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문지화

by 어둠의 극락

산 중턱에 다다른 신홍은 품에서 부싯돌을 꺼내어 홰에 불을 붙이려 하였다. 부시를 돌에 내리치려는 찰나, 어떤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바람 소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소리가 커지며 점차 뚜렷하게 들렸다. 그것은 수많은 발소리와 함성이었다. 밤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사방으로 울려 퍼지며 점점 더 크게 들렸다. 당황한 신홍은 주변을 살피려 더 위쪽으로 올라갔다.

수많은 불빛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산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 불빛은 전부 군사들이 든 횃불이었다. 그런데 그 군사들의 어깨에는 붉은 표시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관군이었다. 관군은 별관을 포위하고 있던 반란군의 후방을 공격하여 진압하고 있었다. 반란군은 수적으로도 열세였고 뒤에서 기습을 당한 터라 속수무책으로 죽어갔다. 음식을 먹던 시위부 군사들까지 상황을 파악하고 가세하는 바람에 반란군은 전멸하기 직전이었다. 신홍은 들고 있던 부싯돌을 떨어뜨렸다. 그의 군사들이 맥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한 반란이 실패로 돌아가고 있었다. 신홍은 힘이 빠진 다리로 휘청거리며 산에서 내려갔다.

별관 주변은 온통 시체로 뒤덮여 있었다. 대부분이 어깨에 붉은 표시가 있는 반란군이었다. 반군을 토벌하고 현장을 정리하던 관군들은 신홍이 나타나자 그에게 달려가 창을 겨누었다. 신홍은 저항하지 않았다.

“내 아우들은 어디 있는가?”

“닥치시오!”

군관이 칼을 겨누며 호통쳤다.

이윽고 별관 문이 활짝 열리며 위홍이 걸어 나왔다. 그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였다. 관군 장수가 위홍에게 달려가 경례를 하였다.

“각간 어른. 저희는 삼량화정의 군대이옵니다. 양주 도독의 영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왔사옵니다. 반군은 모두 진압하였으니 안심하시옵소서.”

“수고 많았네. 폐하께서 그대들의 공을 크게 치하하실 걸세.”

위홍은 장수의 어깨를 다독이며 칭찬하고는 붙잡힌 신홍에게 다가갔다. 위홍은 정색하며 그의 뺨을 힘껏 후려쳤다.

“괘씸한 놈! 감히 폐하의 은덕을 잊고 이런 짓을 벌이다니!”

신홍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단념한 상태였다. 이윽고 내관들이 신홍의 동생들을 밖으로 끌고 나와 그들을 무릎 꿇렸다. 내관들은 모두 칼로 무장하고 있었다.

“내 오늘의 일을 미리 알고 있었느니라. 하여 이리로 오기 전에 시위들을 내관으로 위장시켜 폐하의 곁을 지키게 하였지. 그리고 양주 도독에게도 군사들을 보내라고 일러두었다. 어리석은 놈들. 반역의 대가를 혹독히 치르게 하겠다! 여봐라! 이 역도들을 모조리 포박하여 왕도로 압송하라! 조정 신료들과 백성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처형할 것이다!”

“예!”

위홍의 명령에 관군들은 신홍과 그의 형제들을 묶어 끌고 갔다. 거사가 처음부터 성공할 수 없었음을 알게 된 신홍은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 날 아침, 위홍은 만을 데리고 왕을 찾아갔다. 왕은 막 잠에서 깨어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숙부 오셨습니까? 만이도 왔구나.”

“폐하, 편안히 주무셨는지요? 다름이 아니오라 밤사이 변란이 있어 역도들을 진압하고 주모자들을 모두 잡아들였나이다.”

충격적인 소식에 왕은 잠이 확 달아났다.

“벼, 변란이라니요? 대체 누가…….”

“괘씸하게도 태수 신홍이 일대의 현령들과 작당하였사옵니다. 제 사병과 현령들의 사병까지 동원하였을 뿐 아니라 아우들을 시켜 폐하를 시해하려 하였나이다. 누군가의 고변이 있었던 덕에 대비할 수 있었사옵니다.”

“태, 태수 신홍이 말입니까? 어째서, 그자가 왜…….”

왕은 혼란스러워하며 일어서려다 도로 주저앉았다. 자신을 따뜻하게 환대하던 신홍이 잠든 사이에 자신의 목숨을 노렸다고 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심려 놓으시옵소서. 왕도로 돌아가는 즉시 그들에게 죄를 물어 극형으로 다스리겠사옵니다. 폐하께서 재가만 해주시오면 신이 알아서 처결하겠나이다.”

몸을 덜덜 떨던 왕은 이내 어렵사리 목소리를 내어 답하였다.

