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잠시 쉬었다가 가자.”
얼마나 멀리 왔는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도망치던 유영과 세원은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겨우 숨을 돌렸다. 세원의 동생은 어미의 품속에서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어머니, 배고파요. 목도 마르고요.”
세원이 바위에 걸터앉으며 말하였다. 덥고 지쳐서 힘이 다 빠진 목소리였다.
“이를 어쩌나? 먹을 것이 없는데…….”
급하게 빠져나오느라 챙겨온 것이 없어서 그들은 여태 아무것도 먹지 못하였다. 세원의 동생도 언제 또 젖을 달라고 울음을 터뜨릴지 몰랐다.
“나무 열매라도 찾아보고 올 터이니 누이 좀 데리고 있거라. 떨어지지 않도록 잘 안고 있어야 한다?”
“예, 다녀오셔요.”
유영은 잠든 아이를 조심스럽게 세원의 품에 안겨 주었다. 세원은 그의 동생을 무릎으로 받치고 여린 팔로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여기 꼼짝 말고 있어라.”
“알겠어요.”
유영은 서둘러 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향하였다. 세원은 품에 안긴 동생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조그만 갓난아이는 덥고 힘든 것도 잊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이름이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좋을지 고민이었다.
“어머니께서 네 이름을 말씀해 주지 않으셨어. 왜 이름을 안 지으셨지?”
세원은 아버지가 왜 동생의 이름을 짓지 않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세원아!”
유영이 두 팔 가득 자두를 품고 돌아왔다.
“벌써 오셨어요? 그게 뭐예요?”
“오얏나무 열매인데 저 위에 잔뜩 열려있기에 따왔다. 어서 먹어라. 안에 크고 단단한 씨가 있으니 씹지 않게 조심하고.”
“예, 어머니도 어서 드세요.”
세원은 동생을 유영에게 넘겨주고 자두를 베어 물었다. 살짝 덜 익어 무척 시었으나 단맛도 있어서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으으…… 시어요.”
“아직 덜 익어서 그렇다. 하지만 달리 먹을 것이 없어.”
“괜찮아요. 근데 씨가 참말 커요.”
금세 자두 한 알을 다 먹은 세원은 씨를 내던지고는 유영의 품에 안긴 동생을 살폈다. 동생은 여전히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근데 어머니. 누이 이름은 왜 안 지으셨어요? 전 이름을 불러주고 싶은데…….”
“너희 아버지가……”
유영은 더는 남편을 탓하지 않았다. 자신들을 불행하게 만든 남편을 원망할 기력도 없었다.
“아버지가 그동안 무척 바쁘셨단다. 그냥 네가 지어주면 어떻겠니? 누이도 오라비가 직접 지어준 이름을 무척 좋아할 거다.”
“그럴까요? 그럼…….”
세원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기왕이면 꽃처럼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꽃을 찾아보려고 주변을 둘러보던 세원의 눈에 하얗게 핀 종처럼 생긴 꽃이 들어왔다.
“저기 저 꽃 이름이 뭔가요?”
“저건 초롱꽃이다.”
“초롱? 이름 예쁘다. 그럼 누이 이름도 초롱이라고 할래요!”
“좋은 이름이구나. 누이도 분명 좋아할 거다.”
세원은 기뻐하며 동생의 자그마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아이는 마치 코앞에 다가온 사람이 자신의 오빠임을 아는 것처럼 배냇짓을 하였다.
“초롱아. 이제부터 네 이름은 초롱이다. 알았지?”
세원은 조심스럽게 초롱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영은 고개를 돌리고 자두를 입에 쑤셔 넣으며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간신히 틀어막았다. 남편이 지은 죄로 인해 군사들에게 쫓기는 자신의 처지와 아무것도 모르는 두 아이가 너무도 가여웠다. 대체 앞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막막하였다. 역적의 일족이 된 마당에 서라벌에 있는 친정으로 갈 수도 없었고, 다른 지역에 가본 적도 없었다. 자신이 두 아이를 지켜줄 수 있을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이제 다시 길을 떠나자. 이 산속은 해가 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단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가야 한다.”
