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살 수 없는 세상

by 어둠의 극락

땅 위를 뜨겁게 달구는 햇빛의 기세가 한풀 꺾이는 바닷속은 푸르고 고요하였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서 평화는 오래 가지 못하였다. 한 무리의 상괭이들이 무언가를 피해 달아나고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물고기 떼가 양쪽에서 상괭이들을 포위하여 공격하였다. 거친 비늘로 뒤덮이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지느러미와 이빨을 가진 물고기들은 무리에서 떨어진 어린 상괭이에게 일제히 달려들었다. 어미가 뒤늦게 새끼를 찾았으나 이미 새끼는 붉은 안개에 휩싸여 죽어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뼈만 남아 가라앉아 버린 새끼를 어미는 망연자실하여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새끼를 해치운 물고기들은 어미마저 잡아먹으려 달려들었다. 그 순간, 기다란 창 같은 것이 물을 가르며 날아와 물고기 서너 마리를 꿰뚫었다. 상괭이를 습격하던 물고기들은 창이 날아온 방향으로 일제히 몸을 돌렸다. 족히 수십은 되어 보이는 다른 물고기들이 빠르게 헤엄쳐 다가오고 있었다. 점점 옅어지는 피의 안개를 뚫고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물고기가 아니었다. 인간의 상체에 다리 대신 커다란 물고기의 꼬리를 가진 인어들이었다. 그들은 각자 긴 창을 하나씩 들고 꼬리를 휘두르며 덤벼드는 물고기들을 막아내었다. 인어들의 기습에 물고기들은 속수무책으로 창에 꿰이거나 나가떨어졌다. 그 틈에 상괭이 무리는 멀리 달아났다. 물고기들은 인어들에게 제대로 반격도 못 해보고 이리저리 흩어지며 도망쳤다.

싸움이 끝나고 인어들은 한자리에 모여 창끝을 맞대고 누가 가장 많은 물고기를 잡았는지 서로 비교하였다.

“다들 잘했어. 아무도 안 다쳤지?”

“응. 언제 봐도 라미 언니 솜씨가 으뜸이야. 많이도 잡았네.”

“시리도 많이 잡았는데 뭐. 그나저나 갈수록 칼날턱들이 늘어나서 귀찮게 되었어.”

“고래들이 자꾸만 우리 골짜기로 피해 오는 바람에 그런 거야. 그 녀석들이 칼날턱들을 이리로 끌어들이는 거라고.”

인어들은 나날이 빈번해지는 영역 침범에 너도나도 불평하였다.

“그래도 고래들은 맞서 싸우지도 못하고 우리가 먹을 것들을 빼앗지는 않잖아. 거기다 칼날턱들은 굳이 고래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우리 골짜기로 쳐들어올걸? 어차피 물리쳐야 할 놈들이야. 그러니 고래들을 탓하지는 마. 돌아가자.”

인어들은 잡은 물고기들을 가지고 그들이 모여 사는 골짜기로 돌아갔다.

꽃밭처럼 알록달록한 산호초 너머에 햇빛이 거의 닿지 않는 어두운 골짜기가 있었다. 아무것도 살지 않을 듯한 그 깊은 골짜기가 인어들의 거주지였다. 골짜기 곳곳에 뚫린 크고 작은 굴들을 인어들이 집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는 곳이었다. 인어들은 골짜기 아래로 내려가 잡은 물고기들을 한곳에 모았다. 돌아온 친구들을 보고 인어들이 하나둘 굴에서 나와 골짜기 밑바닥으로 내려왔다.

“다들 와서 하나씩 가져가!”

인어들은 먼저 온 순서대로 각자 물고기를 집어 들었다. 수북이 쌓여 있던 물고기들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칼날턱들이 사납기는 해도 맛은 좋아. 그렇지?”

“맞아. 조개보다도 맛있어.”

제 몫을 챙긴 라미는 하나 남은 물고기를 발견하였다.

“하나가 남네. 누가 안 가져갔나?”

“세리겠지. 또 물 위로 올라갔나 봐. 곧 돌아올 테니까 그냥 두자.”

인어들은 남은 물고기를 그대로 두고 각자의 굴로 돌아갔다.

