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린 배를 붙들고 쉬지 않고 걸은 덕에 아지태는 아직 살아있는 여우를 데리고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송아와 담철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들을 다시 마주친 아지태는 환하게 웃으며 달려갔다. 곧 흑재에게 칭찬을 받을 생각에 힘이 솟았다.
“다녀왔습니다. 다들 잘 계셨는지요?”
담철도 미소로 답하였다.
“참으로 잘하시었소. 우리가 못한 일을 해내시었소.”
“하하, 칭찬이 과하십니다. 어서 어르신께 가져다 바치고 싶습니다. 배가 고파 쓰러지겠습니다.”
“어서 갑시다.”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송아는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으나 내심 그가 무사히 돌아와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꽁꽁 묶여 아지태의 어깨에 걸쳐져 있는 여우를 보자마자 흑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송아와 담철도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아주 잘 해내었구나. 참으로 잘하였어!”
“과찬이옵니다. 그저 숨어서 다 죽어가던 것을 찾아냈을 뿐이옵니다.”
아지태도 무척 기뻤다. 첫 임무를 성공시켜 흑재를 기쁘게 하였으니 이제 자신의 앞날도 밝을 게 분명하였다.
“뭐, 그것은 그러하지. 내가 일부러 숨겼는데, 바로 송아가 잡으려다 놓쳤던 녀석이니라. 그 흠집이 바로 송아가 그것을 잡으려다 낸 것이다.”
“아, 그렇사옵니까?”
아지태는 그제야 그 여우에게 왜 그런 상처가 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 도깨비들을 풀어 잡으려다가 어떤 괘씸한 놈이 끼어들어 도깨비들은 다 죽고 송아는 쫓겨 돌아온 일이 있었느니라. 송아의 힘이 꽤 센데도 그렇게 되었다. 만만히 볼 수 없는 놈인 게지.”
흑재의 말을 들은 아지태는 몸에 소름이 돋았다. 흑재가 말하는 그 존재가 바로 자신이 마주쳤던 그 무시무시한 호랑이를 말하는 듯하였다. 그 정도의 힘과 기운을 지닌 존재라면 틀림없었다.
“어르신, 그것이 혹 범이 아니었는지요?”
아지태의 물음에 흑재는 놀라며 되물었다.
“범이라고? 너, 그것을 보았느냐? 그곳에 범이 있었어?”
“예, 어르신. 몸집이 보통 범보다 몇 배는 더 컸고 자신이 그 산을 다스리는 산신이라고 하였사옵니다.”
“산신?”
“그 범은 인간의 모습으로 둔갑하여 말까지 할 수 있었사옵니다. 절대로 평범한 범이 아니었사옵니다.”
흑재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일을 훼방 놓은 존재의 정체를 알고 나니 당혹스러우면서도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자신의 현재 몸 상태로 직접 상대하기에는 무리일 듯하였다. 송아도 산신에 대하여 알고 나니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두려워졌다.
“그놈과 말도 섞어 보았느냐? 뭐라 하더냐?”
“예. 소인이 만들어 둔 덫에 여우가 아닌 다른 짐승이 걸리면 매번 풀어주었는데, 그것을 보고는 소인에게 달려들어 해괴한 짓을 한다며 화를 내었사옵니다. 그래서 병든 노모에게 여우 고기를 먹이려 한다고 속여 위기를 모면하였사옵니다. 그러자 산신이 도깨비 얘기를 하며 소인이 정말 인간이 맞느냐고 묻고는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경고하였사옵니다. 그러고는 이 여우가 숨어있는 장소를 알려주며 소인을 보내주었사옵니다.”
아지태가 말을 마치자 흑재는 입이 찢어질 듯 미소를 지으며 소리 죽여 킥킥거렸다. 송아와 담철은 놀라서 흠칫하였다. 그들은 그가 그렇게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아지태가 한 얘기에서 어느 부분이 그토록 웃긴 건지 알 수가 없어 당황스러웠다. 아지태도 그 웃음이 어째 섬뜩하게 느껴졌다.
“과연 너는 인간의 핏줄이로구나. 인간만큼 거짓말을 잘하는 것들도 없지. 참으로 놀라운 재주로다. 훌륭하구나!”
“과, 과찬이옵니다.”
“그래, 그 산신이라는 놈도 별것 아니로구나. 제 눈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고이 보내주다니, 쯧쯧.”
흑재는 혀를 차며 산신을 조롱하였다.
“하오나 그 기세가 엄청난 놈이었사옵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몸이 얼어붙어 꼼짝도 할 수가 없었사옵니다.”
“본래 범들이 다 그러하다. 하찮은 것들은 범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벌벌 떨지. 자, 이쯤 하고 이제 그 여우를 손보자꾸나.”
흑재는 손뼉을 치며 말을 마치고 허공에 다가오라는 손짓을 하였다. 그러자 검은 아이들이 나타나 여우를 방 밖으로 끌고 나갔다.