“알겠습니다. 이 일은 숙부께서 처리해 주세요. 어서 환궁하고 싶습니다.”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폐하. 그리고, 폐하의 재가를 받을 일이 한 가지 더 있사옵니다. 율령에 따라 신홍의 아우들은 물론 그들의 일가도 모두 족형에 처해야 하옵니다.”

“예?”

왕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직접 반란에 참여하지도 않은 신홍의 가족들까지 다 처형하라는 말이었다.

“어째서 그 일가까지 몰살하란 말입니까? 그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물론 죄가 있사옵니다. 한 지붕 아래에 살면서 제 집안의 가장이 무슨 흉계를 꾸미는지 모를 리가 없지 않사옵니까? 그들 또한 역도나 다름없사옵니다. 폐하, 부디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엄히 다스리시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와 같은 일이 몇 번이고 다시 발생하게 되옵니다. 율령에도 대역죄는 극형으로 다스리도록 나와 있사옵니다. 선왕께서도 역적은 그리 다루시었사옵니다.”

위홍이 단호하게 주장하자 어린 왕은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신홍의 가족 중에는 분명 어린아이들도 있을 터였다. 자기 또래이거나 더 어릴 수도 있었다. 그의 삼촌은 지금 그들까지 전부 죽이라고 종용하고 있었고, 법도와 제 형까지 들먹이며 물러서지 않을 기세였다.

“……알겠습니다. 뜻대로 하시지요.”

결국 왕은 위홍의 말을 따랐다.

“그리 처결하겠나이다, 폐하.”

위홍은 인사를 올리고 물러갔다. 만은 어려운 결정을 내린 뒤 괴로워하는 왕의 손을 잡고 위로하였다. 그도 한 집안을 몰살하는 일이 끔찍하기는 매한가지였으나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폐하, 어차피 국법에 따라 처결하는 것 아니옵니까? 잘하셨사옵니다. 숙부께서 알아서 처리해 주실 것이옵니다. 부왕께서도 그리하시었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동생의 위로는 소용이 없었다. 어린 왕은 당장이라도 구역질을 할 듯한 얼굴이었다.

“네가 뭘 알겠느냐? 난 이 자리가 싫다…….”

왕은 만의 손을 뿌리치며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신홍의 집은 별관에서의 일을 전혀 모른 채 고요한 잔치 분위기였다. 집 대문에는 금줄을 걸고 신홍의 가족과 하인들은 모두 들뜬 마음을 누르며 침묵 속에서 생활하였다. 집안사람들은 밥상을 들이고 옷을 갈아입히는 등 산모와 아기를 보살필 때를 제외하고는 일절 안채에 출입하지 않았다.

“젖은 잘 나오느냐?”

삼신에게 치성을 드린 밥과 미역국을 직접 들고 안채로 온 신홍의 어머니가 아기를 들여다보며 유영에게 물었다. 어미 곁에 누워 꼬물거리는 아기는 보는 이를 절로 미소 짓게 하는 모습이었다.

“예, 어머님.”

“이제 겨우 열흘째이니 답답하더라도 몸조리 잘하거라. 몸이 우선이야. 그나저나 아범은 대체 언제 들어온다니? 아무리 대왕께서 납시었다지만 아이의 이름도 지어주지 않고, 쯧쯧…….”

신홍의 어머니는 자식이 태어나도 무관심한 아들에 대하여 불평하였다. 유영은 고개를 돌려 딸을 보았다. 자신과 남편, 그리고 먼저 낳은 아들과도 꼭 닮은 어여쁜 아이였다. 어서 기운을 차려서 아이를 등에 업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름을 불러줄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몇 번이고 남편과 상의하려 하였으나 그는 다른 곳에만 온 신경이 쏠려 있어 새로 태어날 자식에 관심이 없었다. 매번 생각해 보겠다고만 하고 답을 주지 않던 남편이 내심 원망스러웠다.

“어머니?”

방문이 살며시 열리더니 어린 소년이 고개를 빼꼼 들이밀었다.

“세원이냐?”

“예, 어머니.”

이제 오빠가 된 세원은 포대기에 싸여 누워있는 동생을 보고는 눈을 반짝였다.

“이 녀석아. 아직 여기 들어오면 아니 된다니까. 어서 나가거라.”

신홍의 어머니가 정색하며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누이가 보고 싶어요, 할머니. 어머니도요.”

“어허, 아니 된데도.”

신홍의 어머니는 단호하였다.

“그래, 세원아. 본래 세이레가 지나야 한단다. 보고 싶더라도 참으려무나.”

유영도 말리자 세원은 실망하여 입을 삐쭉 내밀었다.

