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월급은 빨간색 내복 컬러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했다. 서른 전에 결혼할 줄 알았던 시절, 스물여섯 살의 나는 강남 한복판의 작은 IT 회사 사원증을 목에 걸고 출근길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첫 월급은 192만 원. 세금 떼고 실수령액 175만 원. 어머니 용돈 50만 원, 적금 50만 원, 월세 40만 원을 떼고 나면 35만 원이 남았다.
그 돈으로 MG 스트라이크 프리덤 건담을 샀다. 11만 8천 원.
나머지 23만 원으로 한 달을 버텨야 했다. 친구들은 한심해했다.
"첫 월급이면 부모님 속옷이라도 사드려야지." 나는 이미 용돈 드렸다고 둘러댔지만, 사실은 건프라를 먼저 질렀다.
첫 월급의 첫 소비가 건담이라는 사실이, 나는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자랑스러웠다.
이십 년간 변하지 않은 마음 하나가 내게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거의 없는 시대에, 열다섯의 내가 스물여섯의 나에게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이 나는 뿌듯했다.
박스를 풀고, 니빠를 들고, 설명서를 펼쳤다.
열다섯 때와 똑같은 자세, 똑같은 흥분. 다른 건 내 손이었다.
열다섯의 손은 떨렸고, 스물여섯의 손은 차분했다.
십 년 사이 수백 대의 건프라를 조립하면서 손끝은 정밀해졌다.
게이트 자국은 더 이상 나지 않았고, 관절은 뻑뻑하지 않게 조립할 줄 알았다.
스트라이크 프리덤의 금색 프레임이 스탠드 불빛 아래 반짝거렸다.
그 반짝임 속에 열다섯 살의 내가 있었고, 서른 살을 향해 가는 내가 있었다.
두 명의 내가 같은 책상에 마주 앉아 있는 기분. 그게 건프라 조립의 가장 은밀한 즐거움이다.
회사 생활은 생각보다 외로웠다. 야근이 일상이었고, 주말에도 프로젝트 때문에 출근했다.
동기들과 그럭저럭 친했지만, 그 누구에게도 주말마다 책상 앞에서 건담을 조립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스물여섯 먹은 남자가 플라스틱 장난감을 만지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회사라는 곳은 너무 딱딱했다.
ㅇㅇ
회식 자리에서 "주말에 뭐 하냐"는 질문이 나오면 나는 "그냥 집에서 쉽니다" 하고 웃었다.
집에서 쉬는 게 아니라 집에서 조립하고 있었는데. 여덟 평짜리 원룸의 좁은 책상 위에서, 나는 우주세기의 전장을 다시 펼치고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야근 중에 옆자리 김 대리가 말을 걸었다. "박 주임, 취미가 뭐예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프라모델이요. 건담이요." 김 대리가 웃었다. "어머, 나도 중학교 때 좋아했었는데. 요즘도 신상 나와요?" 나는 그 순간 거의 울 뻔했다.
누군가에게 건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고마운 일인 줄 몰랐다.
십 년 넘게 혼자 품어온 세계가, 그날 처음으로 타인의 귀에 닿았다.
내 머릿속의 우주가 말이 되어 밖으로 나오는 경험은, 생각보다 감격적이었다.
그날 야근이 끝나고 회사 앞 편의점에서 맥주를 마시며 나는 김 대리에게 건담 세계관을 설명했다.
일년전쟁이 뭐고, 지구연방과 지온공국이 어떻게 갈라졌고, 뉴타입이 뭔지. 김 대리는 눈을 반짝이며 들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내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열정을 듣고 있는 것이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 그런 순수한 열정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가 얼마나 드문지, 김 대리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캔맥주가 식어가는 줄도 모르고 떠드는 스물여섯의 나를 보며, 김 대리는 자기가 중학교 때 잃어버린 무언가를 떠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른이 되기 전에 나는 책장 두 칸을 건프라로 채웠다. 퇴근 후 밤마다, 주말 오후마다, 하나씩 조립해 올려놓았다.
월급의 상당 부분이 건프라로 변했지만 후회한 적이 없다.
스물여섯에서 스물아홉 사이,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혼자 견뎌야 했던 그 시절에, 건담은 가장 확실한 내 편이었다.
지하철에서, 회의실에서, 원룸의 좁은 침대에서, 나를 지탱한 것은 결국 책상 위의 하얀 플라스틱이었다. 외로움을 견디게 해주는 것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작은 루틴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즈음, 나는 그녀를 만났다. 훗날 내 건담을 "그 장난감"이라 부르게 될, 나의 첫 번째 여자친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