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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 추억과 현실

자작시 <안개>

by 어둠의 극락

하늘 위에 있어야 할 구름이
바람과 장난치다 미끄러져
지상에 나뒹굴었는지
안개가 자욱하다

늘 오가는 서울의 익숙한 거리
그저 안개가 꼈을 뿐인데
오늘은 왜 이리 낯선지

이 짓궂은 안개란 녀석이
닫혀 있는 맨홀 뚜껑을
몰래 열어 놓기라도 했으면 어쩌지

소리 없이 자전거를 달려서
날 들이받으면 어쩌나
이런저런 걱정을 하면서
지친 걸음을 옮긴다

그 옛날 정열과 희망으로
가득 채워 힘껏 내딛는 걸음으로
지칠 줄 모르고 걸었던
안개 낀 런던의 거리들

그때도 눈앞은 흐렸지만
걱정도 두려움도 없이
초록 요정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오스카 와일드의 자취를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그때의 런던의 안개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폭풍 속으로 돌아가야 하는
내일을 두려워하며

오늘도 절망의 실로 짠
베일 같은 서울의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래전 나는 독일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 기념 여행이었다. 유럽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나는 많은 나라 중에서 각종 유명 브랜드의 원산지이자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나라인 독일을 선택하였다. 2주 간 일에서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모인 여러 도시와 맛있는 음식 덕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국할 때는 유럽에 간 김에 또 다른 대표적인 도시들을 방문하고 싶어서 파리와 런던을 경유하였다.

영국의 수도 런던은 거대한 시계탑 빅벤과 빨간색 이층 버스, 타워 브릿지와 대관람차인 런던 아이 등 상징물이 많아서 이미지가 뚜렷한 도시이다. 이들 외에도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특색 없는 음식과 비와 안개로 인해 축축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함께 떠오른다. 비와 안개는 문학과 대중문화에서 런던이라는 도시를 묘사할 때 빠지지 않는 요소이다. 내가 갔을 때도 첫날은 맑았으나 다음날 날씨가 돌변하여 아침부터 비가 쏟아졌다. 비가 내리니 비로소 대하던 런던의 풍경이 완성되었다. 과연 " 리퍼"와 "스위니 토드" 같은 도시 괴담이 만들어질 만한 분위기였다. 바로 그 도시의 거리를 지금 내가 거닐고 있다는 실이 너무도 기뻤다. 바지가 빗물에 서서히 젖는 동안 나는 황홀감에 흠뻑 젖었다. 듣던 것과는 달리 의외로 맛있었던 현지 음식도 나를 더욱 들띄워 주었다. 독일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었음에도 영국의 런던이라는 도시에 더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대학교에 진학하여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면서도 마치 나의 일부분을 유럽에 두고 온 듯 여행의 여운이 내게서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을 재료로 <수건>과 <까마귀>와 함께 위 시를 썼다.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싫었던 마음과 생애 첫 유럽 여행이 선물해 준 추억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다.


국내로 가던 해외로 가던 여행은 생각보다 우리의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가 발붙인 곳을 벗어나서 잠시 다른 곳에 머물면 신선한 새 에너지가 몸에 들어오는 기분이다. 매일 오가던 동네가 아닌 다른 지역의 풍경을 눈에 담으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트이고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그러한 경험 기억은 앞으로의 삶에도 영향력을 발휘한다. 편으로 른 세상에 몸담고 있다 보면 자연스레 그곳에 더 오래 머물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일상과 현실로 돌아와야만 한다. 너무 오래 벗어나면 돌아올 길을 잃게 된다. 아무리 아쉽더라도 좋은 기억을 품에 한가득 안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것으로 괴로운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어야 한다. 그렇게 현실의 안갯속을 매다 보면 여유의 허락으로 추억의 안속으로 다시 들어갈 기회가 또 찾아 것이다.


표지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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