“마님! 마님!”

그때, 밖에서 다급하게 유영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땔감을 구하러 갔던 하인이 방문 밖에서 숨을 헐떡이다 겨우 입을 열었다.

“헉, 허억……. 마님, 큰일 났습니다! 어서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무슨 일인가? 몸을 피하라니?”

유영은 놀라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어르신께서 모반을 일으키셨다가 잡혀서 목이 베이셨다고 합니다! 지금 저자에 어르신과 형제분들의 목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오는 길입니다. 임금께서 일가들도 모두 잡아 죽이라고 명을 내리셨다 합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여기 계시면 우리 다 죽습니다!”

“뭐, 뭐라?”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신홍의 가족들은 너무도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인들은 그 말에 주저앉거나 어찌할 바를 몰라 갈팡질팡하였다.

“아이고, 부처님…….”

“할머니!”

신홍의 어머니는 쓰러져 정신을 잃었고 놀란 세원이 그에게 달려갔다. 유영은 떨리는 손으로 딸을 품에 끌어안았다.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무엇을 어쩌면 좋을지 몰랐다. 자신이 죽는 것은 상관없었으나, 아들은 물론 갓 태어난 딸까지 죽게 될 망적인 상황이었다. 도망치더라도 어명을 받은 군사들에게 쫓길 터였다.

“마님, 어서요!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아, 뭣들 해? 어서 마님들과 도련님을 모시지 않고! 모두 피하십시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하인들이 방으로 뛰어 들어와 신홍의 어머니를 부축하였다. 유영은 아기를 품에 안고 아직 기운이 없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그리고 나머지 하인들과 함께 서둘러 귀중품과 옷가지를 보따리에 싸서 챙겼다.

쾅!

대문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벌컥 열렸다. 벌써 관군이 신홍의 집으로 몰려온 것이었다.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모두 제자리에서 얼어버렸다.

“이런, 벌써…….”

군사들이 집 안으로 들이닥쳤고,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달아났다.

“역적의 일가를 모두 끌어내라!”

군사들은 미처 달아나지 못한 사람들을 붙잡아 마당 한가운데에 전부 끌어내어 무릎 꿇렸다. 신홍의 가족들은 물론 하인들까지 모두 맥없이 끌려 나와 땅바닥에 쓰러졌다.

“역적 신홍의 일족은 모두 참형에 처하고, 노비들은 모두 관노비로 삼으라는 대왕 폐하의 영이시다! 시행하라!”

“예!”

“살려주시오! 제발 살려주시오!”

군사들은 군관의 명령에 따라 신홍의 가족들과 하인들을 전부 집 밖으로 끌어내었다. 신홍의 어머니는 저항하지 않았다. 아들이 저지른 짓으로 인한 충격으로 몸에 힘이 다 빠진 탓도 있었으나, 유영이 아이들을 데리고 무사히 집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어리석은 아비로 인하여 태어나자마자 역적의 자손이 되어버린 손녀가 너무도 가여웠지만,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봐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다만 이름을 지어주지 못한 것이 너무도 마음에 걸렸다.

“수가 맞지 않는구나. 일부가 빠져나간 모양이다. 도성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찾아내야 한다! 어서 서둘러라!”

“예!”

끌려가는 사람들의 수를 세어본 군관의 지시에 군사들이 신속히 이동하였다. 신홍의 일가는 울부짖으며 속절없이 군사들에게 끌려갔고 그들은 그대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혀를 차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군사들이 떠난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각자 갈 길을 갔다.

“어머니, 대체 무슨 일이어요?”

세원이 땀이 나도록 손을 꼭 쥐고 달리는 유영에게 물었으나 그는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졸지에 자기 자신은 물론 두 아이의 목숨까지 위협받게 되어 눈앞이 캄캄하였다. 금방이라도 창칼을 든 군사들에게 잡힐까 몹시 두려웠으나 아이들이 겁먹지 않도록 애써 침착하였다.

“나중에 말해주마. 지금은 최대한 멀리 달아나야 하니 힘들더라도 조금만 참고 달리거라!”

유영은 방향도 못 정하고 집에서 멀리 벗어나기 위해 길을 따라 있는 힘껏 달렸다. 군사들이 뒤에서 쫓아오고 있는지 돌아볼 용기도 없었다. 그들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용어 해석>

삼량화정 : 신라 지방 주둔 군단인 10정의 하나.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에 설치.

율령 : 형률과 법령.

족형 : 죄인과 함께 일정한 범위의 친족도 같이 벌하는 형벌.

삼신 : 아기를 점지하고 산모와 산아를 돌보는 세 신령.

치성 : 신이나 부처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