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가 아기를 골짜기의 인어들에게 소개하자 그들 모두 아기를 환영하며 귀여워하였다. 인어들이 사정을 전해 듣고는 너도나도 따라가겠다고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기리가 겨우 그들을 진정시켜야만 하였고, 그냥 세리와 함께 아기를 발견한 라미와 을소가 따라가기로 결론이 났다.
세리와 라미, 을소는 커다란 참고래의 등에 올라타서 그 무리와 함께 대양으로 여정을 떠났다.
“바다는 참으로 넓구나. 끝이 안 보여.”
을소는 인간이었을 적에도 먼 바다로 나가 본 적이 없어 한껏 들떠있었다.
“이렇게까지 멀리 와본 건 처음이야. 어쩌면 다른 곳에서 사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을지 몰라. 이 넓은 바다에 우리만 있을 리가 없잖아?”
“그렇겠지. 가슴이 설렌다.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 무리하면 우리 도로에게도 좋지 않아.”
“괜찮대도. 내가 보는 것들은 우리 아기에게도 다 보여주고 싶어.”
라미는 아직 부르지 않은 배를 쓰다듬었다. 여러 차례 시도하여 어렵게 얻은 소중한 아이였다. 라미와 을소가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 감탄하는 사이, 세리는 품 안의 아기에게만 관심이 쏠려있었다. 아기는 물방울 안에서 생전 처음 보는 물속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세리는 두 눈을 반짝이는 아기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아이를 낳은 경험이 없었는데도 이미 마음으로는 엄마가 다 되어있었다. 어느새 라미와 을소도 세리의 곁으로 다가와 물방울 안을 들여다보며 아기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내가 이 아이의 좋은 이름을 생각해 놓았어.”
“오, 그래? 뭔데?”
“암초 틈에서 찾은 아이니까 ‘초아(礁兒)’라고 지었어. 어때?”
세리는 을소가 지은 아기의 이름을 듣고 감탄하였다.
“멋지다! 참 잘 지었어. 아주 예쁜 이름이야!”
“맞아. 이 아이에게 잘 어울려. 초아. 초아.”
라미가 맞장구를 치며 아기의 이름을 되뇌었다.
“초아야. 이제부터 네 이름은 초아야. 알겠지?”
세리는 물방울을 꼭 끌어안았다. 그런데 얌전하던 초아가 별안간 울음을 터뜨렸다.
“아기가 여태 아무것도 못 먹었지?”
라미가 뒤늦게 그것을 깨닫고 다급하게 물었다.
“얼마나 굶었지? 이를 어째? 언니 젖 안 나와?”
“아기를 낳아야 젖이 나오지.”
“어쩌면 좋아, 어!”
그때, 갑자기 그들이 올라타고 있던 고래가 몸을 들썩거렸다. 그 바람에 세리는 하마터면 초아를 놓칠 뻔하였다.
“왜 이러지?”
고래들이 하나둘 울기 시작하였다. 여럿이 동시에 울어대니 온 바다가 다 울리는 듯하였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인어들을 마음이 불안해졌다. 위험을 감지하였는지 고래들은 더 빠르게 헤엄쳤다.
“저, 저기!”
세리와 라미는 을소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넛의 검은 물체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윽고 그것들이 더 가까이 접근하자 모습이 드러났다. 잔뜩 돋아난 날카로운 이빨이 입 밖으로까지 튀어나와 있는 백상아리였다. 인어들은 처음 보는 상어의 험악한 생김새에 본능적으로 그들을 경계하였다. 칼날턱들이 그러하였듯 상어들도 작고 힘없는 새끼 고래들을 노리고 무리를 공격하였다. 어미들은 큰 덩치로 어떻게든 그들을 위협하여 쫓아내려 애를 썼다. 순간 백상아리 하나가 몸을 틀어 인어들에게 달려들었다.
“꺅!”
세리는 재빨리 초아를 감싸 안고 덤벼드는 상어를 피하였다. 세리가 고래의 등에서 떨어지자 라미와 을소도 뒤따라 떨어져 나왔다.
“괜찮아?”
“응, 저게 대체 뭐지?”
