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래여 Jul 06. 2024

아버지의 빈자리

<짧은 소설.  끝>

  코로나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엄마는 돈 벌 궁리를 했다. '아빠 보험금 있잖아. 월세도 받잖아?' 나는 반대했다. ‘아들, 코로나 팬데믹이야.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잖아. 나, 아직 젊어. 할멈 취급 싫어야.’ 그러던 어느 날 ‘아들, 나 취직했다.’며 반색을 했다. ‘찻집에서 아르바이트하기로 했어. 셋방 동생이랑 그 찻집 사장님이 잘 아는 사이래. 고맙게도 사장님께 내 취직을 부탁했다는구나. 사장님도 참 서글서글하고 좋더라. 역시 젊은 사람들은 화통해. 고마워서 어떻게 도울 방법 없느냐고 물었더니 글쎄, 새댁이 너에게 국어 과외를 해 주겠대. 잘 됐지?’하며 좋아했다. 그날 이후 엄마는 잔뜩 멋을 부리며 출근을 하고 나는 셋방 누나랑 과외를 했다. 성교육 개인교습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갈 즈음이었다. 학교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다시 학교에 나갔다. 엄마는 여전히 찻집에 출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셋방은 텅 비어 있었다. 엄마는 넋이 빠진 얼굴로 셋방 쪽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다. ‘엄마, 누나는?’ 엄마는 나를 끌어당겨 꼭 안았다. ‘우리가 당했다. 그 사기꾼들한테.’ 아침에 찻집에 출근하니 문이 잠겼더란다. 엄마는 찻집 사장과 셋방 아저씨, 셋방 누나에게 전화를 했지만 불통이었다. 집에 오니 셋방이 말끔하게 비어 있더란다. 엄마는 ‘아이고 내 돈, 그 피 같은 돈’하면서 울었다.


 엄마는 그동안 셋방 아저씨랑 모텔을 들락거렸고 그것을 빌미로 찻집 사장은 엄마에게 돈을 빌렸다. 월세 받은 것도 넘어가고 아빠 보험금도 넘어갔다. 셋방 부부랑 찻집 사장이랑 한 통속이었단다. ‘아이고, 멀쩡한 것들이 이럴 수가 있니.’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하던가.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성교육 실습하다 망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셋방 부부도 찻집 사장도 셋방 보증금도 아버지의 보험금도 엄마의 두둑한 현금도 몽땅 사라졌다.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그놈의 정 때문에.’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엄마, 내 방도 세 놓으세요.’ 나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엄마라는 것을 알기에 조용히 누나 방으로 옮겼다. 


 어른이 되려면 실습은 필수라는 것, 실습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 하기야 어른인 엄마는 실습할 필요도 없는데 왜 실습을 하다 돈을 날렸을까. ‘너의 아버지 탓이야. 나만 두고 죽은 네 아버지 탓이야.’ 그렇구나. 아버지의 빈자리가 너무 컸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아버지의 빈자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