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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꽃씨

<단편소설. 2>

by 박래여


2. 그림자


엄마는 자꾸 기운을 잃어간다. 꼬장꼬장하던 몸이 축축 늘어진다. 마루에 나와 누웠다가도 ‘날 좀 일으켜 다오. 꽃밭에 가고 싶다.’며 마루를 내려선다. 나는 엄마에게 지팡이를 건네주고 엄마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장독간 앞으로 모신다. 엄마를 모탕에 앉혀놓고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엄마는 채송화를 쓰다듬어보고 꽃밭에 난 풀을 뽑았다. 일찍 핀 채송화는 씨 주머니를 달았다.

씨가 익을 라모 안즉 멀었제? 익은 기 이시모 좀 따 도고.

아직 안 여물었어. 엄마는 왜 채송화를 좋아해?

예뻐서.

왜 예쁜데?

그 사람이 준 거다.

김 소좌 말하는 거지?

고마운 사램이제.

엄마의 눈은 또 멍 때리기를 한다. 엄마는 어디를 헤매고 계시는 걸까. 김 소좌는 사랑하는 사람일까. 은인이라거나 고마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원수는 아닌 모양이다. 전쟁 중에 아버지를 살려준 사람일까. 엄마를 살려준 사람일까. 우리 집안을 살려준 사람일까. 엄마는 육이오라면 진저리를 친다. 동존상잔의 비극이었고 이웃사촌의 정조차 불신의 늪에 빠지게 한 전쟁, 동포끼리 총칼을 맞댔고 피를 흘려야 했던 육이오 동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김일성은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기습 공격을 감행했었다.

그해 여름에서 엄마의 기억은 왔다 갔다 한다.

엄마, 안으로 들어가자. 햇볕이 너무 뜨겁다.

엄마는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다. 나는 엄마의 옆구리에 팔을 걸고 천천히 마당을 지나 현관문을 열었다. 엄마는 축담의 댓돌을 짚고 마루에 올라앉았다. 나는 엄마의 하얀 코고무신을 벗겨 댓돌 옆에 놓았다. 엄마는 발이 참 작았다. 중국 여인들이 했던 전족을 연상케 하는 작은 발이다. 내 발보다 손가락 하나는 작은 발이다. 나는 엄마의 발을 조몰락거리다 두 다리를 잡아 마루 안으로 밀었다.

엄마, 방이 더 시원해. 방에 가자.

야가, 기계바람이 싫다는데도 자꾸 방에 들어 가자네.

엄마는 툴툴거리면서도 마루를 뿔뿔 기어 방으로 들어가 눕는다. 나는 베개를 엄마 머리 밑에 받쳐놓고 냉방기를 아주 약하게 틀었다. 흙집이라 그런지 방안은 시원한 편이다. 나는 부채를 찾아 엄마에게 부채질을 해 준다. 부채 바람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엄마가 눈을 떴다.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은 공허하다. 이러다 덜컥 돌아가시면 어쩌지? 방정맞은 생각이 들어 고개를 흔들었다. 엄마의 눈은 천정의 대들보에 올라가 앉았다.

그해 유월은 초입부터 한 여름 맹키고 폭폭 찌는 날이었어.

그날 말이다. 마루에서 할매랑 내가 마악 점섬을 물라캤제. 개다리소반에 얹힌 기라꼬는 남새밭에서 딴 풋고추 서너 개랑, 된장 한 종지, 찬물에 만 꽁보리밥 한 덩이었제. 나는 니 엉가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리고 있었던 기라. 너거 아베는 장에 가고 없었제.

원이 아부지 왔소?

갑재기 살박에 들어서는 사람이 있는 기라. 구장이더마. 구장 말이 전쟁이 터질기라데. 북한군이 미 제국주의로부터 남조선 인민을 해방시키겠다고 했다더마. 무신 소린가 했제. 일본 놈들 물러간 지 올매나 됐다고 저러나. 구장은 ‘원이 아부지 오모 지체 없이 경찰서에 가소. 안 그랬다간 빨갱이로 몰려 개죽음 당하요.’ 안 카나. 보도연맹인가 뭔가 하는 것에 가입하라 쿠는 걸 안 했다고. 아직 안 늦었으니 퍼떡 하라쿠데. 그래야 목심 부지 한다고. 나라에서 맹근 것잉께 안 하모 큰일 난다쿠더라. 그런데도 너거 아부지는 안 했제.

