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태는 어느덧 북원경 인근에 있는 어느 마을에 다다랐다. 작은 마을이었으나 나름 풍족하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마을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마을에서 가장 큰 집 주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있었다. 구수한 음식 냄새가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섞여 풍겨왔다. 잔치였다. 아지태는 음식 냄새에 이끌려 홀린 듯이 잔칫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문이 활짝 열린 집 안에서는 넓은 마당에 불을 피워 놓고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자리를 깔고 모여 앉아 술판을 벌였고, 사방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지를 않았다.
“이보시오. 이 마을에 무슨 경사라도 난 겁니까? 웬 잔치요?”
마을 사람들은 활을 둘러메고 칼을 찬 장신의 사내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경계하였다.
“오늘 현령께서 아드님을 얻으셔서 잔치를 열고 있소.”
술을 마시던 한 노인이 대답하였다.
“아, 그렇습니까? 정말 경사로군요.”
“한데 뉘시오?”
음식을 나눠 주던 현령의 집사가 다가와 묻자 아지태는 웃으며 답하였다.
“아,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입니다. 명주에 경치 좋고 물이 맑은 산들이 많다기에 사냥도 할 겸 구경하러 가는 길입니다.”
“아, 그렇소?”
그의 말에 사람들은 조금은 경계를 풀었다.
“하하, 이 물건들을 보고 다들 놀라신 모양이군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난 도적도 아니고 그저 지나는 길이니까. 현령께 지나가던 나그네도 축하하더라고 전해주시겠습니까?”
“그리하겠소. 고맙구려. 그러면 이것도 인연인데 이리 와서 음식도 좀 들고 가지 그러오?”
“오, 그래도 되겠습니까? 주신다면야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마침 허기지던 차에 잘 되었군요, 하하.”
아지태는 기뻐하며 집사를 따라갔다. 집사는 그에게 따뜻한 전과 떡, 닭고기를 천에 싸서 건네주었다.
“고맙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다들 친절하고 인심이 후하시군요. 잘 먹겠습니다.”
“잘 가시오. 산에 가거든 조심하시오. 그곳에 범이 많이 살고 있다오.”
“그리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시지요.”
아지태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다시 길을 떠났다.
종일 걸어도 지치지 않는 체력 덕에 아지태의 여정은 쉼 없이 이어졌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능력이었다. 허기가 느껴지면 잔칫집에서 얻은 음식을 조금씩 꺼내어 먹었다.
동쪽으로 계속 걷던 아지태는 마침내 오대산에 이르렀다. 깎아지른 암벽과 푸른 삼림으로 이루어진 산들의 행렬이 난공불락의 성곽처럼 서 있었다.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이어져 있는 웅장한 태백산맥은 마치 똬리를 튼 거대한 한 마리의 용처럼 보였다. 고향인 서원경에 있는 산들은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위용이었다. 그곳으로 향하던 목적이 한순간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한참을 넋을 잃고 눈앞의 풍경을 구경하던 아지태는 허리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앞으로 나아갔다.
검은 상처가 크게 나 있는 만큼 눈에 쉽게 띌 게 분명하였으나 아지태는 날을 꼬박 새우고도 여우를 찾지 못하였다. 이 산 저 산을 오가며 상처가 없는 여우는 여럿 보았고, 주둥이에 흉터가 나 있는 늑대도 보았으나 그 여우만은 보이질 않았다. 곳곳에 만들어 둔 덫에는 엉뚱한 동물이 걸려 있거나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마을에서 얻은 음식은 이미 다 먹었고, 챙겨온 식량도 떨어져서 아지태는 슬슬 조급해졌다. 그렇다고 빈손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대체 이를 어찌한다? 그냥 돌아갈 수는 없어. 날 죽일지도 몰라.’
아지태는 올무에 걸린 산양을 풀어주고는 이내 망연자실하여 주저앉아 버렸다. 시일이 얼마나 걸려도 상관없다고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그 여우를 잡지 못한 채 마냥 산속에 계속 머물 수는 없었다. 도움을 청하고 싶어도 주변에 인간은 하나도 없고 말이 통하지 않는 짐승들뿐이었으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때, 아지태의 감각이 어떤 기운을 감지하였다. 무언가가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서서히 숨통을 조여 오는듯한 압박감이 점점 더 강하게 느껴졌다. 그 기운이 그의 등 뒤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 등골이 서늘해지며 소름이 돋더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부스럭-
“헉!”
