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는 화살

by 어둠의 극락

쨍그랑-

“아니, 저 녀석이 또 그릇을 깼어! 거기 서지 못해?”

승려들이 활을 내던지고 달아나는 동자승을 뒤쫓았다. 외눈박이 동자승은 있는 힘껏 달렸으나 얼마 못 가 잡히고 말았다. 주지승이 그의 귀를 뜯어낼 기세로 잡아당겼다.

“아야야, 주지 스님 이것 좀 놓고 가셔요. 제 발로 갈 테니…….”

“시끄럽다. 큰스님께서 분명 다시는 활에 손을 대지 말라고 하셨거늘 또 활을 가지고 놀아? 오늘은 제대로 혼을 내주마. 큰스님께 가자. 어서 따라와!”

“아휴, 주지 스님. 이것만 좀 놓아주셔요. 아이고……”

승려들은 식기를 과녁 삼아 활쏘기를 연습하던 동자승을 끌고 갔다.

“무슨 일인가?”

나이 지긋한 승려가 법당에서 나오며 물었다. 절에서 가장 법력이 높은 고승인 정윤이었다.

“큰스님. 선종이 녀석이 또 활을 쏘아 발우를 깨뜨렸습니다. 도무지 말을 듣지를 않습니다.”

주지의 불평에 정윤은 화를 내는 대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선종은 안으로 들어오너라.”

“큰스님. 어찌하시겠습니까? 더 이상 말로 해서는 아니 될 녀석입니다. 크게 혼을 좀 내주시지요. 이러다 우리 절에 있는 바리때가 남아나질……”

“되었으니 이만 돌아가시게.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정윤은 주지의 말을 자르며 동자승을 데리고 법당으로 들어갔다. 승려들은 너도나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지 스님, 이게 벌써 몇 번째입니까? 아무리 혼을 내고 매까지 들어도 도무지 들어먹질 않으니 말입니다.”

운교가 주지에게 불평하였다.

“그러게나 말일세. 저 애꾸 놈을 대체 어찌한다?”

“그런데 솜씨가 놀랍긴 합니다. 눈도 성치 않은 녀석이 백발백중이니……”

“아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가?”

뜬금없이 선종을 칭찬하는 말에 주지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선종은 무릎을 꿇고 정윤과 마주 앉았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불호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정윤은 한참 동안 말이 없이 그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법당 안을 가득 채우자, 선종은 슬슬 두려워졌다.

“또 활을 가지고 놀았느냐?”

마침내 침묵을 깨고 정윤이 물었다. 선종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예? 예, 큰스님…….”

“나는 분명 너에게 그 물건에 손을 대지 말라고 하였다. 한데 또 그것을 다루었다. 그리도 손에서 놓기가 어렵더냐?”

선종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였다.

“대답하여라. 놓기가 어렵냐고 물었다.”

“……예, 큰스님.”

정윤은 눈을 감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선종은 그 깊은 한숨이 오히려 두려웠다. 차라리 전처럼 매를 맞거나 호통을 듣는 것이 낫겠다고 여겼다.

“나라가 어지럽고 곳곳에서 온갖 요사스러운 것들이 일어나고 있는 탓에 스스로 우리의 몸을 지키고, 또 수행의 한 방도로써 무예를 익히게 하고 있다. 한데 너는 아직 어려서 그러할 때가 아니기 때문에 못 하게 하는 것이다. 벌써 어른 노릇이 하고 싶으냐?”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재미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큰스님.”

정윤은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선종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마음이 불편하여 차라리 시원하게 매를 맞고 싶은 심정이었다. 또 한참을 말이 없던 정윤은 다시 입을 열었다.

“선종아. 이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허나 그리할 수가 없느니라. 너는 이미 불가에 귀의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저 속세의 중생들과는 가야 할 길이 다르다는 말이다. 작은 욕망조차 다스리지 못하면서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느냐? 그렇다고 다시 속세로 돌아가겠느냐?”

“아닙니다, 큰스님. 소승이 갈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 그러나 이곳에서 지켜야 할 것을 계속 지키지 않는다면 그때는 나도 별수 없다. 내 말을 알아듣겠느냐?”

선종은 그래도 활쏘기를 그만두고 싶지 않아서 우물쭈물하였다.

“알아들었느냐!”

정윤이 드디어 호통을 쳤고 선종은 황급히 답하였다.

“예, 예, 큰스님.”

“그만 나가보아라. 오늘 저녁에는 예불을 빠지고 공양한 발우들을 전부 네가 아라. 공양은 그런 뒤에 하도록 하여라. 네 몫을 남겨두라고 일러둘 터이니. 알겠느냐?”

“예, 큰스님…….”

차라리 매를 맞는 게 나을 귀찮은 벌이 내려지자, 선종은 간신히 찡그려지려는 얼굴을 폈다.

선종은 투덜대며 약해져 가는 햇빛에 의지하여 그릇을 닦았다. 배에서는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계속 울렸으나 닦아야 할 그릇은 아직 한참 남아있었다. 예불을 드리러 법당으로 가던 승려들이 선종을 보고 다가왔다.

“깨끗이 닦아라. 큰스님께서 한 번만 더 활을 쏘면 여기서 쫓아내겠다고 하셨다면서? 쫓겨나기 싫거든 똑바로 해라. 알겠느냐?”

선종은 승려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묵묵히 그릇을 닦았다.

“저 버르장머리를 어찌할꼬? 쯧쯧…….”

승려들은 혀를 차며 걸음을 옮겼다. 선종은 그들의 뒷모습을 한 번 쏘아보고는 거칠게 그릇을 마저 닦았다.