다른 인어들이 사냥하는 동안 세리는 수면 위로 올라가 하늘과 육지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바다 밖 세상에 관심이 많았다. 본래 인어들은 인간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자손을 낳을 목적으로 종종 뭍으로 나오기는 하였으나, 세리는 그와는 별개로 육지에 호기심이 많았다. 인어들은 물 밖에서도 숨을 쉬는 데 지장이 없었고, 물 밖으로 나오면 꼬리가 사라지고 다리가 생겨났다. 그러나 오랜 시간 바다를 떠나 있으면 피부가 말라붙어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인어들은 오래전부터 육지로 깊이 들어가는 것을 금하고 있었다. 간혹 인간에게 잡혀서 죽는 인어도 있었던 탓에 번식 이외의 목적으로 인간과 어울리는 것도 금지였다. 그러나 그러한 금기는 세리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할 뿐이었다.

세리는 파도에 몸을 맡기며 해변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혹시라도 인간에게 들키지 않도록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햇빛 아래 따뜻한 모래를 발로 느껴보고 부드럽게 몸을 휘감으며 물기를 앗아가는 바람을 느껴보고 싶었으나 낮에는 인간들 눈에 띄기 쉬워 그럴 수가 없었다. 세리는 아쉬움을 달래며 몸을 돌려 모래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절벽을 향해 헤엄쳤다.

크기가 제각각인 암초들로 둘러싸인 높은 절벽은 다가갈수록 위압감을 뿜어내었다. 그곳에는 유독 크기가 큰 갯바위가 하나 있었다. 시커멓고 날카로운 바위는 가만히 있는데도 꼭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고 위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때문에 세리는 그동안 한 번도 그 바위 근처에 가볼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오늘은 반드시 그리로 가까이 가봐야 할 듯한 강한 끌림을 느꼈다.

“아아앙!”

암초로 다가가니 파도 소리에 섞인 다른 소리가 들렸다. 얼핏 바닷가에 사는 새의 울음소리인 줄 알았으나 귀 기울여 들어보니 다른 소리였다. 상괭이의 울음소리처럼 들리기도 하였다. 세리는 혹 다친 상괭이가 암초 뒤에 숨어서 울고 있는가 하여 서둘러 소리가 나는 방향을 찾아보았다. 세리는 파도가 암초에 부딪혀 사방으로 튀는 물을 뒤집어쓰며 암초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러자 꼬리와 지느러미가 봄볕에 눈 녹듯 서서히 녹아내리며 인간과 똑같은 두 다리로 변하였다. 다리가 생기긴 하였으나 막상 땅 위에서 걸어 본 적은 없었던 세리는 암초 위를 두 팔로 기어서 소리를 따라갔다.

“아앙! 아아앙!”

“뭐지?”

세리는 암초 사이의 틈새에 껴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였다. 두툼한 천으로 둘러싸인 그것이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파도를 직접 뒤집어쓰지는 않았으나 바닷물이 튀어 천이 젖어 있었다. 세리는 그것을 조심스레 암초 틈에서 빼내어 풀어보았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작은 인간 아기였다. 인어의 아기와 별다를 게 없는 생김새였으나, 아기의 몸에서 맡아본 적이 없는 육지의 냄새가 나서 무척 신기하였다. 세리는 아기의 다리와 발을 만져보고 손가락으로 아기의 얼굴을 여기저기 건드려 보았다. 세리의 손가락이 입에 닿자, 아기는 금세 울음을 그치고 손가락을 빨았다.

“어? 히히히.”

세리는 손가락 끝이 간지럽고 아기가 귀엽기도 하여 웃음을 터뜨렸다. 어쩌다가 인간 아기가 파도가 치는 돌 틈에 껴 있었는지 알 길이 없었으나, 세리는 아기가 귀여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암초 위에 걸터앉아 아기를 품에 안아주었다. 아기는 언제 울었냐는 듯 세리를 올려다보며 배냇짓을 하였다.

그 무렵, 남편인 을소와 함께 집에서 쉬고 있던 라미는 수시로 굴 밖을 내다보며 안절부절못하였다. 세리가 돌아오지 않는 탓이었다. 늘 비슷한 시간에 돌아오던 세리가 오늘은 그 시간을 한참 넘겼다.

“얘 왜 이렇게 안 와? 밥 먹을 때는 잘 맞춰서 돌아오더니.”

