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촌부 일기

내 인생의 한 컷, 특별한 결혼식

by 박래여

내 인생의 한 컷, 특별한 결혼식


요즘 자식들은 결혼과 거리가 멀다고 들었다. 연애는 해도 결혼은 싫다는 경향이 강하다고 했다. 부모가 맺어주는 것도 서로 손해 안 보려고 따지다 헤어지는 커플도 많다고 들었다. 우리는 농사꾼이라 가진 것도 없다. 남매가 알아서 산다기에 '어떤 길을 가든 너희들 인생이다.' 맡겨버렸다. 막상 나잇살 늘자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남매가 짝이 있다고 했다. 둘 다 짝이 있다지만 결혼시킬 엄두가 안 났다.


막상 아들이 결혼한다니까 걱정부터 됐다. 결혼비용 대 줄 능력도 없는 부모다. 그러면서도 아들이 결혼한다니까 좋았다. 자식이 가정을 가진다는 것은 부모로부터 완전한 분리를 뜻한다. 부모와 연결됐던 끈보다 부부중심으로 자신의 가정을 꾸며가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는 뜻이다. 나는 질문이 많다. 남의 자식 결혼식에 참석할 때는 봉투만 건네도 밥 먹고 오면 끝이었지만 내 자식 혼사라 혼주가 되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뭘 도와줄까? 결혼하려면 돈이 많이 들 텐데. 금값도 비싸고. 결혼비용은 얼마나 들 것 같아? 신혼집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우리 한복 입어야 해?

괜찮아요. 우리가 알아서 해요. 결혼반지는 은반지로 맞췄어요. 신혼집은 월세 살던 곳에서 좀 더 살려고요. 돈 모아서 집 장만하면 돼요. 옷은 평상복 한 벌 준비하려고요. 엄마아버지도 편한 옷으로 참석만 하시면 돼요.


사실 아들은 제천간디 대안학교 교사다.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농사꾼 부모도 능력이 없으니 결혼식은 엄두를 못 냈지 싶다. 그러던 차, 학부모님들이 결혼추진 위원회를 만들었다며 결혼날짜까지 정해줬단다. 그렇게 결혼식장, 결혼예물, 웨딩드레스 등, 판에 박힌 전통을 싹 갈아치우고 예비부부의 직장인 학교에서 평상복에 잔치국수로 마을 잔치 겸 학교잔치를 하게 된 것이다. 결혼비용도 그동안 둘이 모은 돈이면 해결될 것 같단다. 자립심 강하고 야무진 예비며느리의 제안이란다.


그렇게 아들 결혼은 학교 기숙사 마당에서 동료선생님과 중고 과정의 자제를 둔 학부모님과 졸업생 학부모와 제자들이 합심해서 어울림마당을 펼쳤다. 11월 중순, 결혼잔치 당일, 하늘은 어찌나 푸르른 지. 단풍은 또 어찌 그리도 선명하고 밝고 예쁜지, 따뜻한 날, 신랑신부도 하객도 들썩거렸던 날이었다. 어울림 마당 잔치자리 펴주신 학부모님과 예쁘고 야무진 며느리가 고맙고 귀한 딸 선뜻 내 주신 사돈 내외분도 고마웠다. 복덩이 부부 미래가 환하게 열리는 것 같았다.


사십 년 전, 우리도 그때 내 직장 옆에 있는 솔밭에서 야외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평상복에 가까운 하객들만 초청해서 간소하게 치르고 싶었다. 노처녀 노총각이었기에 특별난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허나 양가 부모님 반대에 부딪혀 부랴부랴 예식장을 예약했었고 결혼식장에서 예식을 올렸었다. 우리가 못했던 결혼식을 아들 내외가 하게 되었다. 평상복에 직장의 기숙사 잔디밭에서 학부모님과 동료 선생님과 제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신나고 특별한 결혼식을 했다. 사회를 맡은 학부모님의 해학, 오징어 가면을 쓴 함재비 일행의 익살, 신랑 달아매기, 신랑이 신부 업고 팔굽혀 펴기 등, 단풍들까지 와그르르 웃음꽃을 피웠다.