“예, 어머니.”
“산에서 내려가면 마을이 나올 터이니 거기서 음식을 좀 얻어 보자. 어쩌면 하룻밤 재워줄 수도 있고.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유영은 자리를 털고 일어서서 세원의 손을 잡았다.
기대는 실망에 짓밟혔다. 산 아랫마을로 내려와 집마다 다니며 음식을 얻으려고 하였으나 매번 퇴짜를 맞았다.
“우리도 곡기 구경 못 한 지가 한참 되었다오. 미안하구려.”
“아, 예…….”
화려하고 풍족한 서라벌과는 달리 다른 지역의 인심은 야박하기 짝이 없었다. 하다못해 젖동냥이라도 얻으려고 하였으나 마찬가지였다. 초롱이 배가 고픈지 울음을 터뜨렸으나 유영은 자두 몇 알 먹은 것으로는 부족하여 젖이 나오지 않았다. 세원도 이제는 걸을 힘조차 없는지 자꾸만 뒤처졌다. 야속하게도 해까지 저물고 있었다. 사냥이나 낚시라도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들에게는 그럴 힘도, 도구도 없었다.
결국 음식을 구하지 못한 모자는 어둠이 내린 마을 초입으로 나와 길가에 주저앉아 버렸다.
“어머니, 이제 어떡해요? 너무 배고파…….”
유영은 대꾸할 기운조차 없었다. 배가 고파 우는 갓난아이를 보고도 마을 사람들은 끝내 그들을 외면하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길바닥에서 굶어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살려면 뭔 짓을 못 할까?’
유영은 안고 있던 초롱을 세원에게 넘겼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거라. 이번에는 꼭 먹을 것을 구해오마.”
“어떻게요?”
유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그것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는 기도하였다.
‘목매님,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기도를 마친 유영은 다시 마을로 돌아갔다. 세원은 유영이 사라진 자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어머니가 걱정되면서도 동생과 단둘이 남게 되니 무서워졌다. 세원을 둘러싼 어둠은 그의 두려움을 더욱 키웠다. 초롱이 품에서 계속 울부짖는 탓에 세원도 덩달아 울고 싶어졌다.
‘대체 언제 오셔요? 무서워…….’
그때, 빠르게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유영이 한 손에는 하얀 무 두 통과 다른 손에는 도축해서 깃털까지 다 뽑은 닭을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세원아, 이거 받아라! 어서 가자!”
기운이 되살아난 유영은 서둘러 초롱과 닭을 품에 안고 세원의 손에 무를 들렸다.
“도둑이야! 도둑이야!”
마을 사람들이 고함치며 뒤쫓아왔고, 유영은 세원의 손을 잡고 사력을 다하여 달렸다. 세원은 거의 끌려가다시피 하며 짧은 다리로 달렸다.
“도둑 잡아라!”
“빨리! 잡히면 죽는다!”
모자는 보이지도 않는 길을 따라 미친 듯이 달려 어두운 숲으로 사라졌다. 그들을 뒤쫓던 닭 주인은 들고 있던 몽둥이를 휘두르며 소리를 질렀다.
“빌어먹을! 큰맘 먹고 잡은 닭인데 그걸 훔쳐 가! 거기 서지 못해!”
“멈추게! 그 숲이야!”
함께 모자를 쫓던 마을 사람이 닭 주인을 붙잡아 세웠다. 닭 주인은 눈앞의 숲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이런, 여기까지 와버렸네. 어, 어서 돌아가세…….”
“그래, 어차피 저리로 들어갔으니 곱게는 못 죽을 거야. 그냥 잊어버리게.”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도망치듯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유영과 세원은 숲속으로 깊이 들어가지는 않고 초입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마침내 배를 채울 수 있게 된 모자는 신이 났다.
