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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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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r 28. 2022

22. 요양원 상담을 다녀와

요양원 상담을 다녀와   


  

 요양원에 상담을 갔다. 시아버님이 노인전문 병원에 가시겠다고 알아보란다. 농부는 시어머님을 노인병원보다 요양원이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 시아버님과 떨어져 있게 하는 것이 어머니를 위한 길이라 생각한 것일까. ‘거기 가보고 오자’하기에 말없이 따라갔다. 요양원과 노인 유치원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출근 차가 여러 대 도착한다. 그 차에서 지팡이를 짚거나 두 발로 걷는 노인들이 줄줄이 내린다. 시어머님과 시아버님을 보는 것 같다. 시아버님도 노인 유치원에 다니면 좋을 텐데. 


 추레한 촌로의 행렬을 바라보는 것만도 힘이 든다. 머잖아 내 모습이 겹쳐 보인다. 우아하게 늙어가기는 참 요원하다. 부잣집 마나님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할머니가 있었다. 맏아들 내외의 보살핌을 받으며 노후도 행복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곱게 화장을 하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예쁘게 말아 올리고 그날 입고 싶은 옷을 골라 입고 밥상 앞에 앉는 할머니였다. 음식 까탈도 심해 며느리 시집살이를 엄청 시키는 노인이셨다. 며느리도 환갑 진갑을 지나고 자식들을 출가시켰지만 여전히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를 하고 있었다.


  “야야, 일로와 봐라.” 

  어느 날 아침, 시어머니의 고함 소리에 아침상을 준비하던 며느리가 놀라 노인 방으로 뛰어갔다. 노인은 사색이 되어 침대를 가리키더란다. ‘누가 내 침대에 똥을 싸 놨다. 어떤 놈인지 잡아 죽이겠다.’며 설치는데 시어머니의 잠옷에 온통 똥이 발려 있더란다.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화장실로 모셔가서 씻기고 닦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어머니의 근황을 말했지만 남편은 그럴 리 없다 하더란다. 정정한 노인을 험담한다고 꾸지람만 왕창 들었단다. 

 

 그다음 날에도 어머니는 화장대 앞에 앉아 입술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드라이기로 머리카락을 손질하는데 구린내가 진동을 하더란다. 배설을 조절하는 기능을 상실한 것이었다. 남편을 조용히 불러 그 광경을 보여주었다. 남편은 시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에 갔다. 치매였다. 평소 아흔 살 노인이니 손에 쥐었던 물건을 잊어버렸다고 난리를 피우기도 하고, 며느리에게 돈 훔쳐갔다고 도둑년이라고 해도 며느리는 참고 살았다. 남들은 평생 돈 걱정 없이 산다고 부러워하는 그녀였지만 시어머니 시중들기는 갈수록 힘이 들었다. 

 

 결국 며느리는 반기를 들었다. 시어머니를 요양병원에 입원시켰다가 요양원으로 모셨다. 면회를 가면 어찌나 모진 욕을 하는지 시어머니를 차마 볼 수가 없었단다. 집에 데려가 달라고 애원했다가 욕을 퍼붓다가 이웃 침대의 할머니에게 폭력을 휘둘러 독방에 갇히기도 하는 시어머니였다. 배설 기능을 잃어버린 시어머니는 기저귀를 채워놔도 뽑아버리는 바람에 간호사들도 애를 먹었단다. 본 정신이 아닌 사람은 힘도 세다. 난동을 부리면 남자 간호사들이 달려들어 묶거나 수면제를 처방하고, 독방에 가두었다. 

 

 결국 할머니는 요양원에서 다섯 해를 살다가 아흔다섯에 돌아가셨다. 다른 자식들은 아무도 알아보지 못해도 큰며느리만은 끝까지 알아보더란다. 마지막에 노인은 ‘아가, 고생 많았다. 고맙다.’하시더란다. 그 말씀 듣고 눈물을 줄줄 흘렸단다. 남들은 부잣집 며느리로 호의호식하는 줄 알았지만 드센 시어머니 시집살이에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았다는 그녀다. 가부장적인 남편은 사업한다고 집안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고 살았고, 집안 두량은 시어머님이 하시고, 그녀는 그 집의 식모나 다름없이 살았다며 시어머님이 요양원에 들어가시자 비로소 무거운 짐을 벗었지만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시어머니 시집살이 벗어나니 손자 손녀 키워준다고 내 인생은 없더라.”