그랬다. 나는 혼주로서 아무것도 못해 줬다. 몸만 참석했다. 아들이 하자는 대로 따랐던 것이다.

결혼식 하루 전날 제천으로 향했다. 원래 외모 가꾸는 것에는 빵점인 나다. 편한 개량한복을 입고 가기로 했다. 농부는 사십 년 전 우리 결혼식 때 맞췄던 한복을 준비하란다. 두루마기까지 갖춰 입겠단다. 나는 사십 년 동안 몸무게가 엄청 늘어서 결혼식 때 맞춘 한복을 입을 수가 없다. 나는 그냥 편한 개량한복을 입기로 하고, 농부의 한복은 세탁소를 거쳤다. 사십 년이 된 한복을 입은 농부지만 꽤 괜찮아 보였다.


농부와 달리 허리 디스크와 척추 협착증과 무릎 관절이 망가진 나는 승용차도 오래 못 탄다. 며칠 전 단감 수확도 도울 겸 예비사위가 미리 왔고 농부대신 운전대를 잡았다. 제천으로 올라가는 내내 휴게소마다 들려 쉬었다 가기를 거듭했지만 내 몸은 피로가 쌓여 경직되고 퉁퉁 붓기 시작했다. 단감 수확 철이었으니 피로가 누적된 점도 있었다.


아들내외는 기저질환자인 나를 위해 제천 청평호가 내려다보이는 호숫가의 호텔에 미리 예약을 해 뒀다. 온천탕과 수영장이 있는 호텔이었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온천탕부터 찾았다. 저녁은 한정식으로 예약되어 있었다. 저녁자리는 예비며느리가 생일 케이크와 유산균 선물세트도 준비해 놨다. 아들의 결혼전야제는 내 생일 축하자리이기도 했다. 우리 가족만의 전야제도 푸졌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 자는 나는 호텔 객실에서 날밤을 새웠다. 아침 역시 예약해 둔 음식점에서 먹고 결혼잔치 마당에 도착했다. 운동장은 이미 승용차로 꽉 찼고, 학부모와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결혼잔치 어울림 마당은 언덕배기 기숙사 앞의 잔디밭이었다. 단상이 마련되었고, 플래카드가 붙었고, 꽃장식이 놓였다. 마당에는 천막이 쳐졌고, 의자가 놓였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삼삼오오 나무그늘에 모여 예식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제자들로 구성된 사물놀이 패는 흥을 돋웠고, 장기자랑을 하는 제자들은 한껏 끼를 부렸다.


신랑신부도 평상복 차림이었다. 꽃을 들고 화관을 늘어뜨린 신부는 청순하고 예뻤다. 동안이라 더 어려 보였다. 나는 참 세련되지 못한 혼주였다. 나와 달리 젊은 사돈은 밝고 화사했다. 시어머니가 너무 추레한 것은 아니었나. 반성하지만 평소 꾸미기와 거리가 먼 촌로라 때깔 내 봤자 도로목이기 십상이다. 그냥 평소대로 하자 식이었다. 딸이 옆에서 챙겨주고 다듬어주기에 가볍게 아들의 결혼식을 즐겼다. 조촐하고 작은 결혼잔치라더니 거창하고 즐거운 결혼잔치 자리였다.


두어 시간이 금세 흘렀다. 손님들은 학교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폐백 같은 것도 생략했다. 예비부부가 하객을 위해 마련한 채식 뷔페와 학부모님이 말아내는 잔치국수가 있었다. 음식은 정갈하고 맛있었다. 아들의 결혼잔치는 흥겨운 축제마당이 되어 끝났다.


우리도 귀로에 올랐다. 마음의 짐 하나 내려놓았다. 아들부부가 잘 살기를 기도한다. 부부로 살다보면 사소한 것들에 상처입고 다툴 때도 있고, 헤어지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첫 마음, 첫 정의 짜릿함을 기억해주길 바라면서 늦은 귀가를 했다.

2025. 11.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꽃은 잎을 보지 못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