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끝>
3. 채송화
엄마는 며칠 째 기운을 못 차렸다. 미음 몇 숟가락 겨우 넘기셨다. 의사를 모셨다. 면소재지에 있는 유일한 병의원 김 원장님은 노환이라 방법이 없다고 했다. 돌아가실 때가 된 것 같다며 마음준비를 하라고 했다. 영양제 달아주고 주사 한 대 주는 것으로 끝이었다. 엄마는 아흔, 오래 살았다. 엄마는 늘 그랬다. 여든을 넘기면서 한숨을 쉬며 말했다.
무슨 죄가 많아 이래 오래 살꼬. 인자 가야제. 통일을 보고 가랬더니 볼 수 없을 것 같고. 인자 니 편하도록 내가 떠나야제. 너거 아부지 앞세우고 참 오래 살았다. 강구네 식구도 그때 다 죽었다. 군인들이 우리 동네 사람들 죄다 빨갱이라고 잡아갔제. 할매랑 나는 그때 우찌 살았노 싶다. 사람은 말이다. 잡초 같은 기라.
3개월여 끌던 전쟁이 끝나고도 지리산 주변은 평화로울 수 없었다. 빨치산 활동은 9개월 정도 계속 되었고 군경은 공비 토벌작전이란 명목으로 민간인 학살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인민군이 지리산 인근에 거주한 것은 겨우 사나흘이었지만 그 여파는 피의 보복 시작이었다. 그 피의 보복에서 엄마는 살아남았다.
거기 말이다. 우찌 된 노릇인고 하모.
김 소좌가 떠나기 전 날이었제. 내를 찾더마. 내한테 예뿐 줌치를 줌서 저거 어마이가 부적으로 맹글어 준 줌치람서. 그 줌치에 새까만 꽃씨가 들었더라. 두 가지라데. 해바라기랑 채송화라 카데. 해바라기 씨는 호박씨 맹키로 크고 채송화 씨는 자잘해. 해바라기는 자게고 채송화는 내 닮았담서. 장독간에 심어놓고 자개 보듯 하람서 웃더라. 전시중이라 언지 헤어질지 모르지만 통일 되모 오것담서.
또 이런 말도 했제. 헤어지기 싫다고. 하루속히 남조선 인민들 해방시키고 오것다고. 꼭 지달려 달라는 말도 했제. 내 보모 죽은 저거 누야 생각난다고. 일본으로 유학 가서 소식이 끊어졌다데. 첫눈에 저거 누야를 본 것 같더란다.
또 있제. 정 동무 믿지 말라더라. 정동무가 강구아부지제. 청 밑에 숨은 자형한테 안부 전하라는데 내가 기절초풍 할 뿐 안 했나. 진작 알고 있었단다. 알고 있었기에 지켜줄 수 있었다더라. 세상이 험악하니 아무도 믿지 말라캄서. 우리가 저거 밥을 해 준 것을 문제 삼을 때는 무조건 강요에 의해 억지로 했다고 발뺌하람서. 너거 아부지는 먼 데로 피신시키라 카데. 그람서 내 손을 꼭 잡더라. 통일 되모 꼭 찾아오것담서.
다음날 새벽이었다. 엄마는 인민군 밥을 해 주던 때라 일찍 일어났다. 이상하게 조용했다. 장닭 홰치는 소리조차 없었다. 온 세상이 괴괴했다. 엄마는 무섬증이 왈칵 들었다. 텃밭을 봤다. 군용 텐트를 쳤던 자리가 휑하게 비어 있었다. 그들은 소리 소문 없이 떠난 것이었다. 하루밤새 인민군이 빠져나가자 강구아버지와 그 패거리도 함께 사라졌다. 빨치산은 다시 산으로 숨고 거리는 군경이 차지했다. 아버지는 다시 햇볕을 보게 되었다. 선량한 민간인으로 돌아와 언니를 안고 밥상에 앉아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엄마의 행복은 잠깐이었다.
김 소좌가 떠나고 올매 안 됐을 기라. 그때 강구어메도 지 냄편 따라 갔제. 에린 강구는 저거 할매한테 매끼 놓고. 이판사판이다 싶어서 그랬것제. 그란데 팔월 열 사흗날 밤에 난데없이 강구아베가 들이닥친 기라. 부하 서너 명을 데불고 우리 집에 온 기라. 작은 방에서 자던 너거아부지를 끌어내 마당에 꿇이데. 반동분자람서 그 자리에서 총을 쌌제. 너거 할매랑 나는 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오돌오돌 떨기만 했제. 니가 뱃속에 든 줄도 몰랐던 때라.
