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처럼 유기적인 건축 요소를 가진 토레 블랑카
마드리드 시내 카르타헤나 역 앞에는 쑥쑥 자라난 팽이버섯 균사체처럼 여러 개의 다발 기둥 형태의 아파트 하나가 솟아있다. Torres Blancas, 스페인어로 백색 탑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과는 다르게 칙칙한 회색의 콘크리트 건물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1969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50년도 넘은 세월에 마모되고 변색되어 조금은 폐허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단조로운 콘크리트와 나무 창틀로 마감된 외관은 1950년대 유행한 브루탈리즘 건축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브루탈리즘의 비정하고 러프한 이미지와 다르게 토레 블랑카는 모더니즘 건축의 두 갈래를 양분한 유기주의 건축과 기능주의 건축을 절묘하게 절충시켰다고 평가받는다.
토레 블랑카의 설계자인 Francisco Javier Sáenz de Oíza는 주거와 오피스 용도로 고안된 이 건물이 하나의 거대한 나무처럼 유기적인 구조를 갖기를 원했다. 유기적 건축이란 건축을 구성하는 요소요소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건축물을 둘러싼 자연환경 및 인간 생태와의 간섭을 추구하는 건축으로서, 미국의 거장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주창한 개념이었다. 반면 르 코르뷔제의 주거 기계로서의 건축은 기능주의로 일컫어지며 유기주의 건축과 완전히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이해되었다.
오이사는 브루탈리즘적 외관, 르 코르뷔제의 고층 주거빌딩 개념과 옥상정원 아이디어를 채용하면서도 내부의 주거 유닛들과 계단들, 그리고 바깥으로 돌출된 원형 테라스 등의 요소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정말 하나의 나무에 자리 잡은 생태계처럼 건축의 생태계를 일구어냈다. 건물의 최상층에는 서비스 층이 자리하고 불규칙적으로 돌출된 테라스들은 나무의 잎과 가지를 연상케 한다.
개인적으로는 건물의 최상층에 형성된 펜트하우스 층 덕분에 팽이버섯이 떠올랐다. 건물이 추구하는 바를 생각하면 제법 어울리는 이미지다. 동그란 유닛이 겹겹이 쌓인 모양새 덕에 어떤 군락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스페인인인 오이사가 팽이버섯을 알고 의도했을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60년대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입구로 들어선 내부는 외관에 비하면 그 이름에 걸맞게 흰색이다. 건물의 전체적인 모티프인 둥그런 형태가 내부에서 평면에서도 계속된다. 수직 공동에 들러붙은 조명들도 어떤 포자의 군락체 같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회전 계단과 수직으로 연결된 동선은 고층 주거 빌딩의 유기적 가능성을 제시한다. 비인간적이고 인공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르 코르뷔제의 고층 아파트 컨셉을 오이사 나름의 방식으로 절충한 것이다.
당시 르 코르뷔제는 고층 주거 아파트를 전형적인 유럽식 수평적 정원 도시의 고질적인 주거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보았다. 그의 눈에 유럽 도시들은 오래되어 구식이고 슬럼화되었기에 획기적인 개혁안으로 뜯어고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 보아도 꽤 급진적인 컨셉들을 많이 구상했다.
반면 광활한 토지의 미국 시골에서 자라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자연에 둘러싸인 외딴 고급 주택들을 주로 설계하며 자연과 인간 삶의 조화를 추구했다. 살아온 환경만큼이나 다른 둘의 건축관은 실상은 그리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르 코르뷔제는 비장식적이고 단순한 건축을 자연스럽고 인간다운 것으로 여겼을 뿐이다.
오이사의 토레 블랑카는 기능주의와 유기주의 건축 개념이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현재도 주거용으로 쓰이고 있는 토레 블랑카는 외부인의 방문이 불가능하지만 바깥에서 건물 외부를 탐방하는 것은 가능하니 근처에 갈 일이 있다면 들러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