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이 없다

by 어둠의 극락

한참 잘 자던 세원은 목이 말라서 잠이 깨었다. 아직 주변이 어두운 탓에 그냥 참고 자려고 하였으나 갈수록 갈증이 심해져서 잠이 오지 않았다. 참다못한 세원은 물을 찾아보려 몸을 일으켰다.

삐이익- 삐이이이-

그때, 어떤 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풀벌레와 맹꽁이 울음소리처럼 밤에 흔히 들리는 소리와는 전혀 다른 소리였다. 세원은 두리번거리며 소리가 나는 방향을 찾아보았다. 자세히 들어보니 악기 소리 같았다. 입으로 부는 악기였으나 대나무로 만든 피리와는 사뭇 달랐다. 세원은 자신도 모르게 일어서서 그 소리를 따라갔다. 너무 고단했던 유영은 깊이 잠든 탓에 세원이 잠자리를 벗어나는 줄도 몰랐다.

세원은 소리를 따라 어두운 숲속으로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갔다. 눈이 차츰 어둠에 익숙해졌는데도 발밑조차 보이지 않아 손으로 앞을 더듬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소리가 나는 곳에 가까워졌는지 차츰 더 선명하게 들렸다. 공기가 금속을 스치는 맑고 가벼운 소리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것처럼 들렸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독특한 소리였다. 세원은 대체 무엇이 그런 신기한 소리를 내고 있는지를 어서 알아내고 싶었다. 마음이 앞서서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하고도 멈추지 않고 소리를 쫓아갔다.

이윽고 세원은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내었다. 썩어서 쓰러진 나무에 누군가가 걸터앉아서 생황을 불고 있었다. 그는 이상한 모양의 관을 쓰고 본래 색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검게 그을린 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은 핏기가 하나도 없어 창백하였고 입술과 눈 주변은 머리에 쓴 관처럼 새까맸다. 생황의 지공을 열고 막는 손가락들은 비쩍 말라서 뼈만 앙상하였다. 세원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의 생김새에 놀랐으나 그가 연주하는 생황은 시선을 사로잡았다. 악사는 세원을 곁눈질로 슬쩍 보고는 계속 생황을 연주하였다. 세원은 음악에 푹 빠져들었다. 구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연주는 자신의 도망 다니는 신세를 위로해 주는 듯하였다. 어느새 세원은 한 걸음 한 걸음 악사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하나뿐인 청중과 함께 한참 연주를 이어가던 악사는 이내 천천히 일어서더니 숲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걸어가면서도 악사는 연주를 멈추지 않았고, 세원은 홀린 듯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세원은 악사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의 곁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계속 듣고 싶었다. 어머니도 동생도 더는 생각나지 않았다. 이대로 모든 것을 잊고 영원히 그 음악을 듣고 싶었다. 세원이 자신을 따라오자 악사는 기쁨에 찬 눈빛으로 그를 돌아보며 계속 생황을 불었다. 그렇게 세원은 요괴를 따라 다시는 벗어나지 못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아앙!”

“에그……”

유영은 초롱의 울음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피로는 좀 풀렸으나 맨바닥에서 잔 탓에 몸이 찌뿌둥하였다. 잠이 덜 깬 상태로 힘겹게 몸을 일으킨 유영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초롱을 살살 흔들며 달래주었다. 우거진 나무들 틈으로 간신히 비집고 들어온 햇빛이 날이 밝았음을 알려주었다.

“세원아, 일어나…… 어?”

유영은 세원을 흔들어 깨우려고 옆으로 손을 뻗었으나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세원이 누워있던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유영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숨이 턱 막혔다.

“……세원아?”

유영은 일어서려다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그 충격으로 초롱은 더 크게 울부짖었고 유영은 허둥지둥 다시 몸을 일으켰다.

“세원아! 세원아!”