“콜록콜록!”
유영은 나뭇가지를 힘껏 비벼 불을 피우고 닭을 구웠다. 세원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땔감으로 쓸 나뭇가지들을 주워 왔다. 닭의 살점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 닭이 익는 동안 유영은 닭과 함께 훔쳐 온 무를 베어 물었다. 초롱에게 젖을 물리려면 무엇이든 서둘러 먹어야만 하였다.
“이 무는 그냥 먹으면 매우니 조금만 기다려라.”
“네. 참을 수 있어요.”
울다 지쳐 도로 잠이 든 초롱을 안고 불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세원은 입맛을 다셨다. 몹시 허기졌던 유영은 금세 무 한 통을 다 해치웠다. 뱃속에 뭔가가 들어가니 다시 정신이 돌아오고 피로가 가시는 듯하였다. 어느덧 닭고기가 다 익자 유영은 다리 하나를 뜯어내어 입으로 호 불어 식혔다.
“자, 이제 먹어도 된다. 뜨거우니까 천천히 들어라.”
유영은 손을 데지 않도록 무청을 닭 다리 끝에 감아 세원의 손에 쥐여 주었다.
“잘 먹겠습니다.”
세원은 작은 입으로 야금야금 살점을 뜯어먹었다. 소금을 구하지 못하여 아무 간도 없었으나 시장이 반찬이라 그런대로 먹을 만하였다. 잘 먹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유영도 날개 한쪽을 뜯어내어 먹었다.
“근데 어머니, 우리는 왜 집을 나왔어요?”
한참 잘 먹던 세원이 갑자기 묻자, 유영은 고기를 입에 문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스스로 말하고 걷는 나이였지만 세원은 아직 어렸다. 반역과 연좌, 그 때문에 몰살당한 집안과 화를 피해 도망치는 그들. 전부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할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실 그대로 말해주자니 세원이 혼란스러워할 것 같았고, 대충 둘러대자니 말솜씨가 부족하여 믿게 할 자신이 없었다.
“아버지 때문이어요?”
유영이 아무 말도 못 하고 망설이는 사이, 세원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유영은 그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세원아…….”
“아버지께서 목이 잘려서 거리에 내걸렸다고 했잖아요. 큰 죄를 지은 사람을 그렇게 한다고 들었어요. 아버지께서 나쁜 짓 하신 거지요? 그래서 우리도 잡아가려고 사람들이 쫓아와서 달아나고 있는 거 맞지요?”
유영의 손에 들린 닭고기가 파르르 떨렸다. 마냥 어린 줄만 알았던 아이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집에서 멀리 떠나왔어도 여느 아이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던 이유였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어떤 말로도 그 마음을 달래줄 수 없었다. 유영은 먹은 것이 체한 듯 가슴이 켕기며 욱신거렸다. 모자는 그렇게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닭고기를 다 먹고 가만히 모닥불만 바라보고 있던 유영은 세원의 손을 살며시 꼭 쥐었다. 세원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눈물이 고인 어머니의 두 눈에는 굳고 강한 의지가 가득 차 있었다.
“세원아, 다른 건 몰라도 나는 너희의 어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어미가 꼭 지켜주마.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말아라.”
유영의 얼굴을 빤히 보던 세원은 대답 대신 그를 꼭 끌어안았다. 유영도 세원을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둘의 품 안에서 초롱은 그들의 온기를 느끼며 배냇짓을 하였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밖에서 자 본 적이 없었는데도 유영과 세원은 몹시 지치고 배도 불러서 금방 곯아떨어졌다. 세원과 초롱은 어머니의 팔을 베개 삼아 그의 품속에서 곤히 잠들었다. 모닥불은 마치 어둠에 잡아먹히듯 서서히 사그라졌다.
<용어 해석>
배냇짓 : 갓난아이가 자면서 웃거나 눈, 코, 입 따위를 쫑긋거리는 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