육이오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이승만 정부는 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들을 모두 검거해서 학살하라 했다던데. 그때 죽은 사람 10만 명이 넘는다던데.

그렇다더마. 그때 너거 아부지는 용케 살아났지만 결국......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반강제로 보도연맹에 가입했던 사람들에 대한 국가의 소거명령이 내렸다. 북한군에게 협조할 것이라고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전국에서 빨갱이라는 죄명을 씌워 잔혹한 학살로 이어졌다. 그들은 빨갱이, 빨갱이 가족, 사회주의 불순분자라 불렸지만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가입한 소박한 농민이었고 양민이었고, 독립 운동가였고, 애국자가 태반이 넘었다. 이승만 정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대한민국의 밤낮은 곤두박질쳐 댔다.

1950년 6월 말부터 3개월 여, 지리산 전역에도 붉은 꽃이 피었다. 전쟁이 났다지만 지리산 골짝 사람들은 소식을 듣기 어려웠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았다.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다는 소식도 봇짐장사를 통해서나 오일장에 나가야 들을 수 있었다. 그때는 먹고살만한 부잣집이나 라디오가 있지 일반 촌민의 집에는 라디오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바깥세상 소식을 알 길 없는 산골 사람들의 일상은 한결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막힌 벽이라도 틈새는 있기 마련이고 그 틈새를 뚫고 들어오는 바람이 존재한다. 그 바람이 전해주는 소식은 오금이 저리는 것이었다. 일본으로부터 해방됐다고 태극기를 높이 들고 환성을 부르던 때가 언제였든가. 미국과 소련은 단일민족이었던 토끼의 허리를 잘라 자유국가와 공산국가로 저희들끼리 나누어 버렸던 것이다. 북쪽과 달리 남쪽은 일본 경찰의 끄나풀 노릇을 하던 순사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경찰로 탈바꿈했고, 일본인을 등에 업고 고리채를 놓던 지주나 양반, 중인은 여전히 주인행세를 했다. 다만 신분제에 억눌러왔던 상민과 천민은 자연스럽게 반상(班常) 타파, 평등 사회를 주장하는 사회주의 사상에 호응하게 됐다.

인민군이 승승장구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인민군은 물밀 듯이 남쪽으로 밀려 내려온다고도 했다. 지리산 골짝 사람들도 숨을 죽였다. 전쟁동안 낮에는 경찰이 설치고, 밤에는 공비가 설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면소에 설치된 방공 사이렌이 울리면 사람들은 너나없이 방 안으로 숨었다. 밤에도 문에 검은 천을 두르고 불빛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단속했고, 뒷산이나 대나무 밭, 마루 밑, 어디든 방공호를 파 놓고 여차하면 가족 모두를 이끌고 숨어야 했다. 이웃 간에도 불신의 벽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마을의 구장이나 반장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문단속을 시키고 낯선 사람을 경계하라고 했다.

아이고 이기 무신 일이고? 순사들이 눈이 벌겋다. 빨갱이 색출한다고 낯선 사람만 보모 잡아 디린단다. 엊그지 강구애비가 잽히 갔단다. 한양에서 공부한다 카디 빨갱이 물이 들어 도망 댕기다 지쳐 소리 소문 없이 지 안태 봉에 들어온 기라. 강구에미는 강구애비를 다락에 숨카 놨더란다. 낮에는 다락에 들어가 있다가 밤에 살째기 나와서 밥 묵고 잠을 자다가 잡힜다네. 누가 순사한테 찌린 기라. 안 그라모 다락에 숨어 있는 가아를 우찌 잡아냈것노. 그 집에 다락이 있는 줄 아는 사람 짓이제. 누가 일러 바친 기 아이모 모리제.

