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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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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r 26. 2022

21. 농사가 천직이라면

농사가 천직이라면



  며칠 전부터 숲이 불그레해 보였다. 단비 내리고 분홍빛이 도드라지는 것 같더니 드디어 활짝 핀 진달래를 보았다. 삽짝의 개나리도 톡톡 터지는 중이다. 진달래와 개나리가 만개를 하면 봄이 푹 익었다는 뜻이고, 논밭을 갈아엎고 씨앗과 모종을 이식할 때다. 농부는 사다리를 챙겨 집을 나선다. 아랫말 감나무 전지를 해 주러 갔다. 자식들 도시로 떠나보내고 혼자 사는 할머니는 해마다 농부에게 감나무 전지를 부탁한다. 품앗이다. 할머니는 가을에 단감 딸 때 봉지 작업을 도와준다. 


  날마다 오르내리는 길섶도 예전과 달라졌다. 논밭이었던 곳이 채워져 건물이 들어섰다. 찻집, 음식점, 아파트, 가정집 등이 들어섰다. 묵정이가 된 밭은 십중팔구 팔려고 내놓은 곳이다. 지난해까지 단감과 떫은 감을 따내던 과수원도 말끔하게 비워졌다. 팔십이 넘은 노부부도 농사를 포기한 것이다. 텃밭농사도 힘들 연세지만 백세시대라 그런지 팔십 대는 아직 노인 같지 않다. ‘아저씨, 감나무 다 베 내고 뭐 심으려고요?’ 길섶에 차를 세우고 물어본 적이 있다. ‘모르겠소. 땅을 놀릴 수는 없으니 손 덜 가는 것이나 심어놔야지.’ 손 덜 가는 농사가 있던가.

 

 우리도 단감농사 포기했다가 귀퉁이 조금만 다시 짓기로 했다. 또한 동네 묵정이 논을 빌려 양식할 쌀농사 조금 짓기로 했다. 몇 년을 묵혔던 묵정이를 갈아엎어 나락 농사를 짓기까지 농부는 바튼 숨을 쉬어야 한다. 그 집 할머니도 며칠 전 돌아가셨다. 아흔셋이란다. 노인 혼자 못 지내셔서 큰 딸이 모시고 갔다가 요양원에도 계시다가 다시 집으로 오셨단다. 농부의 동창이라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코로나 시대라 장례식장도 허전하더란다. 모두가 몸을 사리는 시대다. 코로나 오미크론은 감기처럼 가볍게 지나간다지만 고생하는 사람은 엄청 고생을 한다.  

 

 농사가 천직인 사람은 농사를 지어야 산다. 일을 놓아버리면 하루가 너무 길다. 농부도 단감농사 힘들다고 포기하고 양봉으로 전환했었다. 일 년 넘게 양봉을 했지만 벌 키우는 것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양봉을 접는 대신 단감나무 60주를 키우기로 했다. 물론 경제적 가치는 없지만 일을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농부는 가지치기도 끝내고 거름도 냈다. 그 정도는 충분히 우리 식구만으로도 할 수 있겠다. 또한 우리가 하던 감산을 임대 준 총각이 아직 서툴러서 하나에서 열까지 가르쳐야 할 판이다. 단감농사 같이 짓다 보면 자연스럽게 학습이 될 것이라 본 것이다.  

 

 일솜씨 야무지다고 소문난 농부지만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총각과 너른 감산에 거름 낸 날은 밤새 끙끙 앓았다. ‘당신은 조금만 도와주고 오지. 온종일 같이 했어요?’ 내가 툴툴거리자 ‘거름 내는 것도 요령이 필요한데. 우리 감나무에만 거름을 내고 올 수가 있나.’ 같이 돕다 보니 해가 지더란다. 삼십 대 후반과 육십 대 후반인 두 사람의 차이는 뭘까. 삼십 대는 일머리가 없어 힘으로 밀어붙이고 육십 대는 일머리가 있으니 요령으로 몸의 혹사를 덜 받게 하는 차이 아닐까. 

 

 농촌 아낙이 되었을 때 시어머니와 나의 차이를 보는 것 같았다. 농부는 나랑 농사일을 하면 복장이 터진다고 했었다. 나는 젊으나 일머리가 없어 늘 농부의 빈축을 샀었다. 하나에서 열까지 가르치고 시켜야 할 판이었다. 대신 시어머님과 농사일을 하면 편하다고 했다. 시어머님은 알아서 일의 똬리를 척척 틀어주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나는 농부에게 꾸지람을 듣는다. ‘당신 어디 가서 농사짓는다고 하지 마라. 농부들 욕먹는다.’며 촌부로 인정을 안 한다. 삼십 수년을 한솥밥을 먹고 농부를 따라다니며 농사를 지었지만 여전히 나를 어정잽이 취급이다.

 

 그러므로 총각의 일솜씨를 보는 농부의 마음이 어떻겠나. ‘첫술에 배 안 불러요.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요령도 생기는 거요. 당신이라고 처음부터 농사 잘 지은 것도 아닐 텐데. 성질내지 말고 가르치소.’하면 ‘내 말을 안 들으니까 그렇지.’한다. 모두 자기 생각이 있고, 고집이 있다. 자기식대로 일처리를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두세 번 가르쳐줘도 못 알아듣고 자기 고집대로 하면 그대로 놔둬는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경험과 실수를 통해 배운다고 하지 않는가. 

 

 숲을 가득 채운 진달래꽃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 하루는 진달래 꽃빛에 마음을 담고 살아야지. 젊어서는 몰랐던 것들이 소중해지는 나날이다. 하루하루 작별의 나날인 줄 알면 그 하루가 참으로 소중하고 알차게 느껴진다는 사실도 내 나이쯤 되어야 아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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