팔월 열사흘 아버지 제삿날이다.
1953년 7월 27일 남북 간 전쟁은 끝났지만 지리산 인근 지역은 여전히 전쟁 중이었다. 지리산 일대에서 활동하던 빨치산은 수시로 유격전을 펼쳤고 국군과 경찰은 대대적인 빨치산 토벌 작전을 실행했다. 그 와중에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군경 합작 빨치산 토벌대는 산골 마을을 불사르고 소거 명령을 내렸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민간인을 몽땅 죽였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너거 아부지는 개죽음 당한 기라. 차라리 군대에서 죽었시모 유족 연금이라도 받을긴데. 강구 아베한테 그리 당할 줄 누가 알았것노. 좋게 보모 우리 가족이 산 거는 강구 아베 덕인지도 모르제. 안 그랬시모 우리 가족은 모돌띠리 빨갱이를 도왔다는 제목으로 끌려가 학살 당했시 끼다. 강구 할매랑 강구처럼. 그 사람이 하루속히 너거 아부지를 멀리 보내라 쿠더이. 그리 갈 줄 알았시까. 너거 아부지한테는 참말로 미안치. 니가 내 뱃속에 든 줄도 모르고 갔시니. 딸아, 채송화 씨를 받아 놔라. 내년에는 해바라기도 심어라. 내가 못 보모 우떤노. 니가 볼낀데. 휘유우~~ 되다. 눈 좀 부치 꺼마.
나는 엄마에게 얇은 이불을 덮어줬다.
4. 떠나다.
찬바람이 불었다. 채송화는 까만 씨 주머니를 조랑조랑 달았다. 엄마는 이제 일어날 기운조차 없다. 기저귀를 채웠다. 미음조차 넘기지 못한다. 묽은 미음에 빨대를 꽂아줬지만 그 빨대를 빨아들일 힘도 없어졌다. 겨우 한 모금씩 숟가락으로 떠먹이는 묽은 미음을 간신히 목울대로 넘겼다.
엄마, 병원에 갈래? 입원해서 영양제라도 맞자.
안 간다. 니가 쪼맨만 참아라.
나는 울었다. 죽어가는 엄마를 그냥 지켜봐야 하는 딸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엄마를 병원에 입원시킬 수도 없다. 주렁주렁 링거 달고 껍데기만 남은 몸에 바늘만 꽂아놓는다고 산 것이 아니다. 숨만 쉰다고 사람인가. 엄마가 산송장으로 고통 받기를 바라지 않는다.
엄마, 하고 싶은 말, 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말해. 당장 오라고 할게.
없다. 니 대에서 통일이 안 되모 다음 대에서 통일이 되것제. 온젠가는 통일이 될 끼다. 우리가 무슨 죄가 있노. 대가리들이 서로 지꺼만 챙길라고 혈안이라 그렇지.
통일이 되긴 할까?
온젠가는 되것제. 저기 농 안에 꽃이 그려진 줌치가 있을 기다. 갖고 와봐라.
나는 꽃 주머니를 찾아다드렸다. 앞뒷면에 채송화와 해바라기가 수놓인 낡은 복주머니였다. 엄마는 꽃 주머니를 가만히 가슴 위에 얹었다.
내 죽거들랑 이 줌치를 관 속에 넣어 도라. 요새는 사람이 죽으모 모다 화장한다 카더라. 내 죽으모 화장해라. 뼛가리는 대나무 밭에 나 있는 질에 뿌리거라. 그 사람이 부하들 데불고 그 질로 내리 왔다가 그 질로 떠나 갔제. 대밭을 나오는 그 사람을 보고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제. 눈이 부시더마. 싱긋 웃던 그 모습 때문에 죽지도 못하고 이래 지달렸는지. 다음 생에는 그 사람을 만내고 싶다.
엄마, 아버지가 섭섭하겠는 걸.
괘한타. 이번 생에는 일부종사 했으니 고맙다 캐야제.
엄마의 눈가에 눈물 한 방울 또르르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