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아플 때는 고양이랑
이슬이 촉촉한 마당을 밟는다. 양이(우리 집 고양이)가 내 발자국 앞에 드러누워 배를 뒤집는다. 배를 만져주면 가르릉, 가르릉 앓는 소리를 낸다. 천방지축이던 양이도 철이 드나보다. 제법 얌전하다. 들 고양이 큰 놈이 오더니 자꾸 꼬여 데리고 가려는 데도 안 따라간다. 아침에 현관문을 열었더니 축담에 중간 크기 쥐 한 마리를 잡아 놨다. 자랑한다는 뜻이다. ‘이놈아, 쥐를 잡긴 잘 했는데. 쥐도 살아야지. 잡지 말고 쫓기만 해라.’ 쥐의 주검을 거두어 울타리 밑에 묻었다.
양이를 안는다. 이슬이 묻은 털이 부드럽다. 고양이털은 어째 이리 부드러울까. 살살 만져주다가 놓아준다. 고양이는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진다. ‘너도 놀아줄 친구가 없어 심심하지? 집 보고 있어. 다녀올게.’ 나는 고양이를 쓰다듬어주고 집을 나선다. 주말에 지인의 딸 결혼식이 있다. 단감 따기 막판이라 참석은 요원해서 축의금만 부치려고 집을 나섰다. 아들 결혼 피로연에 먼 길을 다녀가셨는데. 나도 참석해서 축하드려야 마땅하나 그러지 못한다.
농협에 가던 길에 아랫집 형님네 감산 앞에 멈추었다. 아저씨 머리에도 서리가 하얗다. 감산 아저씨도 혼자 단감을 따고 있다. 단감은 많이 달렸고 깨끗하고 좋아 보인다.
아저씨, 단감이 탐스러워요. 형님도 잘 계시죠?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파서 집에 있소. 감은 다 땄소?
우리는 유기농 하려다가 폭삭 망했어요. 딸 게 없어요. 괜찮다 싶어 따 보면 파지래요.
유기농 아무나 하나. 유기농 한다고 할 때 걱정 했거마. 요새는 유기농 안 돼요. 나는 다른 해보다 세 번이나 더 농약을 쳐서 괜찮을랑가 했더니 장마 지고 나니 병이 오디요.
단감이 저 정도 달렸으면 엄청 양호한데요. 농사 잘 지으셨어요. 우린 아예 건질 게 없어요. 몇 박스 따와도 선별 해 보면 정품이 거의 없어요.
올해 약 제대로 친 집도 반타작이라는데 두 말하면 잔소리지.
감산 아저씨도 혀를 찬다. 그 집 단감을 보면 솔직히 부럽다. 그런들 어쩌겠나. 이미 판결은 났는데. 한해 농사라 뒤집을 수도 없다. 농부는 내년에 또 유기농하려고 덤빌까. 여태 고집한 대로 저 농약으로 했으면 좋겠다. 내 바람일 뿐이다. 미생물 배양해 유기농 단감농사 짓겠다기에 반대하지 않았던 것은 농부를 위해서였다. 칠십 대 노인이 한여름 폭염에 방제 복과 방독면 쓰고 농약 치는 것이 힘든 줄 알기에 묵인했었다. ‘유기농으로? 첫술에 배부르겠나. 시범 사업이지’하면서 단감 적게 달리면 남의 일손 빌릴 필요 없이 식구끼리 하면 되겠다 싶어 반갑기도 했었다. 수확 철 결과물이 없어 기가 막힐 줄은 모르고.