“그러게. 어디 멀리 갔나?”

“설마 인간에게 잡힌 건 아니겠지?”

불안을 견디지 못한 라미는 꼬리를 휘저으며 일어섰다.

“안 되겠다. 가서 찾아보고 올게.”

“같이 가.”

참다못한 라미는 을소와 함께 굴에서 빠져나왔다. 그들이 수면으로 향하려는 찰나, 때마침 세리가 골짜기로 내려왔다. 그는 라미와 을소를 보자마자 무척 반가워하였다.

“얘, 너 어디서 뭐 하다가 이제야 오니?”

“미안해, 언니. 나 좀 도와줘. 내가 땅끝에서 뭘 찾았거든.”

“뭘?”

“따라와 봐.”

세리는 재빨리 몸을 돌려 다시 위로 헤엄쳐 올라갔다. 라미와 을소는 의아하였으나 일단 그를 뒤따랐다.

아기를 찾은 곳으로 돌아온 세리는 잽싸게 암초 위로 튀어 올라갔다. 라미와 을소는 물속에서 머리만 내민 채 가만히 그를 지켜보았다. 이윽고 세리는 파도가 닿지 않는 암초 위에 눕혀놓았던 아기를 데려와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그거 인간 아니야? 어디서 났어?”

라미가 놀라며 묻자 세리는 활짝 웃으며 아기를 품에 안았다.

“여기서 찾았어. 이리로 왔다가 웬 울음소리가 들리길래 봤더니 저 바위들 틈에 껴 있더라. 너무 귀엽지 않아?”

마냥 즐거워하는 세리와는 달리 라미와 을소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이 있었기에 당혹스러웠다.

“배고프겠다. 을소, 넌 인간을 잘 알지? 인간 아기는 뭘 먹어?”

“어, 그야 어미 젖을 먹지. 아무거나 먹이면 안 돼.”

골짜기에 사는 인어들 가운데 유일한 남성인 을소는 본래 인간이었기에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그렇구나. 그건 우리와 같네. 그럼 어미는 어디에 있지?”

“어미가 여기에 버리고 간 거 아닐까? 간혹 그런 인간들이 있거든.”

을소의 말에 세리와 라미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끔찍하다. 제가 낳은 새끼를 버린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왜 아기가 이런 곳에 혼자 있겠어? 이렇게 파도가 휘몰아치는 위험한 곳에 말이야. 짐승들도 그럴 때가 있어.”

“그럴 리가……. 그럼 어쩌지? 아기가 많이 배고플 텐데.”

잠시 고민하던 라미는 아기에게 다가가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기는 라미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방긋 웃었다.

“아! 할머니에게 물어보자. 할머니는 아는 게 많잖아?”

세리는 좋은 생각이라는 듯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불러올 테니까 여기 있어.”

라미는 물속으로 들어갔다.

골짜기로 돌아온 라미는 아래쪽에 있는 가장 큰 굴로 들어갔다. 골짜기에 사는 인어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기리가 사는 곳이었다.

“할머니, 집에 있어?”

굴 안에는 한 인어가 굉장히 긴 머리카락을 이불처럼 덮고 자고 있었다. 그는 나이가 많았음에도 외모가 어린 인어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할머니, 일어나 봐.”

라미가 흔들어 깨우자 기리는 얼굴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아유, 왜? 왜 그래?”

“세리가 어린 인간을 찾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아?”

“무얼 찾았다고?”

기리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새끼 인간 말이야. 물 밖에 있는 바위들 틈에서 찾았대. 을소는 어미가 버리고 간 것 같다고 하던데, 그냥 두면 굶어 죽을지도 몰라. 어떻게 해야 해?”

“어디에 있니?”

기리는 눈을 비비며 라미를 따라나섰다.

수면 위로 올라와서 세리의 품에 안긴 아기와 그가 있던 장소를 둘러본 기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나 인간이나 젖이 아무 때나 나오는 것도 아닌데 나보고 어찌하란 말이니? 게다가 우리 젖을 인간에게 먹여도 괜찮을지 어떻게 알아?”

기대와는 달리 기리도 아기를 도울 방법을 모르는 듯하였다. 실망한 세리는 품에 안은 아기를 안타깝게 내려다보았다. 아기는 세리와 눈이 마주치자 또다시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럼 어떻게 해? 이대로 굶어 죽게 놔둬?”