그러다가 이런 소식도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인자, 강구네 클 났다. 지난밤에 빨갱이들이 경찰서를 급습했단다. 불을 놔서 경찰서를 태웠단다. 그때 잽힜던 강구아베랑 몇 명을 빨갱이가 빼 갔단다. 그 불똥이 오데로 튀것노. 강구어메랑 저거 시아베가 순사한테 잽히 갔단다. 며칠 만에 풀려났는데 꼴이 말이 아니다. 머리는 산발이고, 온몸에 피멍이 들었다더라. 강구할배는 골병이 들어 똥오줌 반낸단다. 아매도 며칠 수를 못하지 싶다. 그래놓고도 순사는 강구네 식구를 감시한단다. 장에도 못 간단다. 강구할배가 올 낼 하자 강구어메를 날시고 오라 가라 한단다. 순사들이 강구아베 잡을라꼬 눈이 벌겋다. 니 죽고 내 살자는 판에 뭔 짓인들 몬 하것노.

강구 할배가 죽었다.

칠월이 되었다.

인민군이 서울을 차지하고 남으로 진격중이라 했다. 피난민도 남으로, 남으로 전쟁을 피해 줄을 이었다. 그동안 지주나 양반으로부터 핍박당하던 상것들이 저희들 세상을 만났다고 날 뛰었다. 낮에는 경찰이 빨갱이 색출했다. 말 한 마디 잘 못해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마구잡이로 잡아갔다. 지리산 인근 지역은 전쟁의 참혹함보다 뒤죽박죽 된 민심으로 불신시대를 살아야 했다. 낮에는 경찰 세상이고 밤에는 빨치산 세상이었다.

세상이 하루 밤새 낮과 밤으로 바뀌었다.

밤 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 입 조심 하래이. 나라 꼬라지가 우찌 될라꼬 이런다냐. 불평불만 했다가는 바로 잽히 간단다. 머심이 지주를 잡아다 죽창으로 찔러 죽인다는 소문도 있더라. 아이고 이 일을 우야모 좋노.

그것만이 아니다.

밤에는 더 무섭제. 마구미가 된 빨갱이들은 밤에 들이 닥쳐서 마구잡이로 사내들을 잡아다 총부리를 들이댐서 짐 꾸러미 지우고 앞장세우는데 안 따라 갈 사람이 있것나. 안 간다고 했다가는 개머리판에 대가리가 박살날 판인데. 우리 동네는 타성바지가 많으이께 조심해야 한데이. 서로 앙심 품었다가 이참에 앙갚음 하는 젊은 것들도 있단다. 밤손님은 상민 천민을 잘 살게 해 주는 세상을 맹근단다. 입에 풀칠도 몬하던 집에서는 너도 나도 대환영이란다. 하지만 그 맴을 들킸다가는 줄초상 난단다. 순사가 벼르고 있다가 안사람까지 잡아다 족친다니 누굴 믿어야 하꼬.

아이고 징그런 시상일세.

그러다가 다시 새 소식이 들렸다.

인자 강구네 살판났다. 강구아부지 세상이 됐다 안 카나. 인민군 세상이 됐다 카네. 강구아부지가 총칼 차고 부하들 데불고 왔단다. 미처 도망가지 못한 경찰 끄나풀이나 군인 가족들이 잡히 들어갔단다. 국민핵교 운동장에 모아놓고 총을 따따따 싸 삐기도 하고, 뒷산에 구덩이를 파 놓고 대창으로 찔러 쥑이기도 한단다. 강가에 끌고 가서 쥑이기도 한단다. 이 일을 우야모 좋으꼬. 사램 목심이 포리 목심이다. 원이 아부지는 강구아부지 친궁께 안심해도 될랑가.

인민군이 남조선 해방을 외치며 지리산 일대를 점령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1947년에 군에 입대를 했었다. 강원도 화천군의 비무장지대에서 근무를 했다. 철책선 순찰을 돌다가 지레가 터지는 왼쪽 허벅지에 파편이 박히는 사고를 당했다. 아버지는 의가사 제대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아버지는 강구아버지와 친구였다. 지리산 일대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조선인민 유격대, 즉 빨치산이었던 강구아버지는 내 아버지를 포섭하려고 애를 썼다. 인민군이 38선을 넘어 밀려 내려오기 전부터.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세상, 불신의 늪에 빠져드는 동족상잔, 모두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지리산 일대 사람들은 더욱 심했다. 경찰과 공비는 극과 극을 달렸다. 말 한 마디 잘못 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도 있는 불안한 시절이었다.