유영은 있는 힘껏 세원의 이름을 외쳤다. 주변에는 발자국은커녕 어떠한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디로 갔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숲속을 돌아다니며 찾을 수도 없었다. 처음 와본 데다 끝을 알 수도 없는 숲에서 함부로 깊숙이 들어갔다간 길을 잃을 게 분명하였고,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세원이 지금의 위치로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유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면서 있는 힘껏 세원을 불렀다. 초롱은 울음을 그칠 줄을 몰랐고 유영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대답 좀 해봐, 세원아! 어딜 갔어……”

주저앉아 한참 동안 목이 터져라 세원을 부르던 유영은 결국 숲을 빠져나와 마을로 되돌아갔다. 비록 음식을 훔쳐 달아났던 곳이었으나 도움이 꼭 필요하였다. 마을 사람들에게 맞아 죽을 게 뻔한데도 유영은 오직 세원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곳으로 향하였다.

‘부디 도와주십시오, 목매님…….’

유영은 품속에 든 것을 어루만지며 기도하였다.

마을 초입에 나타난 유영은 본 마을 사람들은 눈을 의심하였다.

“아니, 어떻게 살아나왔지? 그 숲에 들어갔다가 멀쩡히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혹시 귀신 아니야?”

“귀신이 아침부터 돌아다닌단 말인가?”

“같이 있던 사내아이는 안 보이는구먼.”

마을 사람들은 마을로 들어오는 유영은 보고 놀라며 두려워하였다. 유영은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다가갔다.

“저…… 아이를 잃어버렸습니다. 부디 도와주십시오…….”

유영이 다가가자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도망쳤다. 닭을 도둑맞았던 사람조차 허둥지둥 집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유영은 그 상황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도둑질을 한 자신을 보고 화를 내거나 달려들기는커녕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달아나서 숨고 있었다.

“제발…… 제발 도와주셔요, 흑흑…….”

유영은 차마 남의 집 앞마당까지 쫓아 들어가진 못하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담장 너머에서 애타게 도움을 청하였다. 그러나 음식을 부탁했던 전날처럼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때, 닭 주인이 문을 살짝 열고 머리만 바깥으로 내밀며 소리쳤다.

“썩 물러가라, 훠이!”

그러고는 무언가를 마당에 뿌렸다. 유영이 뒷걸음질 치며 보니 붉은 피였다. 어제 그가 훔쳤던 닭의 것이었다. 유영은 조심스레 그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어제 일은 참으로 송구스럽습니다. 배가 너무 고파서 그랬습니다. 저희는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처지랍니다. 부디 제 아이를 찾도록 도와주십시오.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부디…….”

그러자 닭 주인이 문을 열지도 않고 집 안에서 소리쳤다.

“그 숲에서 사람이 사라졌으면 도깨비가 잡아간 게야. 거기서 멀쩡히 돌아온 사람 아무도 없었어. 재수 없으니까 어서 썩 꺼져!”

힘없이 마당 밖으로 나온 유영은 길가에 주저앉아서 울부짖는 초롱을 끌어안고 오열하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주겠다는 아들과의 약속을 하룻밤 사이에 지키지 못하게 된 유영은 남은 아이를 붙들고 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해가 중천에 이를 무렵에야 유영은 겨우 울음을 그치고 몸을 일으켰다. 계속 울어봤자 이미 잃은 아들은 되찾을 수 없었다. 딸마저도 지키지 못한다면 죽어서 부모와 남편을 볼 면목이 없었다. 자신과 아이를 지키려면 최대한 더 멀리 떠나는 것밖에 길이 없었다. 유영은 우선 마을을 벗어나서 우는 초롱에게 젖부터 물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이는 젖을 빨게 하니 그제야 울음을 뚝 그쳤다.


유영은 이제 반대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으로 다녔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만 다니다가 그런 일을 겪었으니 차라리 사람이 많은 곳으로 다니는 편이 더 안전할 듯하였다. 그리고 사람들과 되도록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시선을 낮추고 땅만 보며 걸었다. 비록 얼굴이 알려지지는 않았더라도 만일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지금 있는 지역까지 소식이 전해져 언제 군사들이 나타나서 자신을 쫓아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신분은 물론 어디에서 살았고, 어디 출신인지도 숨겨야만 하였다.