농협에서 오랜만에 만난 이웃마을 아저씨가 묻는다. ‘아요? 동네 좀 내리 오소. 그 산속에서 머하고 사요?’묻는다. ‘산보고 나무랑 친구하고 요새는 단감하고 놀아요.’웃으며 대답한다. 산에 사나 들에 사나 사람살이는 비슷하다. 나는 사람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하다. 단감 수확 철에는 외로울 새도 없다. 유기농 하다가 폭삭 본전도 못 건지게 됐지만 농부가 따오는 몇 박스의 단감도 정품 골라내고 주문처나 선물용으로 분류해야 한다. 내 손으로 하는 일이다. 정품이다 싶어 포장했는데도 험과가 들어가기도 한다. 손이 하는 일이라도 완벽할 수 없다. 촉각과 시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올해는 시월 초에 일찌감치 주문해 놓고 기다린 고객에게만 순차적으로 단감을 보내기로 했다. 그러던 차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택배사고도 났다. 두세 곳에서 깨어지고 짓무른 단감 사진이 왔다. 배송 중 단감 박스를 바닥에 떨어뜨렸거나 던지면서 단감이 깨지고 멍든 것으로 보였다. 단감 수량이 많을 때는 같은 크기의 단감을 다시 보내드리곤 했지만 올해는 실농이다. 다시 보낼 단감도 없고, 저장할 단감도 없고, 굵은 단감도 수량이 적게 나온다. 환불조치 하는 수밖에 없다. ‘올해 단감이 없다면서요. 그냥 먹을게요.’ 하는 고마운 고객도 있지만 새로 보낼 굵은 단감이 없어 환불조치를 하기도 했다.
못난이를 주문한 어떤 고객이 사진을 찍어 보냈다. 먹을 수 없는 단감을 보냈다는 것이다. 햇볕에 검게 탄 부분이다. 그건 병이 아니고 햇볕에 탄 것이니 속은 괜찮다며 일단 먹어보라고 권했다. 혹시 무른 단감이 있더냐고 했더니 없단다. 맛은 어떠냐고 했더니 ‘아삭하고 맛나요.’한다. 우리 집 단감은 때깔이 안 난다. 유기농 농사치고 때깔 좋은 게 있던가. 맛은 좋다. 험과라도 유기농이라면 비싸다. 우리 집은 여태 저 농약 단감농사를 짓다가 올해는 본격적으로 유기농을 시도했다가 쪽박 찰 지경이 된 것이다. 농부는 때깔 나고 맛 좋은 단감 생산하려고 얼마나 애쓰는지 남은 모른다.
솔직히 나도 때깔 나고 맛 좋은 단감을 팔고 싶다. 도매상에 올리는 단감은 맛은 뒷전이고 때깔만 좋고 굵으면 돈이 된다. 보통사람이 짓는 단감농사 우리도 그렇게 지었으면 좋겠다. 소매 사절하고 도매로 올려도 돈 되는 단감농사였으면 좋겠는데 농부의 고집은 세다. ‘내가 먹고 우리 식구가 먹는 거 내 몸에 좋은 농사를 지어야지.’ 우리 식구는 단감을 물에 씻어서 껍질 째 먹는다. 나는 ‘단감이 맛있으면 뭐해. 돈이 안 되는데.’ 속상해서 소리친다. 단감 한 박스라도 좋고 맛있는 거 잘 포장해서 보내주고 싶다. 정품보다 비품이 많은 단감을 선별하며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니 머리가 아프다.
다시 고양이와 논다. 마음 같아서는 못난이라도 여기저기 나누어주고 싶다. ‘엄마, 올해는 그냥 선물하는 것으로 퉁 쳐. 속상해 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잖아.’ 딸이 위로한다. ‘선물도 좋은 걸 줘야지. 못난이 보내봤자 욕먹기 십상이지.’ 그러면서도 자꾸 퍼내게 된다. 험과라도 맛있는 단감이니 나누고 싶어 자꾸 퍼내니 파지도 남아나지 않는다. 우리 집에는 단감 농사 지어 따 들이는 사람 따로 있고 흥청망청 퍼내는 사람 따로 있다. ‘농사를 지가 짓는 것처럼 퍼내기는 잘 하지.’ 농부의 핀잔도 귓등으로 넘긴다. ‘놔두면 버리잖아. 먹을 수 있는데 나누면 어때서.’ 내 대답이 정답 아닌가.
내 말이 맞지?
나는 고양이의 등과 배를 부드럽게 어루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