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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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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r 18. 2022

18. 유리창이 더럽다.

유리창이 더럽다.     



  청소를 해야겠다. 한 번 거슬리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성격인데 청소가 겁난다. 햇살에 비치는 유리창이 너무 더럽다. 뿌연 안개가 낀 것 같다. 맑은 창호지를 붙인 것 같다. 작정하고 대청소를 해야 깨끗해질 것 같다. 유리창에 비누칠하고 물청소하고 닦아내는 일, 예전에는 유리창 청소도구를 모두 갖춘 적이 있다. 대청소도 자주 했었다. 거미줄도 걷어내는 게 일이었다. 그렇게 부지런 떨고 나면 마음도 개운한데 문제는 수시로 텅텅 집을 흔드는 소리에 놀랐다. 문을 열고 나가보면 크고 작은 새들이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기절해있거나 아예 숨이 끊어져 있곤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라 그 새들을 주워 호미 들고 못 가에 나가 묻어주곤 했었다. 더러우면 어때 유리창 청소하지 말자. 마음먹었지만 한 번 꽂히면 그냥 넘어가기 어려워 힘들었다. 지금은 몸이 더 피곤하니 그냥 둔다. 아침에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집안 청소도 해야 하는데 농부도 청소 돕기 싫은 모양이다. 청소기 돌려줄 생각을 않는다. 집안이 온통 먼지 구덩이 같다. 유리창은 더 더럽게 보인다. 한 마디로 우리 집은 먼지투성이다. 깔끔하고는 거리가 멀다. 청소하는 시간이 아까울 때도 있었다. 지금은 시간이 남아돌아도 청소하기 힘들어 대충 포기하고 산다. 

 

 딸은 집에만 오면 날마다 청소한다고 부산 피운다. 대충하고 살자. 여긴 시멘트 먼지가 아니라 흙먼지라 마시면 약 된다. 엉터리 정당성을 들이대곤 하는데 딸이 집에 왔으면 좋겠다. 청소하란 말하기도 전에 반질반질 윤기 나게 해 줄 텐데. 산속 너른 집이 거추장스러워진다. 원룸 한 칸에서 생활하면 편할까. ‘우리 이사 갈래? 이 집 팔고’ 한 때 농부가 집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자 할 때는 기를 쓰고 반대했는데 지금은 내가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다. 

 

 노인이 되면 병원 근처에서 사는 게 편리하고, 시장 가까운 곳이 편리하고, 주택보다 아파트가 편리하고, 그 세 곳을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자리가 좋단다. 현재의 우리 집은 노인이 살기에는 모든 게 불편하다. 승용차가 없으면 바깥나들이가 어렵다. 마을버스가 하루에 세 번 지나다니지만 주정차하는 곳이 멀다. 우리 집 앞의 도로는 가풀막이다. 집 앞에 내려가 손을 들어도 태워주지 않는다. 때가 덕지덕지 묻은 유리창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다가 유리창 청소 대신 집안 청소를 하기로 했다. 붓글 연습한다고 앉은 농부를 밀어냈다. 

 

  “시끄러우면 나가든가. 청소기 좀 돌려주던가.”

  농부는 슬그머니 현관 밖으로 나간다. 청소기 쌩쌩 돌리고 걸레질했더니 땀이 난다. 그나마 깔끔하다. 유리창을 비추던 햇살이 슬그머니 비껴 나자 더러움도 안 보인다. 소설책을 잡았다. 개를 산책시켰나 보다. 농부가 들어온다. 점심때다. 한 끼도 굶고 넘어가지 못하는 삼식이 할아버지와 삼식이 할머니다. 밥 차리기 싫다. 새 반찬 만들기 싫고 늘 먹는 김치도 먹기 싫다. ‘우리 나가서 밥 먹지? 돈 아껴야 하는데 외식이 잦은가? 어쩌지? 한 끼 건너뛸까? 등 너머 뷔페 음식점 생겼다며? 그 집 맛 어때?’ 그러면서 무릎에 펴 놨던 책을 덮었다.  

 

 “거기 맛없는데.”

 “그 집 맛없으면 다른 곳으로 가든지.”

 그렇게 나갔다. 맛없다는 뷔페 음식점이지만 호기심이 인다. 등 너머에 그런 음식점이 생긴 줄 몰랐었다. 도착해보니 옛날에는 유명했던 불고기 집이다. 어른들 모시고도 오고 생신 때 대가족 모시고 여러 번 왔던 자리다. 주인은 무슨 호텔에서 요리사를 했단다. 무슨 셰프라는 플래카드가 요란하게 붙어있다. 시골 사람들에게도 셰프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졌을까. 일단 음식을 먹어보자. 옛날 집은 사라졌다. 내부를 뷔페식으로 고쳤다. 초밥 외에 몇 가지 음식이 진열되었는데 손님이 적다 보니 그런가. 때깔이 바랬다. 농부 말이 맞았다. 

 

 점심을 먹고 동네 한 바퀴를 하고 오는데 왜 비위가 상할까. 집에 도착해 농부랑 무슨 말 끝에 ‘당신은 한 마디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 꼭 내 말에 토를 달아.’ 한다. 그 말에 ‘젊어서도 당신한테 안 지고 살았는데 이 나이에 당신한테 지고 살아요? 당신 정수리에 올라앉아 누르지 않는 것만도 고맙다 생각하소.’ 톡 쏘아 놓고는 힁허케 수영장으로 날아 가버렸다. 신혼도 아닌 부부가 툭하면 티격태격이다. 대화법이 잘못되어서 그럴까. 오랜 세월 앙금이 쌓여서 좋게 말해도 고깝게 받아들이는 경향 때문이다.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먼지가 너무 많이 끼었다. 불신과 불만이다. 유리창의 묵은 때 같다.

 

 수영장에서 돌아와 마당 빗자루로 유리창에 묻은 거미집과 거미줄을 걷어냈다. 참 더럽다. 예전에는 애들과 물청소도 했었지만 아이들도 없다. 우리 집은 새들 천국이다. 참새들, 오목눈이, 멧새,  딱따구리, 곤줄박이, 후투티, 직바구리, 까치, 까마귀 등등. 요즘은 깃이 온통 짙은 연두색이고 목 아랫부분이 노란 크고 작은 텃새가 많다. 집 뒤란에 단감 홍시를 먹이로 내 놓아주기 때문이다. 창문이 너무 깨끗하면 유리창에 비친 나뭇가지를 보고 날아들다 머리를 박는다. 헤딩슛! 따앙! 내 간도 덜컥한다.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유리창 깨끗이 닦지 않는 거다. 그래도 유리창은 더럽다. 내 마음이 꼬인 것처럼 거미줄이 꼬였다. 대충 닦았는데도 내 마음부터 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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