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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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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r 21. 2022

19. 안개비는 사부작사부작

안개비는 사부작사부작     



 안개비가 내리는 날은 마음까지 착 가라앉는다. 하룻밤 새 달라진 나뭇가지다. 초록 잎눈이 새치름하게 내다본다. 풀잎에 은방울이 조롱조롱 달렸다. 마당은 비에 젖고, 젖은 잔디 사이로 방긋방긋 웃는 것은 토끼풀이다. 이대로 두면 마당 전체가 토끼풀 밭이 될 것 같다. 토끼풀은 제거하기 쉽지 않다. 마디 하나만 있어도 금세 뿌리를 내리고 뻗어나가면서 잔디를 고사시키는 역할을 한다. 자리를 넓게 잡기 전에 절단을 내야 하지만 나는 그 푸르고 동그란 잎이 예뻐서 바라보기만 한다. 차나무 울타리 밑으로는 지칭개와 뽀리뱅이, 큰 개불알, 주름잎, 냉이 등, 봄풀들이 하루가 다르게 도드라진다. 


 몇 년 전 일본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옛날 식 건축물이 있는 달동네를 돌아봤었다. 좁은 마당에도 정원이 참 예뻤다. 오랜 세월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인공정원이었다. 일본의 민족성이겠지만 아기자기하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우리나라도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집이 많다. 정원은 주인의 손길로 익어가고 다듬어져 간다. 나무와 풀, 꽃에 대해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하고 아기자기한 성품을 지녀야만 정원 하나도 제대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아름다운 정원을 즐길 줄만 알지 가꿀 줄은 모른다.


 우리 집은 마당이 꽤 넓다. 내 손으로 만든 것은 없다. 모든 것이 농부의 의지대로 만들어진 정원이다. 마당가에 손바닥만 한 차밭이 있고, 숲으로 둘러싸인 집은 숲 자체가 정원이다. 마당가에 나무 몇 그루 있다. 툭 터인 마당이 좋다. 한 때 뒷산을 돌아다니며 야생화를 파다 심었던 적도 있다. 꿀풀 군락을 만들어 꽃을 즐기기도 하고, 솔잎 채송화며 사랑초, 장구채, 취나물, 개미취 등, 야생화로 꽃밭을 꾸미기도 했지만 부지런한 농부 손에 가차 없이 사라지는 것들을 봤다. 야생화는 꽃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잡초였다. 잔디를 가꾸려면 잡초제거는 필수였다. 지금은 잡초랑 잔디랑 공존하는 것을 관망만 한다. 힘에 부쳐 마당 가꾸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한 곳에 터 잡고 살다 보니 정원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는지 오가는 사람들이 좋다고 한다. 삽짝 가에는 온통 개나리 군락이다. 꺾꽂이로 심어 키운 것들이지만 농부가 거세를 해 버려서 예전 같은 꽃담은 아니다. 대신 산자락 여기저기 진달래꽃이 만발하고 집 앞의 벚꽃이 피면 우리 집도 덩달아 꽃 궁궐이 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들도 젖어 사는 사람에게는 익숙하다. 무심히 지나치다가도 밖에 나갔다 오면 내 집이 좋은 줄 안다. 밤이면 별이 쏟아져 내리고 달빛이 강한 날은 달빛 그늘이 아름다워 잠들기 싫어지기도 한다. 


 안개가 자욱하게 감싼 집은 사방에서 새들의 맑은 지저귐이 들린다. 환풍기에는 어린 새들이 재재거린다. 어미와 아비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서로 먹겠다고 앙탈하는 소리조차 어찌나 맑게 들리는지 귀를 열어놓고 한참을 서성 거리기도 한다. 음식물 찌꺼기를 커다란 통 위에 얹어놓으면 온갖 새들이 서로 눈치 보며 날아 앉는다. 창가에 서서 새들의 몸짓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청계를 몇 마리 키우다 비워버린 닭장이 을씨년스럽다. 도둑고양이 때문에 닭 키우기를 접어버렸지만 빈 둥지를 바라볼 때면 닭들이 놀고 달걀을 훔치는 재미가 사라진 것이 못내 섭섭하다.


 빨랫줄에 걸린 거미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맑은 날은 보이지도 않던 거미줄에 안개비는 은방울꽃을 달았다. 톡 치면 화르르 쏟아질 것 같은 맑은 구슬이다. 거미줄에 매달린 물방울을 보며 윌리엄 헨리 허드슨이 쓴 <녹색의 장원>이 떠올린다. 주인공 소녀 리마는 거미줄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책에 푹 빠져 살던 소녀시절 읽은 소설이라 줄거리를 속속들이 기억할 수 없지만 신비로운 소녀 리마의 모습은 기억에 남아있다. 녹색의 장원은 슬픈 사랑이야기였지 싶다.  


 비 오는 날은 따끈따끈한 국물이 그립다. ‘짬뽕 어때요?’ 내 말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농부는 동네 친구 부부를 청한다. 읍내 중국집에 가서 사천 탕수육과 짬뽕을 먹고 동네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동네도 두드러지지 않지만 해마다 조금씩 변화를 거듭한다. 예전 젖소를 키우던 목장 집은 찻집과 양봉 농원으로 거듭나고, 수제 맥주와 돈가스 등을 팔던 음식점은 소고기 국밥집과 커피 전문점으로 바뀌었다. 그 아래는 농가 맛집이 성업 중이다. 맛집이 생기자 멀리 나갈 일도 없이 한 끼 때우기 수월해졌다.


 그러나 앞으로는 외식도 자제해야 할 것 같다. 물가가 끝없이 치솟기 때문이다. 농사도 거의 접어버리고 국가에서 나오는 쥐꼬리만 한 연금으로 살려면 밥 차리기 싫다는 핑계로 밥 사 먹으러 나가는 것도 자제해야지 어쩌겠나. 반면 아무려면 어떠랴. 돈은 돌고 돌아야 썩지 않는다. 내 복만큼 산다. 들어오고 나가는 돈 따져봐야 본전이다. 태평스러운 것도 삶의 지혜 아닐까. 


 어둠살을 밟으며 집으로 오는 길에는 꽃비가 내린다. 길섶은 매화나무 가로수다. 연분홍 꽃잎이 눈처럼 떨어져 구른다. 산촌은 봄이 더 깊어지면 사방팔방 푸름과 울긋불긋 꽃 대궐이 될 것이다. 세상사 어지러운 소식들 탁 접어버리면 우리 집은 무인도가 되고 샹그릴라 버금가지 않을까. 이런 맛에 촌부로 늙어 가는지 모르겠다. 안개비는 여전히 사부작사부작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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