무작정 걷던 유영은 어느새 다른 마을에 도착하였다. 마침 사람들이 농사일을 마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유영은 그들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한 사내를 불러 세웠다.

“저, 저기……”

“무슨 일이오?”

“여기가…… 어디쯤인지요?”

“여기요? 여긴 야성군이오.”

사내는 의아하다는 표정이었으나 답해주었다. 그러자 다른 마을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유영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초라한 행색으로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유영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야성군이라면…… 혹 여기가 명주 땅이란 말입니까?”

“그렇소.”

“아……”

그저 길 따라 하염없이 걷기만 했더니 유영은 어느새 다른 주에까지 들어와 있었다. 여태 살면서 그렇게까지 멀리 와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양주로부터 멀어지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한데 어디서 오시는 길이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걸 보면 꽤 멀리서 오신 모양이오.”

사람들의 물음에 유영은 대충 둘러대었다.

“아, 예. 저…… 그저 여기저기 떠돌고 있습니다.”

“그 어린 것을 데리고? 쯧쯧, 어쩌다가…….”

마을 사람들은 혀를 차며 모녀를 동정하였다. 그 와중에 유영은 옷소매가 서서히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초롱이 오줌을 싸서 포대기가 젖어 있었다.

“아이고 저런, 아이가 오줌을 쌌네. 일단 우리 집으로 가세. 아이도 씻기고 죽이라도 한 사발 들게나. 몰골이 말이 아니야.”

한 노파가 안타까워하며 유영의 손을 잡았다.

“고, 고맙습니다…….”

처음 받아보는 친절에 유영은 눈물이 절로 나왔다. 그동안 거쳐온 마을들과는 달리 그곳의 사람들은 그에게 인정을 베풀었다. 유영은 안도감에 정신이 아득해지며 결국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졌다.

“쯧쯧쯧, 누가 좀 도와주게. 우리 집까지 업어다 줘.”

“예, 어르신.”

노파는 초롱을 품에 안아 마을 외곽에 있는 집으로 향하였고, 건장한 청년이 유영을 등에 업고 뒤따랐다. 정신을 잃은 유영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 눈물에는 더 이상 슬픔과 절망이 담겨있지 않았다.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잔 유영은 눈을 떴다.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은 작은 방 안에 누워있었고, 그의 곁에서 노파가 초롱을 깨끗한 새 포대기로 감싸 안고 살살 흔들며 달래고 있었다.

“아유, 어쩜 이리 예쁠까? 어미보다 더 예쁘네그려, 허허허.”

노파가 농담을 던지며 웃었다. 초롱도 노파를 올려다보며 방긋 웃음을 지었다. 유영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정신이 들었는가? 자, 내가 죽을 쑤었으니 좀 들게. 아이에게도 이미 먹였네. 빈속에 갑자기 음식이 들어가면 탈이 나니까 천천히 들어.”

노파는 죽사발이 놓인 소반을 유영 앞으로 밀어주었다.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감사는 무슨. 나도 자식이 있는 어미인데 어찌 못 본 체하겠는가? 어서 들어. 먹어야 기운이 나고 젖도 나오지.”

유영은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을 들어 천천히 죽을 떠서 입에 넣었다.

“근데 어쩌다가 이 어린 것까지 데리고 떠돌이가 되었나? 아이 아비는 어디 있고?”

노파의 물음에 유영은 답할 수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지어낼 재주도 없었다. 유영이 말을 못하자 노파는 손으로 자신의 입을 살짝 때렸다.

“아아, 내가 괜한 소리를 했구먼. 말하지 말게. 필시 말 못 할 사정이 있겠지. 요즘 같은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어서 들어.”

“예, 고맙습니다.”

유영은 죽을 마저 다 먹었다.

“얼마든지 머물다가 가게. 영감이랑 자식들 다 떠나고 홀로 사느라 적적하였는데 잘 되었어, 허허허. 나에게 아들이 둘 있는데 둘 다 집을 떠나 병졸이 되었다네. 그리고 하나 있던 딸은 잃어버렸지.”

