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력난신

by 어둠의 극락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간 선종은 무례를 무릅쓰고 잠든 정윤을 마구 흔들었다.

“큰스님! 큰스님! 어서 일어나셔요! 일어나셔요, 스님!”

깊이 잠들었는지 정윤은 움찔거리면서도 눈을 뜨지 못하였다.

“큰스님 어서요! 무언가가 여기에 쳐들어왔습니다. 사형들은 싸우러 가신대요. 피하셔야 해요, 큰스님!”

선종은 정윤의 손을 잡아당겨 억지로 그를 일으켰다. 정윤은 비몽사몽인 와중에 위험을 감지하고는 탄식하였다.

“이런, 이런. 나도 이제는 늙었구나. 이 도량이 공격받는데도 한가롭게 잠들어 있었다니…….”

“몸을 숨기셔야 해요, 큰스님.”

“대웅전으로 가자꾸나. 그것이 부처님을 모신 곳까지 들어오지는 못할 게다.”

“저것이 혹 귀신인가요?”

“귀신이란 사람의 넋이니 차라리 귀신이라면 얼마나 좋겠느냐. 훨씬 더 흉악한 것이니라.”

선종은 절을 공격한 존재가 무서우면서도 그 정체가 궁금해졌다.

대웅전 앞마당에서는 승려들이 무기와 횃불을 들고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캬아아아아!

“횃불을 더 가까이 들이대게! 불을 피하려 하고 있어!”

“아아악!”

“창을 던져! 눈을 맞춰야 해!”

황소보다도 큰 거미가 거미줄을 뿜고 나뭇가지처럼 굵은 다리를 휘둘렀다. 거미의 머리에는 인간의 해골이 박혀 있었다. 괴수는 승려들이 횃불을 들이밀자 흠칫하며 물러났다가 다시 달려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이미 승려 여럿이 거미줄에 휘감긴 채 쓰러져 있었다. 정윤은 서둘러 대웅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선종은 따라 들어가지 않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뭣 하느냐? 어서 들어오너라!”

정윤이 잡아끄는 데도 선종은 움직이지 않았다.

“큰스님. 소승은 이만 파계하렵니다. 말리지 마십시오.”

“뭐라? 이리 돌아오너라! 이놈아, 어서 돌아와!”

정윤의 만류를 뿌리치며 선종은 무기고로 달려갔다.

무기고로 들어간 그는 활과 화살이 든 활집을 들었다. 비록 서로 불편한 사이였지만 정윤과 다른 승려들을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다시 대웅전으로 돌아온 선종은 활시위에 화살을 걸고 힘껏 당겨 겨누었다. 승려들이 든 횃불 덕에 거미가 잘 보였다. 선종은 신중하게 활을 조준하고 시위를 놓았다.

끼아아아악!

날카로운 다리로 쓰러진 주지를 막 내리찍으려는 찰나, 화살이 거미의 허리에 맞았다. 거미는 괴성을 지르며 더 크게 날뛰었다. 선종은 침착하게 다시 화살을 시위에 걸어 쏘았다. 이번엔 거미의 눈에 명중하였다.

캬아악! 끼아아아악!

거미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틈을 이용해 승려들은 거미의 다리를 내리쳐 부러뜨려 버렸고, 다리까지 잃은 거미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거미가 쓰러지자 선종은 이번에는 머리를 노렸다. 머리에 박혀 있던 해골이 선종이 날린 화살을 맞고 박살 났다. 그러자 거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거미줄에 감겨 있던 승려들도 이내 풀려나 정신을 차렸다. 승려들은 창으로 거미를 건드려 보았으나 미동조차 없었다. 완전히 숨이 끊어진 듯하였다.

치이이익-

그러다 갑자기 거미의 몸이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녹아내렸다. 거미의 몸뚱이가 사라진 자리에는 인간의 뼈가 한 무더기 남아있었다.

“이놈에게 잡아먹힌 사람들인가……. 나무아미타불.”

승려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일제히 기도를 올렸다. 정윤이 대웅전 문을 열고 나와 뼈 무더기로 다가갔다.

“이 업을 다 어이할꼬?”

정윤은 안타까워하며 홀로 되뇌었다. 어느새 선종도 활과 활집을 내려놓고 그의 곁에 와 있었다.

“큰스님. 이들을 잘 수습하여 극락왕생을 빌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지가 다친 팔을 붙든 채 정윤에게 말하였다.

“그래야지. 다치거나 숨을 거둔 이는 더 없는가?”

“여럿이 다쳤지만 그리 심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지정 사제가 이 괴수에게 당한 듯합니다. 혹 이 중에 있을지도……”

“잘 수습하게. 제를 올려야겠구먼.”

“예, 큰스님. 선종아, 큰스님 모시고 가거라.”

넋을 잃고 뼈 무더기를 보고 있던 선종은 주지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정윤과 함께 승방으로 돌아갔다. 그는 한 번도 사람의 뼈를 본 적이 없었다. 종종 산속에서 죽은 짐승과 새의 뼈는 여러 번 보았으나 인간의 것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선종은 속이 울렁거렸다. 승려들은 부상자들을 돌보고 싸움이 일어났던 현장을 정리하였다. 유골들은 기도를 올리며 정성껏 수습하였다.

날이 밝자 범종을 울리고 승려들이 모두 법당으로 모였다. 정윤이 주장자를 들고 법당으로 들어서자, 승려들이 일제히 인사를 올렸다. 정윤은 법상에 앉아 주장자를 세 번 내리치고 설법을 시작하였다.