풀과 흙을 밟는 무거운 발소리를 듣고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순간, 아지태는 숨이 턱 막혔다.
크르르르……
거대한 호랑이가 길고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아지태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아지태는 비명은커녕 신음조차 낼 수 없었다. 시선을 그 호랑이에 고정한 채 천천히 몸을 일으켰으나 발이 떨어지지 않아 달아날 수가 없었다. 활을 들 수도, 칼을 뽑을 수도, 뒷걸음질조차 칠 수 없었다. 어마어마한 몸집의 호랑이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가 내뿜는 기운에 압도당하여 몸과 정신이 모두 얼어붙어 버렸다.
크아아아!
귀로 들어와 골까지 뒤흔드는 듯한 위협적인 소리를 내던 호랑이가 느닷없이 온 산이 울리도록 포효하자 아지태는 뒤로 자빠졌다.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그를 물어뜯을 기세였으나 공격하지는 않았다. 불타는 듯한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며 위협만 가할 뿐이었다. 호랑이가 뜨거운 입김이 얼굴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자, 아지태는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는 결국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웬 놈이냐?”
별안간 동굴 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울리는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지태는 어렵사리 한쪽 눈을 힐끔 떠보았다. 그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던 호랑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웬 벌거벗은 사내가 그의 눈앞에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간신히 두 눈을 다 떠보니 그의 모습이 더 자세히 보였다. 사내는 단단한 근육으로 뒤덮인 우락부락한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있었다. 거친 머리카락은 마치 호랑이 털처럼 검은색과 붉은색이 섞여 있었다.
“말하라! 너는 누구냐?”
사내는 아지태의 어깨를 치며 다그쳤다. 힘이 어찌나 셌던지 아지태는 땅바닥에 패대기쳐지듯 쓰러졌다. 그는 어깨에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누, 뉘, 뉘신……지요?”
“그것은 내가 먼저 물었다! 아주 넋이 빠졌구나.”
사내의 고함에 아지태는 아득해지는 정신을 겨우 붙들고 대답하였다.
“아, 아지태라고 합니다만…….”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냥? 네 이놈! 덫을 놓아 잡았다가 풀어주고, 또 잡았다가 풀어주는 짓을 사냥이라고 하더냐?”
아지태는 사내의 우레같은 호통에 놀라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목소리에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섞여 아주 무시무시하게 들렸다. 모습만 바뀌었을 뿐 그 압도적인 기세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목숨만,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이 메는 나의 땅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내가 보살피고 있느니라. 한데 네 놈이 멋대로 들어와서는 그들을 괴롭히고 있으니 어찌 보고만 있으랴?”
“부디 용서하십시오. 소인은 그저 여, 여우를 한 마리 잡으려던 것뿐입니다…….”
“여우? 얼마 전에도 더러운 도깨비들이 몰려와 여우를 잡으려 한 일이 있었는데, 혹 네 놈도 그것들과 한통속이냐?”
“아, 아닙니다! 소인은 도깨비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저 의원이 병이 드신 노모께서 여우 고기를 잡수셔야 낫는다고 하기에 노모를 살리려는 것뿐입니다!”
아지태는 두려운 와중에도 살기 위해 그럴듯한 거짓말을 생각해 내었다. 코앞의 존재가 두려웠지만 흑재에 대해 함부로 발설할 수는 없었다.
“의원이 그리 말하더냐? 어미를 살리려면 여우를 잡아다 먹이라고?”
“예, 산신님. 부디 인정을 베풀어 주십시오. 자식이 되어 어찌 늙고 병든 부모를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아지태의 말에 산신은 마음이 약해져 화를 삭였다. 그는 평소 인간들이 자신의 산에 들어와서 짐승을 사냥하고 풀뿌리나 약초 등을 캐어가는 것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너무 많이 가져가지만 않으면 눈감아주고 있었다. 그러나 요괴는 상당히 싫어하여 일대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중에서도 장난이 심한 도깨비들을 특히 싫어하여 눈에 띄는 대로 공격하곤 하였다.