해가 떨어지고 승려들이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할 무렵에야 그릇을 다 닦은 선종은 그릇을 공양간으로 날라 차곡차곡 정리하였다. 두 손은 물에 불어 쭈글쭈글해졌고, 지치고 배가 고파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릇을 다 정리한 그는 솥뚜껑을 열어 보았다. 그러나 밥은커녕 누룽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선종은 화낼 기운도 없어서 뚜껑을 닫고 조용히 공양간을 나왔다. 그러다가 마침 찻상을 정리하여 들고 오던 운교와 마주쳤다.

“다 닦았느냐?”

“예, 스님.”

선종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마음 같아서는 운교의 정강이를 힘껏 걷어차 버리고 싶었다.

“방으로 가거라. 네 밥은 거기 가져다 놓았다.”

그 말에 선종은 금세 기분이 풀어졌다.

“네, 스님. 고맙습니다.”

선종은 서둘러 승방으로 달려갔다. 그래도 밥은 챙겨주어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방 안에는 승려들이 자리를 까느라 분주하였다. 그런데 어디에도 밥상은 보이지 않았다. 선종은 방 구석구석을 살폈으나 밥상은커녕 밥그릇조차 보이지 않았다.

“저, 지정 스님. 운교 스님께서 제 밥을 방에 가져다 놓았다고 하셨는데 어디에 있습니까?”

선종은 곁에 있던 지정을 붙들고 물었다.

“네 밥말이냐? 저기 있다.”

지정은 방 끄트머리의 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주먹만 한 크기의 밥 한 덩이가 바닥에 놓여있었다.

“어서 먹고 자라. 비켜라, 자리 깔게.”

지정은 선종을 밀치며 자리를 깔고 누웠다. 이윽고 불을 끄고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 선종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누르며 자리에 누웠다. 배는 고팠으나 차마 그 밥을 주워 먹기는 싫었다.

어두운 방 안에는 잠든 승려들의 숨소리만 들렸다. 선종은 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물로라도 배를 채울 생각으로 몸을 일으켰다. 살며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그는 공양간으로 가서 식수가 담긴 물동이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물을 그릇으로 퍼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허기가 가시기는커녕 급하게 마신 물이 뱃속에서 출렁거려 속이 불편하였다.

선종은 절에서의 삶이 참으로 싫었다. 외눈박이로 살아가는 것도 서러운데 마음껏 뛰놀거나 작은 짐승을 잡아먹는 것처럼 여느 아이들이 하는 일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예에 흥미가 생겼으나 그마저도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못하게 하니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하였다. 문득 얼굴조차 모르는 부모가 생각났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지, 어째서 자신을 이 절간에 버려서 이리도 괴롭게 하는지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선종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물에 떨어져 물결을 일으켰다. 가슴속의 원망은 이내 다시 분노로 바뀌었다. 선종은 가장 큰 바가지를 찾아 물을 가득 퍼 담았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승방으로 돌아갔다.

선종은 문을 활짝 열고 방으로 들어섰다. 마침 운교와 지정이 근처에 누워있었다. 선종은 그들이 누운 자리를 향해 냅다 물을 끼얹었다. 자다가 별안간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 그들은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선종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뭐야? 누가 물을 뿌렸어?”

운교가 물기를 털어내며 두리번거렸다. 그는 위풍당당하게 바가지를 들고 서 있는 선종을 발견하고 고함을 질렀다.

“저놈이 기어이 실성하였나? 이게 무슨 짓이야!”

운교의 고성에 물을 맞지 않은 승려들까지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자 선종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답하였다.

“밥을 그냥 먹으려니 목이 메어서 물에 말아 먹으려 합니다.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뭐, 뭐라? 아니 저런 미친놈을 보았나?”

승려들이 삿대질을 하며 길길이 날뛰었으나 선종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밥을 방바닥에 놓아두신 것은 바닥을 발우 삼아 먹으라는 뜻이 아니었습니까? 그렇다면 물도 이 바닥에 부어야 밥을 말 것이 아닙니까?”

선종의 기상천외한 대답에 승려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들은 내심 두려워졌다. 그저 버르장머리 없는 어린아이인 줄만 알았지 그토록 영악할 줄은 몰랐다. 한껏 의기양양해진 선종은 바가지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려 돌아섰다.

아아악!

그 순간, 어디선가 외마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선종과 승려들은 모두 놀라 방 밖을 내다보았다.

“저게 무슨 소리인가? 사람의 비명이 아닌가?”

“고라니 울음소리 아닙니까?”

“아닐세. 조금 달라.”

“불 좀 밝혀보게.”

불안해하는 승려들을 뒤로하고 지정이 마당으로 나와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 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스스슥- 스스슥-

다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수풀을 헤집는 소리 같기도 하였고, 무언가 흙길을 훑으며 움직이는 소리 같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부스럭- 빠직- 스스슥-

이제는 뭔가가 부러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정체불명의 소리는 점점 더 커져서 승방에 가까워졌다.

“대관절 이게 무슨 소리……”

지정은 말을 마치지 못하였다. 그는 서 있던 자리에서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어!”

승려들은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마치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대,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캬아아아!

그때, 날카로운 괴성이 들려왔다. 괴이한 존재가 코앞까지 다가온 듯하였다. 승려들은 등잔을 들고 바깥을 비추었다.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은 사람도 아니고 짐승도 아니야. 모두 횃불을 밝히고 무장을 갖추시게! 주지 스님도 깨우고! 서둘러!”

운교의 말에 승려들은 부리나케 무기고로 달려갔다. 선종도 그들을 따르려 하였으나 운교가 그를 막아섰다.

“너는 큰스님께 가거라. 큰스님을 모시고 몸을 숨겨라. 어서!”

“예, 예!”

선종은 서둘러 정윤의 방으로 달려갔다.



<용어 해석>

바리때 : 발우. 승려가 사용하는 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