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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r 24. 2022

20. 잡초도 꽃이다

잡초도 꽃이다.    


 

 보슬비가 내린다. 잎눈이 맺힌 나뭇가지에 은방울꽃이 달린다. 가만히 바라보면 그 속에 내 얼굴이 있다. 손가락을 갖다 대면 은방울은 물로 변해 내 손가락을 적신다. 우울을 먹고사는 괴물 한 마리 내 속에서 자란다. 비 오는 날은 우울을 먹지만 햇살 나는 날은 햇살을 먹지 않을까. 맑음과 흐림, 음과 양, 어둠과 빛, 분리될 수 없다. 개체 속에 든 상반된 것들도 삶이 있기에 지속되는 것이다. 살아야 한다는 명제를 깨우치지 않아도 숨만 쉬면 삶은 계속된다. ‘그 사람 왜 죽었을까?’ 심각하게 말하는 상대방에게 ‘숨을 안 쉬었겠지.’ 단순한 대답이 진실이지 않을까. 숨을 쉬면 살아있다. 자연의 모든 피조물은 숨을 쉬니까 살아있다고 말한다. 


 눈 소식이 날아왔다. 나뭇가지에도 장독간에도 담장 위에도 소복소복 쌓인 눈 사진이다. ‘꽃들이 춥겠다.’ 답장을 보냈다. 여긴 비가 오기 때문이다. 갈색 사이에 도드라진 빛은 초록 잎눈이요. 야생화다. 남녘에서는 눈이 그립다. 지난겨울은 잠깐 흩날리다 그친 눈을 본 것이 전부다. 봄눈을 보는 마음은 어떨까. 제 각각이겠지만 감성 여린 사람에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까. 눈은 겉보기엔 깨끗하고 순결하지만 보이는 것일 뿐이다. 눈을 녹여보면 온갖 부유하는 것들이 든 탁한 물이 된다. 눈과 비는 동급일까. 이삼일 째 비다운 비도 내리지 않고 보슬비, 안개비, 이슬비 정도였지만 골짝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젖은 나뭇잎을 밟고 골짝에 든다. 사방에 쌓인 검불과 가랑잎은 썩어서 거름 되길 기다리는 눈치다. 그 속에 여린 씨앗 하나 키워내겠지. 골짝 물이 제법 흐른다. 바위틈에 손을 댄다. 손바닥에 고인 물을 마셔본다. 눈은 녹으면 흙탕물이지만 비는 받으면 맑다. 골짝 물은 고이지 않고 흐르기에 맑다. 손바닥으로 물을 받아 자꾸 마신다. 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이다. 죽고 사는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사는 공간이 자연이다. 인간 역시 그 자연의 일부일 따름이다. 늙고 병드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문제 될 것도 없다.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주변인을 힘들게 하는 것이다. 


 야생화 전문 사진작가가 있다. 작은 풀꽃인데도 어찌나 곱게 찍는지. 그 꽃을 여러 각도에서 찍을 때 모습을 떠올리면 다른 말이 필요 없다. 꽃에 대한 사랑이다. 야생화는 그 꽃과 눈높이를 맞추지 않으면 아름다움을 감지하기 어렵다. 거기에는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이 있다. 틈만 나면 전국 어디든 야생화를 찾아 떠도는 그는 야생화와 사랑을 하는 중이다. 야생화처럼 소박하고 차분한 성격 아닐까. 그 작가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사철 야생화 사진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평온해진다. 사진에 든 여러 각도로 찍은 꽃의 모습이 어찌나 섬세하고 고운지. 내 주변에도 흔한 야생화지만 사진으로 남은 꽃은 흔한 야생화가 아니다. 사진사가 준 생명은 눈부시다.  

 텃밭 가에 쪼그리고 앉는다. 빈 텃밭은 이미 온갖 풀을 키운다. 그중에 가장 넓게 자리를 잡은 것이 큰 개불알 꽃이다. 보랏빛 작은 꽃송이가 눈부시다. 사진을 찍기 위해 손 전화를 들이댄다. 큰 개불알 꽃으로 알려졌지만 봄까치 꽃이라고도 한다. 말라리아를 예방하고 학질을 치료하며 요통이나 관절통, 소아 음낭의 치료에 사용한다. 항암, 항염, 말라리아, 심혈관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약초다. 흔하디 흔한 잡초지만 민간에서는 어린순은 나물로 먹고 말려놨다가 달여서 먹으면 위에 열거한 병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앙증맞다. 자세히 봐야 아름다운 풀꽃이다. 사진 몇 장 찍고 돌아서는데 가슴이 아리 하다. 저 우묵한 풀꽃을 제거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텃밭의 골을 타고 두둑을 지어야 할 시기다.


 겨우내 큰 개불알 꽃을 봤다. 따뜻한 양지에는 큰 개불알 꽃만 핀 것이 아니었다. 주름잎 꽃도 피고, 광대나물 꽃도 피어 있곤 했다. 광대나물 꽃은 진한 분홍빛이다. 코딱지 나물로도 알려져 있다. 큰 개불알처럼 광대나물도 어린순은 나물로 먹는다. 나물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지천이다. 지칭개도, 뽀리뱅이도 어린순은 나물로 먹는 것들이다.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풀을 잡초나 잡풀이라 한 것은 왤까. 먹을 수도 있고, 약초로도 쓰임새 있지만 너무 흔하기에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리라. 잡초나 잡풀은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분류된다. 귀한 대접받으려면 야생에서도 춘란처럼 귀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흔한 잡풀이 있기에 귀한 대접받는 꽃도 있는 것이다. 인간사도 마찬가지다. 한 나라를 지탱하는 것은 평범한 보통사람들이다. 그 보통사람들이 뽑은 일꾼이 정치꾼이다. 일꾼을 잘 가려 뽑아야 일의 능률이 오른다. 일꾼을 잘 못 뽑으면 그 불이익은 오롯이 국민에게 돌아온다. 국민을 민초라고 한다. 한 마디로 민초는 잡초, 잡풀이다. 그 민초가 없으면 정치꾼도 없다. 우리는 한 나라를 좌지우지할 일꾼을 제대로 뽑은 것일까. 뉴스를 접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지켜볼 것이다. 잡초는 질기다. 민초와 잡초는 같은 과다. 민초는 인내와 끈기라는 꽃을 피운다. 일꾼에 따라 어떤 꽃을 피울지 스스로 결정한다. 일꾼이 가장 낮은 자세로, 애정 어린 시선으로 돌보고 바라볼 때 민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선사할 것이다. 잡초도 꽃이다. 숨 쉬는 것은 다 소중한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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