육이오 전쟁 소식이 들리자마자 아버지는 숨었다. 낮에는 뒷산 굴속에 들어가 숨고 밤에는 마루 밑에 파 놓은 방공호에 들어가 숨었다. 세상이 괴괴해지면 살그머니 나와 작은 방에 들긴 했지만 날 새기 전에 숨어야 했다. 젖먹이 딸이 있는 엄마는 날마다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았다. ‘박샌 아직 안 들어왔소?’ 동네 구장이 기웃거리며 묻기도 하고 불시에 경찰이 나타나 집 안팎 수색을 하기도 했다. 엄마는 아버지가 부산으로 돈벌이 갔다고 둘러댔단다.

엄마는 눈을 감고 회상에 잠겼다.

나는 엄마 옆에 누워 엄마의 마른 손을 꼭 잡았다.

김 소좌는 참 양반이었어. 평양에서 나고 자랐다더마. 도원이를 참 예삐다 했제. 한가할 때면 도원이를 목마 태우고 못 둑에도 나가고 장에도 면소에도 데리고 댕기고 그랬제.

인민군이 지리산을 점령했을 시기에 김 소좌는 일개 분대를 데리고 우리 집에 왔었다. 타작마당에 군용 텐트를 쳤다. 강구엄마와 우리 엄마, 할머니는 인민군을 위해 밥을 지었다. 마당가에 가마솥을 걸어놓고 밥을 해 댔다. 그들은 동네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았고 점잖았다. 김 소좌는 동네의 닭 한 마리도 그냥 가져오지 못하게 했다. 양반, 상민, 천민, 노비 할 것 없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저들의 임무라고 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숨어 지냈다. 마루 밑에.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다.

빨치산 세상이 되자 강구아버지는 기세가 등등해져서 설치고 다녔다. 경찰이나 군인가족을 색출하여 인민재판을 벌였다. 미처 대처로 빠져나가지 못한 경찰이나 군인가족은 강구아버지에게 잡혀 산골짜기나 강변에서 총살을 당했다. 이웃 간에 쌓인 원한 관계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어찌 없겠는가. 밥술이나 먹고 살던 지주나 소작인이 미처 피난가지 못하고 남았다가 화를 당했다.

박 동무, 안 왔소? 인민천하가 됐는데 박 동무는 도대체 오데 있는 기요? 반동분자로 몰리고 싶어서 숨은 기요? 반동분자들 싸그리 잡아디리는 판인데. 요럴 때 심을 보태야제.

강구아버지는 수시로 아버지의 부재를 확인했다. 어디 숨었는지, 어디로 갔는지 캐물었다. 눈에 불을 켜고 아버지를 찾았다. 그는 이런저런 핑계로 엄마를 괴롭혔다. 평소 예뻤던 엄마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수시로 집에 들러 엄마를 괴롭혔다.

동무, 우리 누님께 눈독 들이지 마시라요.

강구 아부지가 치근댈 때마다 내 바람막이가 되어준 사람이제.

김 소좌는 세 살배기 젖먹이를 안고 있는 엄마에게 각별했다. 그가 데리고 온 대원들 역시 엄마에게 각별했다. 그들은 예의 발랐고, 위계질서가 반듯했다. 보리 베기, 모내기에 참여했고, 밤에는 강구네 작은 방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사회주의 평등사상에 대해 가르쳤고 모두가 잘 사는 나라, 똑 같이 분배받을 수 있는 세상에 대해 가르쳤다. 양반도 없고, 천민도 없는 모두가 똑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는 것이다.

누님, 도원이가 자라는 세상은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될 기야요. 통일을 해야지요. 미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인민의 나라를 만들어야지요. 우리 민족을 가라놓은 미제국주의자들을 하루 빨리 처단해야지요. 누님, 꼭 그런 날이 올 겁니다. 남북이 하나 되는 그런 날이.

엄마의 눈이 스르륵 감긴다.

가는 숨소리가 고르게 들린다.

엄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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