 지금 그녀는 칠순이 넘었다. 만신이 아파 병원 다니는 것이 일이다. 자신의 손으로 키워준 손자 손녀들조차 품에서 떠나니 허전하단다. 남편은 역시 남의 편이라며 웃는다. 먹고사는 일이야 걱정 없지만 살아온 날을 되짚어보면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살았나 싶어 후회된단다. 남편이 고생했다며 유럽여행을 계획했지만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제주도 여행조차 어려워지더라고 한숨을 쉬었다. ‘코로나 걱정 말고 어디든 가고 싶으면 다녀요. 인명은 재천이요. 다리 힘이 그나마 남아 있을 때 다니세요. 아직 안 늦었어요.’ 내 말이 위로가 될까. 여행보다 무릎 관절 수술이 급하고, 척추협착증 수술부터 해야 할 것 같다는 그녀와 나는 닮은꼴이다. ‘나, 다시 돌아가래.’ 박하사탕 영화 속 설경구의 외침이 들린다. 

 

 코로나 때문에 요양원 실태 파악조차 어렵다. 상담사와 마당의 정자에서 만났다. 입소 전에 갖추어야 할 서류도 많다. 그 요양원은 서류가 갖추어져도 바로 입소하기 어렵단다. 병실이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단다. 침대와 온돌방이 있단다. 온돌방을 원했다. 일단 예약을 했다. 하체에 힘이 빠져 휠체어 신세를 지는 시어머님이다. 나는 상담사의 말은 근성으로 듣고 눈은 자꾸 노인 유치원 쪽에 꽂힌다. 출근 차는 끝없이 도착하고, 젊은 직원의 도움을 받거나 난간을 잡고 유치원으로 이동하는 노인 아이들의 행렬을 본다. 눈물이 난다. 

 

 상담을 마치고 요양원을 나섰다. 집에 오는 동안 우리 부부는 한 마디도 안 했다. 농부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지 알기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농부도 많이 지친 것이다. 그 원망이 누구에게 가겠나. 아내가 두 어른을 책임졌을 때는 힘든 줄 모르다가 아내가 두 어른을 놓아버리자 두 어른은 남편 몫이 되어버렸다. 부부가 다툰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아내가 책임 못 지게 됐으니 할 말도 없다. 당신 부모니까 당신이 해야지. 그 말조차 원망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저녁은 국수 끓여드리려고 하는데 육수는 어떻게 하노?”

 농부가 물었다. 마침 오전에 육수 낸 것이 있다. 시댁에 커피와 주방세재도 떨어졌다기에 마트에 가서 샀다. 국수도 샀다. 농부에게 육수 우린 것과 고명을 만들어 통에 담아줬다. 국수 맛있게 삶는 법도 전수하고, 국물 따뜻하게 만들어 드리는 것도 전수했다. 내게 도움을 청할 때는 흔쾌히 챙겨준다. 그것이라도 해야 나도 편하다. 이미 시어른의 눈 밖에 난 며느리, 미움받는 며느리지만 내 할 도리는 해야 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평생 그렇게 잘했는데. 아버님도 너무 하시다.’는 동서의 한 마디가 위로가 된다. 시어른께서 아직 힘이 있기  때문이다. ‘고마 저래 사셔도 될 텐데. 현실을 받아들이면 서로 편할 텐데.’ 그 말조차 할 수 없다.

 

 마당을 나서는 농부의 구부정한 어깨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백 살이 다 된 노인을 요양원으로 모셔야 하는지. 시어른은 수시로 우리를 시험하신다. 나도 지쳤고, 농부도 지쳤지만 살다 보면 문제는 저절로 풀리게 되어 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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