“너, 참으로 도깨비가 아니냐?”
산신은 엎드려 있는 아지태의 체취를 맡으며 물었다. 보기에는 생김새도 냄새도 분명 인간이 맞는 듯하였다. 아지태가 인간 마을의 잔칫집에 들르면서 여러 인간과 음식 냄새가 몸에 밴 덕분이었다.
“예, 산신님. 저 서쪽에 있는 적악산 근처에 살고 있습니다.”
아지태는 만일을 대비하여 자신의 출신지도 속였다. 산신은 확실히 하려는 듯 그의 냄새를 좀 더 맡아보고는 몸을 일으켰다.
“좋다. 어미를 살리고자 한 일이라니 이번 한 번만 봐주도록 하겠다. 저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면 큰 바위가 하나 있다. 그 바위 틈새에 움직이지 못하는 여우가 있으니 데려가거라. 내가 아까 말한 그 도깨비들에게 쫓기다가 다친 녀석이다. 어차피 얼마 더 살지 못할 듯하니 잡아다 네 어미를 살려라.”
“고맙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어서 가 봐라. 한 번만 더 이곳에서 그따위 짓을 하였다가는 그때는 네 놈도 도깨비들처럼 찢어 죽이겠다.”
“명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산신은 연신 절을 올리는 아지태를 뒤로하고 다시 호랑이의 모습으로 변하여 수풀 사이로 사라졌다.
“휴……”
아지태는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 다행히 거짓말이 잘 먹혀 무사할 수 있었다. 하마터면 꼼짝없이 갈가리 찢겨 죽을뻔하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는 몸을 일으키려다 다리에 힘이 풀려 도로 주저앉았다. 어서 이 산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얼굴에 흐른 땀을 닦고는 다리에 다시 힘을 모아 겨우 일어섰다.
산신이 일러준 대로 따라가니 정말 계곡 옆에 거대한 바위가 있었다. 얼마나 컸던지 그 높이가 주변에 있는 나무들 못지않게 높았다. 바위의 밑동에 작은 바위들이 있었고, 그 사이에 무언가 붉은 것이 살짝 삐져나와 있었다. 조심히 다가가 살펴보니 여우의 꼬리였다. 바위 틈새에 여우가 숨어있었다. 목에서부터 허리까지 딱지가 앉은 시커먼 상처가 마치 날카로운 것으로 할퀸 것처럼 길게 나 있었다. 여우는 자리에 누워 새끼 셋을 품은 채 약한 숨을 쉬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특이하게도 온몸이 흰 털로 덮여 있어 눈길을 끌었다. 여우는 아지태가 다가가자, 발소리를 들었는지 귀를 쫑긋 세웠다.
“어이쿠……”
여우가 움직이자 아지태는 흠칫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쏜살같이 달아나기라도 한다면 모두 허사가 되는 일이었다. 그는 숨까지 멈추고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나 아무리 조심히 움직여도 나무에서 떨어진 잎과 잔가지들을 밟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우는 힘겹게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아지태를 보았다. 눈곱이 낀 여우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으나 살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단념한 듯하였다. 이내 다시 고개를 누이고 눈을 감자 아지태는 여우의 꼬리를 살며시 움켜쥐었다. 자신을 잡아 끌어내는데도 여우는 아무런 저항이 없었다. 밧줄로 네 다리와 주둥이를 감아 묶어도 몸부림조차 치지 않았다. 새끼들은 어미가 끌려 나가는 줄도 모르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미안하지만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다. 부디 용서해라.”
아지태는 여우를 어깨에 둘러메고 서둘러 산에서 내려갔다. 남겨진 새끼들은 여전히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용어 해석>
북원경 : 신라 5소경 중 하나. 지금의 강원도 원주.
명주 : 신라 9주 중 하나. 하서주라고도 함. 지금의 강원도 영동 지역. 지금의 강릉도 동명.
적악산 : 지금의 치악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