“어쩔 수 없잖니. 물속으로 데려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너희가 땅 위로 올라가서 기를래? 그럴 수도 없잖아.”

“하지만……”

“내버려 둬. 어차피 이런 곳에 홀로 있는 걸 보면 을소 말대로 어미가 버리고 간 거야. 그러니까 괜히 쓸데없는 일 만들지 마. 돌아가자.”

기리는 냉정하게 돌아섰다. 세리는 그의 차가운 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버려 두라니까? 어서 돌아가자.”

기리가 재촉하는데도 세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따르지 않았다. 라미와 을소는 서로 눈치만 살폈다.

“싫어.”

기리는 말없이 세리를 쳐다보았다. 노여워서가 아니라 괜한 고집을 부리는 세리가 안타까워서였다. 인어와 인간이 함께 살 방법은 없었다. 라미와 사랑에 빠져 입을 맞추고 물에서 오랜 세월을 함께 살면서 인어가 된 을소와는 다른 문제였다. 세리도 그를 모르지는 않았으나, 자신을 향해 해맑게 미소 짓는 아기를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미 한 번 버림받은 아이를 또 버린다는 것은 너무도 잔인한 짓이었다.

“그러면 앞으로 죽 땅 위에서 살래? 인간들 눈에 띄지 않게 숨어서 가슴을 졸여가며 살가죽이 말라비틀어지도록 여기서 버티려고? 그 아이가 그렇게까지 해야 할 값어치가 있니?”

세리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얼굴로 말없이 품속의 아기를 더 꼭 끌어안았다. 그 완강한 태도에 기리는 더는 세리를 설득할 수 없었다.

“너는 늘 그러하였지. 좀처럼 꺾을 수가 없어.”

기리는 체념한 듯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팔을 들어 바다의 수평선을 가리켰다.

“저 너머에 인간들이 왜국이라고 부르는 섬을 지나서 큰 바다로 나가면 미르님이 계신다는 이야기 들려준 적 있지? 그리로 가봐. 하늘과 바다와 땅이 있지도 않았던 아주 먼 옛날부터 사셨다고 하니까 아는 것도 많을 거야. 그 아이를 데리고 한 번 찾아가 봐.”

기리의 말에 세리는 환하게 웃으며 눈물을 흘렸다.

“고마워, 할머니.”

“그게 그냥 이야기가 아니었구나! 그런데 아기를 거기까지 어떻게 데려가지?”

라미의 물음에 기리는 세리에게 다가갔다.

“워낙 오랜만이라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리는 두 손을 모아 물을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물에 입김을 불었다. 그러자 손에 담긴 물이 부글부글 끓으며 부풀어 오르더니 커다란 물방울이 만들어졌다. 그 광경을 본 인어들은 모두 입이 떡 벌어졌다.

“아이를 이리 데려와.”

“어? 어.”

세리가 아기를 기리에게 내밀자 기리는 손에 있는 물방울을 아기에게 들이대었다. 아기의 머리가 물방울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물방울은 터지지 않았다. 기리는 그대로 물방울을 밀어 아기가 완전히 안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아기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였는지 매우 평온하였다.

“할머니,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어디서 배웠어?”

“아주 옛날의 일이야. 이렇게 하면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고 숨도 쉴 수 있어. 잘 터지지도 않으니까 마음 놓고 다녀와. 물론 너 홀로 가는 건 안 돼.”

“알겠어. 고래들이랑 같이 갈게.”

그러자 라미가 어이없다는 듯 다그쳤다.

“얘, 고래들이 무슨 도움이 된다고? 우리가 같이 가야지.”

“괜찮아.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게다가 언니 아기는 어쩌고?”

“잔말 말고 돌아가서 같이 갈 사람들을 모아보자.”

라미는 세리의 손을 잡아끌어 물속으로 들어갔다. 아기는 차가운 물로부터 보호받으며 어느새 물방울 안에서 편안히 잠들어 있었다. 아기를 바닷가에 버리고 간 요괴처럼 바닷물에 젖은 세리의 손도 차갑기는 마찬가지였으나, 그 손길만은 부드럽고 따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