“어르신, 저 여우를 어디에 쓰시려 하시옵니까?”
“약으로 쓰려고 한다. 일어서라. 잘 해내고 돌아왔으니 배를 채워야지?”
“아, 예…….”
아지태는 겨우 약재를 구하려 그 먼 곳까지 가서 고생하였다고 생각하니 허탈해졌다. 한편으로는 그 여우가 뭐가 그리 특별한지도 궁금하였다.
검은 아이들이 바글바글 몰려 들어와 금방 푸짐한 술상을 차렸다. 기분이 아주 좋아진 흑재는 싱글벙글 웃으며 술잔부터 채웠다.
“마음껏 먹고 마셔라. 이것은 머루로 담근 술이다.”
“예, 어르신. 잘 먹겠사옵니다.”
아지태는 단숨에 술잔을 비우고 꿩고기를 집었다. 담철도 구운 메추리를 들어 통째로 입에 쑤셔 넣었다. 아지태는 아직 그 모습에 적응하지 못하여 시선을 돌렸다. 송아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아무것도 손을 대지 않았다.
술 한 병을 다 비우지도 않았는데 두 명의 검은 아이들이 술병을 또 하나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오, 가져왔구나. 이리 다오.”
병을 건네받은 흑재는 안에 든 것을 잔에 따르지도 않고 병째로 들이켰다. 꿀꺽거리며 몇 모금을 마신 뒤 병을 입에서 떼자, 그의 입술에 검붉은 액체가 묻어 있었다.
“으……”
흑재는 마치 쓴 탕약이라도 마신 듯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지태는 꿩고기를 먹다 말고 그를 걱정스럽게 보았으나 송아와 담철은 익숙한지 눈길도 주지 않았다. 흑재는 금방이라도 구역질을 할 듯한 얼굴로 다시 병을 들어 남은 것을 모두 마셨다. 아지태의 시선을 의식한 그는 빨개진 입으로 애써 웃어 보였다.
“이번에는 내가 마신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겠지? 네가 잡아 온 그 여우의 피다. 인간의 썩은 고기에 맛을 들여서 무덤을 파헤치던 녀석이었지. 이것이 나의 약이니라.”
“그러하옵니까? 어딘가 불편하신 곳이, 엇…….”
송아가 아지태의 옆구리를 살짝 찌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더 묻지 말라는 뜻이었다.
“아…… 용서하시옵소서.”
“아니다. 모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러나 더 묻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살다 보면 때로 모르는 게 나은 것들이 있느니라. 알겠느냐?”
“예, 명심하겠사옵니다.”
천으로 입을 닦는 흑재의 낯빛은 어두웠다. 다른 요괴들을 수하로 부릴 정도의 힘을 지닌 그가 약한 모습을 보이자, 아지태는 실망감이 아닌 동정심이 들었다. 자신이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으나 자세한 얘기를 해주지 않으니 답답하였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다시 먹던 꿩고기로 관심을 돌렸다.
“아이고, 좋다.”
실컷 먹고 마신 뒤 목욕까지 마친 아지태는 몸의 물기를 다 말리지도 않고 침대에 누웠다. 능력을 인정받고 배불리 먹고 지낼 수 있게 된 그는 비로소 삶에 보람을 느꼈다. 처음으로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나 한편으로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떠올라 슬퍼졌다. 그동안의 고생과 불행이 전부 자신의 탓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아지태에게 어머니란 자신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놓고는 버리고 떠나버린 이름 모를 아버지만큼이나 원망스러운 존재였다. 아주 어릴 때의 일이었어도 그는 자신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눈빛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검은 아이들이 상을 정리하고 담철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뒤에도 흑재와 송아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아지태는 잠들었느냐?”
“예, 어르신.”
흑재는 양쪽 눈을 번갈아 가리며 시야를 비교하였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너희가 애썼다만, 별 쓸모는 없었구나. 조금도 달라진 게 없어.”
“다음에 더 좋은 것으로 찾아 드리겠습니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이제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구나.”
흑재는 실망하며 힘없이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인간으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송아의 말에 흑재는 눈을 번쩍 떴다.
“큰일 날 소리를 하는구나. 도선이 가만히 있겠느냐?”
“어르신께서 손수 잡으시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인간을 잡아먹는 것들은 이미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도선은 다른 까까머리들과 다르다. 내가 나서지 않더라도 금세 알아차릴 것이다. 그놈이 죽어 사라질 때까지 인간은 결코 잡아서는 아니 된다. 알겠느냐?”
“예, 어르신. 한데, 아지태는 앞으로도 죽 모르게 하시겠습니까?”
“그래. 뭐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여기저기 알리겠느냐?”
“알겠습니다.”
흑재는 방으로 돌아가려 자리에서 일어섰다.
“날이 밝는 대로 도선에게 다녀오마. 아지태를 잘 먹이고 돌봐주어라.”
“예, 어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