“어젯밤에는 너희가 고생한 덕에 이 늙은이도 목숨을 부지하였다. 그러나 지정 수좌가 그만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모두 그의 왕생극락을 빌어주자.”

정윤과 승려들은 모두 지정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

“한솥밥을 먹던 식구를 잃었으니 얼마든지 슬퍼해도 좋다만, 그럼에도 너희가 꼭 명심해야 할 사실이 있다. 어젯밤 수습한 그 유골들은 사실 요귀에게 잡아먹힌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 유골들이 바로 요귀의 본체였다.”

요괴의 충격적인 정체에 승려들이 동요하였다.

“세상이 어지러워 셀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이 목숨을 잃고, 음양의 조화가 흐트러져 구천을 떠도는 억울한 넋들이 한데 모여 산 자들의 고통과 두려움을 먹고 자라난 것들이다. 비록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존재이긴 하나, 요귀란 결국 인간의 탐욕과 업장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들이다. 그야말로 인간이 자초한 재앙이지. 그러니 소중한 목숨을 지키기 위해 또다시 그것들의 목숨을 빼앗아야 할 날이 오더라도 이 진리를 가슴에 새기어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정윤은 맨 뒷줄에 앉아있던 선종에게 시선을 돌렸다.

“선종아. 이리로 나오너라.”

선종은 자리에서 일어나 법상으로 다가갔다. 승려들의 시선이 쏠리자 선종은 부담을 느끼며 정윤의 곁에 섰다.

“선종이가 어젯밤에 위험을 무릅쓰고 요귀를 퇴치하는 것을 도왔다. 나는 이 아이에게 또다시 무기에 손을 대면 속세로 돌려보내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 아이는 제 스승과 사형들을 지키기 위하여 파계까지 각오하며 활을 들었느니라. 그 덕에 요귀를 퇴치하여 더 많은 목숨을 잃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자, 너희가 말해보아라. 선종이 이 세달사에서 나가야겠느냐, 아니면 남아야겠느냐?”

승려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며 대답을 망설였다. 선종이 요괴를 물리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통제할 수 없는 말썽꾸러기였기에 절에 남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그들을 괴롭힐 것이 뻔하였다. 아무도 선뜻 입을 열지 못하자 정윤은 주장자를 내리쳤다.

“어서 말하라. 선종이가 이 절을 떠나야 하겠느냐?”

정윤이 다시 묻자 그제야 침묵을 뚫고 운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남아야 합니다.”

그러자 다른 승려들도 하나둘씩 말하기 시작하였다.

“남아야 합니다.”

“남아야 합니다.”

주지를 제외한 대부분이 선종이 절에 남아야 한다고 답하였다. 정윤은 고개를 돌려 선종을 바라보았다. 그는 딱히 기쁜 표정이 아니었다. 이미 쫓겨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선종이 이곳에 남아서 수행을 계속하는 데에 모두 불만이 없는 것으로 알겠다. 그리고 앞으로는 선종이도 사형들과 함께 무예를 단련하도록 하여라.”

선종은 방금 들은 말이 믿기지 않아 정윤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굳게 안 된다고 하던 그가 자신이 무예를 익히는 것을 허락한 것이었다.

“기왕에 하는 거 성실히 무업을 닦도록 하여라. 처음부터 사형들이 하는 만큼 따라 하기는 쉽지 않겠으나, 그렇다고 요령을 피우거나 수행을 게을리한다면 절대 용서치 않으리라. 알겠느냐?”

“예, 큰스님! 명심하겠습니다.”

“이제 자리로 돌아가거라. 부상자들이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르고 나면 그 요귀와 망자들을 위한 천도재를 올릴 것이다.”

정윤은 주장자를 세 번 내리치고 설법을 끝마쳤다. 선종은 너무나 기뻐 춤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승려들은 법당에서 나와 선종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선종은 또 훈계와 으름장이 쏟아질 것 같아서 짜증이 올라왔다.

“네 녀석이 그동안 사고만 쳐서 그렇지 네 활 솜씨가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어제는 네 덕에 우리가 살았다. 고맙구나.”

“고맙다. 네가 아니었으면 우린 꼼짝없이 죽었을 게야.”

“이제 큰스님께서도 허락하셨으니 함께 열심히 수련해 보자꾸나.”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승려들은 너도나도 선종에게 감사를 표하며 따뜻한 격려를 건네었다. 언제나 윽박지르기만 하던 그들이 처음으로 선종을 칭찬하고 있었다. 승려들의 바뀐 태도에 선종은 놀라서 뭐라 답하지 못하였다.

“잠시 비켜주게.”

모여있던 승려들 사이로 주지가 끼어들었다. 주지는 여전히 선종을 못 마땅히 여기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마치 선종을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것을 참고 있는 것처럼 불편한 기색으로 선종을 내려다보았다. 다른 승려들은 긴장하며 분위기를 살폈다.

“너무 우쭐대지 마라. 또다시 말썽을 피웠다간 그땐 반드시 네 놈을 쫓아내고 말 터이니. 알겠느냐?”

“예! 주지 스님.”

“활은 과녁으로 제대로 연습하도록 하여라. 이제 제발 발우는 깨지 말고.”

비록 으르는 말투였으나 주지의 속뜻을 안 선종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하였다.

“알겠습니다, 주지 스님.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용어 해석>

도량 : 부처나 보살이 도를 얻으려고 수행하는 곳. 승려들이 모인 절을 뜻함.

주장자 : 선사들이 좌선할 때나 설법을 할 때 드는 지팡이.

법상 : 설법하는 승려가 올라앉는 자리.

수좌 : 선원(절)에서 참선하는 승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