“어쩌다가……”

“그야 모르지. 어느 날 집에 두고 밭일을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사라졌더군. 홀로 집을 나갔다가 길을 잃은 건지, 아니면 도깨비가 잡아갔는지 알 길이 없더구먼.”

안타까운 사연을 노파는 담담하게 말하였다. 유영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였다. 자식을 잃지 않았다면 이해하지 못했을 심정이었다.

“뭐, 어쩌겠는가? 다 내 잘못인 것을……. 그저 다른 집 자식이 되어 잘 살고 있다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네. 세상에는 자식 먼저 떠나보낸 어미들이 나 말고도 많아. 자네는 부디 나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구먼.”

“예, 어르신. 명심하겠습니다.”

“누워서 좀 더 쉬게. 아이는 내가 봐 줄 터이니.”

해가 뜨기도 전에 유영은 눈이 떠졌다. 새벽 공기가 집 안으로 스며 들어와서 방 안이 서늘하였다. 초롱은 노파 곁에서 잠들어 있었다. 초롱은 꼭 친할머니의 품속에 있는 것처럼 평온하게 자고 있었다. 참으로 고마운 인연이었다. 초롱을 친손녀처럼 귀여워해 주고 음식까지 대접해 준 은인이었다. 유영은 마음 같아서는 홀로 사는 노파의 곁에 남아서 그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싶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자신이 당한 화가 노파에게까지 미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유영은 초롱과 노파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초롱을 안아 올렸다. 기력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멀리 가야만 하였다. 서라벌과 양주의 사정을 잘 모를 정도로 먼 곳으로 가서 식모살이든 뭐든 해서 정착한다면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다들 도망쳐! 어서!”

유영이 살며시 방문을 열고 나가려던 찰나, 마을 어딘가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밖을 내다보니 불이 났는지 마을 초입 방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유영은 서둘러 노파를 흔들어 깨웠다.

“어르신! 어르신, 어서 일어나 보셔요!”

“으음…… 무슨 일인가……?”

노파는 눈도 못 뜬 채 몸을 일으켰다.

“어느 집에 불이 났나 봐요.”

“불이라고?”

노파는 화들짝 놀라며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마당으로 나가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을 보니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불길로부터 멀어졌는데도 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어르신, 어서 피하세요! 산적들이 쳐들어왔어요!”

도망치던 마을 사람이 노파에게 달려와 외쳤다.

“산적? 산적이라고? 아이고…….”

유영은 놀라서 휘청거리는 노파를 붙들었다.

“다들 어서 피하세요!”

“어르신, 어서 가시죠!”

그런데 노파는 집 밖으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부엌으로 들어갔다. 유영과 마을 사람은 당황하여 그를 쫓아갔다.

“어르신,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어서 피하셔야 한다니까요!”

그러나 노파는 말없이 보자기를 펼쳐놓고 솥뚜껑을 열었다. 그러고는 나물과 섞어서 지은 밥을 있는 대로 퍼서 담고는 보자기를 싸서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그것을 유영에게 내밀었다.

“이거 가져가게. 어디까지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배곯지 말게.”

“어르신…….”

“자네는 절대 나처럼 자식 잃고 후회하지 말게나. 그 아이에겐 자네가 전부야. 알겠는가?”

유영은 눈시울을 붉히며 밥을 받았다. 노파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초롱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가거라.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자, 저 뒷산으로 피하게. 저놈들이 산속까지 뒤져보진 않을 테니 괜찮을 게야.”

“어르신도 어서 피하셔야죠.”

“내 걱정은 말고 먼저 가게. 아이부터 살려야지. 어서!”

노파가 재촉하자 유영은 눈물을 흘리며 집 뒤편에 있는 산으로 올라갔다. 등 뒤로 사람들의 비명과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희열에 찬 산적들의 함성과 웃음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이 세상 어디에도 마음 놓고 머물만한 안전한 곳이 없었다. 무서운 요괴와 매정하고 잔인한 인간들이 설쳐대는 이 참담한 세상에 버려진 이들은 그저 기도하며 위험으로부터 달아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목매님, 부디 저희를 지켜주십시오.’



<용어 해석>

야성군 :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