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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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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Sep 21. 2024

간절하면 통한다

간절하면 통한다.   

  

  간절히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을 만나게 된다. 한 고장, 같은 면내 살아도 ‘잘 지내요? 우리 만나요. 보고 싶어요.’ 이런 문자조차 주고받지 않으면 만나기 힘든 것이 사람살이다. 그녀는 내게 늘 고마운 사람이다. 잘 사는지 궁금해하다가 우연찮게 바람이 실어다 주는 소식을 듣게 되면 ‘잘 사는구나. 여전히 열심히 사는구나. 당신다워요.’ 속에 든 말 건네게 되는 그런 사람이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파란만장하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도 세상에 태어나 죽을 때까지 걸어가는 길은 결코 평탄할 수 없다. 사람살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인생이다. 핏줄로 맺어진 형제자매 역시 자의든 타의든 남처럼 살아가기도 하는 것이 삶이다. 그녀는 내게 언니 같고 친구 같은 사람이다. 강한 성격 탓에 남의 입질에 오르내리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만은 억척스럽게 챙기며 사는 사람이다. 


 가끔 그녀가 사는 동네를 지나갈 때가 있다. 그녀의 집을 바라보며 ‘잘 사나요? 건강 잘 챙기세요.’ 마음을 전하게 된다. 우연찮게 길거리에서나 오일장에서나 마트에서나 만나길 바라지만 몇 년째 만나기 어려웠다. 도시에서 살던 그녀가 자기 남편의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는 중년이었다. 황토 찜질방과 음식점을 경영했다. 그때 나는 허리 디스크를 심하게 앓았었다. 그녀의 황토 찜질방은 내게 단골이었다. 


 그리고 십수 년 전, 읍내에 수영장이 생겼을 때다. 사람들 앞에 수영복을 입고 나설 자신이 없었던 나는 관절염에 수영이 좋다지만 언감생심이었다. 삶에 지치고 병마에 잡혀 허덕일 때였다. 그런 나를 이끌어 수영장에 들어서게 만든 것도 그녀였다. 수영복 일체를 사서 건네며 같이 다니자고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물을 좋아했지만 낯선 사람들 무리에 끼어 노는 것은 체질에 맞지 않았다. 그녀의 손에 끌려 억지로 수영장에 들어섰다. 소독 냄새에 머리가 아팠지만 물은 나를 끌어당겼다. 


 그 후 여태까지 나는 수영장에 단골손님이 되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녀는 이런저런 사업을 벌이고, 손자손녀 봐준다고 수영장을 떠나도 나는 그 자리에 남았다. 그녀가 보고 싶으면 한 끼 해결을 핑계로 그녀의 음식점을 찾았고, 차를 마시고 싶을 때면 그녀의 찻집에 갔었다. 갓 구운 빵을 아낌없이 싸주며 일꾼들 새참 하라는 그녀, 통도 크고 손도 컸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베풀었다. 부부가 부처님을 섬겼다.


 그녀의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어떤 사람은 그녀를 사람도 아니라고 욕하고 흉봤다. 욕심이 목까지 찬 여자라고 험담했다. 그녀의 과거사를 들먹이며 욕했지만 내게 그녀는 친언니 같았고, 보살 같았다. 언제 어떤 자리에서든 만나면 아낌없이 주고 가는 사람이었다. 내가 한참 후밴데도 늘 선생님이라 존칭을 썼다. 받기만 해서 늘 미안했고, 고마웠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 그녀는 할머니가 되었고, 손자손녀를 거두어 키웠다. 그 사이 농사꾼이었던 그녀의 남편은 전원주택을 지어 되파는 사업가가 되었고, 그녀는 이런저런 자격증을 소유했다. 


 각자 사는 일에 치어 만남도 뜸해졌고, 소식도 뜸해졌지만 그녀는 늘 내 마음에 있었다. 아들의 사업을 도와주러 장거리 출퇴근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지도 한참 되었다. 여전히 나는 ‘잘 살지요?’ 그녀의 동네 근처를 지날 때면 바람에게 소식을 전한다. 마음이 통하면 만날 수 있다는 말을 믿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서로의 기가 합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 내 바람이 통했던 것일까. 수영장에서 나와 농부를 기다리고 있는데 카운터 앞에서 한 달 수영비가 얼마냐고 묻는 낯익은 목소리가 있었다. 설마? 나는 벌떡 일어났지만 뒷모습이 낯설었다. 혹시나 싶어 다가갔다. 맞다. 그녀였다.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그렇게 만났다. 손자손녀가 중 고등학생이 되었단다. 몇 년 간 장거리 출퇴근을 하며 아들 사업을 도왔단다. 아들의 사업이 안정권에 들어 직원을 구하고 자신은 인근에 부업할 곳을 찾는 중이란다. 구내식당 조리사 면접을 보고 왔다며 합격할 것 같단다. 당연하다. 그녀의 음식솜씨는 소문난 지 오래다. ‘선생님 아직 수영장 다녀요? 나도 수영장에 다시 다닐까 하고 와 봤어요.’ ‘그럼요. 형님이 길 잡아준 덕이지요. 형님은 늙지도 않았네.’ 그녀보다 내가 더 늙어 보였다. 우리는 손잡고 간이 찻집에 앉았다. 삼복더위도 덥다고 느낄 새도 없이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느라 숨 넘길 틈도 없었다.


 “선생님도 여전하시네요. 저도 참 열심히 살고 있어요. 코로나로 한때 힘들었지만 이젠 괜찮아졌어요. 남편은 건축업에서 손 떼고 일당벌이 노가다 다녀요. 나도 손재고 있을 수 없어 오늘 면접 보고 나오는 길입니다.”

 “그대 솜씨가 어디 가겠어요. 합격할 겁니다. 많이 궁금했고, 많이 보고 싶었어요.”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린 역시 통하는 사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젠 수영장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도 물처럼 술술 풀려날 것이다. 내겐 늘 고맙고 따뜻한 사람, 아낌없이 주는 사람이 그녀다. 어찌 그 고마움 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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