 남편도 빼앗기고 그런데도 더 못 줘 안달이니 참 웃긴다. 내가 엄마 안 찾았으면 엄마는 나를 찾을 생각도 안 했겠지?
보살은 형님이지. 형님이 너 자라는 모습 사진 찍어 보내줬어. 향아, 사람은 말이다. 각자 사랑 법이 있다고 봐. 내식대로 아빠를 사랑하고 너를 사랑해 왔다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
그럼 나도 내식대로 엄마 외면해도 돼? 이번에 들어가면 영영 안 나올 수도 있어. 그래도 안 보고 싶을까?
보고 싶겠지. 뱃속에 열 달 키워 배 아파 낳은 내 딸인데.
지혜는 모녀간에 나눈 대화를 생각해 본다. 마음 같아서는 딸을 따라 캐나다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독하게 마음먹었다. 모정을 끊어주는 것이 형님께 마지막 할 도리라 생각했다. 지혜는 사실혼 관계였던 남편을 따라 중동 여러 나라를 다녔다. 남편은 모 대기업 건설사 소속으로 건설현장 소장이었다. 건설현장에는 함바집이 있다. 건설현장 따라다니는 구내식당이다. 지혜가 조리사와 한식 요리사 자격증을 딴 것도 남편을 따라다니기 위한 방편이었다. 지혜는 요리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남편을 따라 한국에서도 지방으로 떠돌았고 중동지역 건설 붐이 불자 남편을 따라 중동으로 떠났었다. 지혜는 딸을 낳기만 했지 키우기는 본처인 형님이 했다. 그때 형님에겐 이미 대학 다니는 두 아들이 있었다. 형님은 향이를 기꺼이 막내딸로 받아주었다. 남편을 빼앗은 젊은 씨앗에게 질투는커녕 자비심을 선물했던 것이다.
향이 엄마, 향이가 임신을 했어. 어릴 적 먹던 자네 음식만 찾는데 내가 자네 손맛을 낼 수가 없어. 향이에게 자네 이야기를 했네. 향이가 많이 울었어. 향이를 보낼게. 데리고 있다가 입덧 멎으면 돌려 보내줘. 영감이랑 임 서방이 그래도 된다네. 염치없지? 독하게 떠난 자넨데. 그 마음을 아는데. 미안해.
형님은 그런 여자였다. 지혜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자리에 앉아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완벽하게 해 내는 여자였다. 남편이 건설현장에서 퇴직하고 가족 모두 캐나다로 이민을 갈 때 지혜도 같이 가자고 했지만 거절했다. 남편과 사실혼 관계를 끝낼 때라고 생각했다. 과부 아닌 과부로 오랜 세월 살아온 형님께 남편을 돌려드리는 것이 사람의 양심이라고 생각했다. 딸도 포기했다. 어차피 딸은 지혜보다 형님을 엄마로 알고 자랐다. 일 년에 한두 번 만날 때면 작은 엄마라고 불렀다. 물론 낳아준 엄마가 지혜라는 것을 향이는 오랫동안 몰랐다. 캐나다로 이민 가기 전에 형님이 딸에게 알려줬다고 했다.
남편 부부가 캐나다로 떠나고 향이는 지혜에게 왔었다. 그때 사위는 이미 캐나다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지혜는 남편이 캐나다 이민을 준비할 때 그의 곁을 떠났다. 그동안 저축해놨던 돈과 남편이 준 목돈을 밑천으로 약초 골로 들어왔다. 긴 골짝을 끼고 있는 약초 골은 어릴 적 떠난 고향을 연상케 했다. 약초가 많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란다. 골짜기 입구에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식당을 겸한 가정집이었다. 그 집에서 향이랑 석 달을 함께 했다. 그동안 못 준 어미 정을 몽땅 주고 싶었다. 향이는 지혜처럼 조용한 성격이었다. 입이 무거운 방면 야무졌다. 약초 골에 음식점을 열 때도 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딸이랑 주방기기도 준비하고 맛 집을 찾아 돌아다니기도 했다.
엄마, 엄마도 나이가 있잖아. 앞으로 혼자 생계를 꾸리려면 힘들 거야. 가장 자신 있는 음식 한두 가지만 정해. 엄마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것, 나는 엄마가 끓여주는 곰국이 최고야, 나물 몇 가지 고명으로 얹어주는 비빔밥은 내 입덧도 낫게 하잖아.
그럼 쇠머리곰국과 비빔밥으로 정할까. 여러 가지 음식은 하기 싫어. 사우디아라비아에 아빠 따라 갔을 때 내 곰국과 비빔밥은 향수를 달래주는 보약이었어. 건설현장 사람들은 내 비빔밥에 곰국 한 그릇이면 기운이 펄펄 난다고 했어. 어떤 젊은이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먹기도 했어. 얼마나 고향이 그리우면 저럴까 싶더라. 뙤약볕에서 새까맣게 타는데도 뜨거운 곰국을 먹어야 시원하다더라. 곰국이라 해봤자 쇠머리를 곤 곰국도 아니었어. 한국에서 공수해 온 사골과 잡뼈였지. 그것도 외국인들 눈치 보여 맘대로 못 끓였어. 곰국은 특별한 날 특별 식으로 내 놓았었지.
그래, 엄마 곰국 먹으면 몸도 마음도 든든해. 두 가지 음식만 하자.
그렇게 딸과 함께 메뉴를 정했다. 쇠머리곰국과 비빔밥이었다. 상호는 『지혜네 곰탕집』으로 정했다. 딸은 자신이 캐나다로 떠나기 전에 개업을 하자고 했다. 엄마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모습이 보고 싶다고 했다. 『지혜네 곰탕집』은 서둘러 개업을 했다. 향이는 삼이웃동네까지 팥떡을 들고 다니며 개업인사를 했다.
향아, 네 덕인가 봐. 장사가 그럭저럭 잘 된다. 많이 보고 싶다.
지혜는 딸이 옆에 있는 것처럼 말한다. 커피가 싸늘하게 식었다. 식은 커피를 훌훌 마시고 안방에 들어가 누웠다. 안방이라 해봤자 물건들이 없다. 붙박이 장롱 옆에 텔레비전 하나 덩그렇게 놓였고, 책꽂이에 책이 몇 줄 꽂혀있을 따름이다. 손님이 많을 때는 안방도 손님차지가 된다. 간소한 살림이다. 남편을 따라다니면서 길든 습관이다. 언제든 떠날 수 있게 짐은 간단해야 했다. 꼭 필요한 몇 가지만 있으면 된다.
내가 죽어도 아무도 모르겠지.
지혜는 스르륵 눈을 감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