“저런 건 처음 봐. 아기는 어때?”
세리가 놀라서 세게 끌어안았어도 물방울은 터지지 않았다.
“괜찮아 보여.”
인어들을 지나쳐 간 상어는 빠르게 몸을 돌렸다.
“돌아온다!”
인어들은 서둘러 헤엄쳐 달아났다. 고래들은 상어의 습격으로 혼비백산하여 서로 부딪히고 뒤엉켰다. 인어들은 그 어지러운 와중에 상어를 따돌리려 고래들 틈으로 섞여 들어갔다. 그러나 상어는 빠른 속도로 그들을 따라잡았다.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상어는 을소를 들이받았다.
“억!”
“을소!”
라미는 서둘러 나가떨어진 을소에게 달려가 그를 부축하였다. 세리는 정신없이 홀로 도망쳤다. 고래 무리에서 벗어나 혼자 달아나는 세리를 발견한 상어는 이제 그를 뒤쫓았다. 세리는 최대한 빠르게 꼬리를 움직였으나 재빠른 상어를 따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문득 뒤를 돌아보는 순간, 상어는 뾰족한 코로 세리를 들이받았다. 순식간이었다. 세리는 그 충격으로 그만 초아를 놓치고 말았다. 세리의 팔에서 떨어져 나간 초아는 그대로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곧 정신을 차린 세리는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초아와 그를 뒤쫓는 상어를 보았다.
“안돼!”
세리가 서둘러 쫓아갔으나 이미 초아는 쩍 벌어진 상어의 입속으로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세리는 두려움도 잊고 어떻게든 상어를 막으려 하였다. 그런데 두 줄로 난 날카로운 이빨이 물방울에 박히려는 찰나, 상어가 갑자기 입을 다물고 몸을 틀었다. 그러더니 쫓아오던 세리를 그냥 지나치며 도로 위로 헤엄쳐 올라갔다. 세리는 가라앉는 초아를 구하는 일이 급하여 신경 쓸 새도 없이 헤엄쳐 내려갔다. 깊지 않은 곳에서만 살던 세리는 점점 깊이 내려갈수록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나락처럼 어두운 바다로 초아는 계속 가라앉았다. 얼마나 깊이 내려왔는지도 모른 채 세리는 점차 희미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들고 더 깊이 내려갔다. 그러나 이내 세리는 몸을 짓누르는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기절하고 말았다.
세리는 돌처럼 딱딱한 어딘가에 누운 채로 눈을 떴다. 그것은 거칠지 않고 매끄러웠다. 몸을 일으키려 하자 상어와 부딪혔던 부위가 욱신거렸다. 몸을 겨우 일으켜 누워있던 자리를 내려다보니 그곳은 거북의 등 껍데기였다. 세리는 커다란 바다거북의 등에 올라타고 있었다. 거북은 천천히 헤엄쳐 세리를 어디론가 데려가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바다거북들과 창을 든 인어들이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맨몸이었던 세리 일행과는 달리 그 인어들은 몸이 알록달록하게 빛나는 비늘로 덮여 있었다. 자세히 보니 크고 작은 조개껍데기와 비늘을 촘촘히 엮어서 만든 갑옷이었다. 꼬리의 생김새도 사뭇 달랐다. 길이가 훨씬 길었고, 끝에 지느러미가 아닌 긴 털이 수북하게 나 있었다. 그중 하나가 익숙한 물방울을 품에 안고 있었다. 초아를 안고 있던 인어는 세리가 정신을 차린 것을 보고 그에게 초아를 건네주었다. 초아는 물방울 안에서 울다 지쳐 잠들어 있었다.
“어디서 난 새끼 인간이니?”
“어, 땅끝에서 찾았어. 버림받은 것 같아서 데려왔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큰 바다 깊은 곳에 사는 미르님이 아는 게 많다고 들어서 그분을 찾아가던 길이었어.”
초아를 데리고 있던 인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르님께서는 이미 너희가 올 줄 알고 계셨어. 그래서 우리를 보내셔서 너희를 데려오라고 하셨어.”
“다 알고 계셨다고?”
놀라는 세리에게 갑옷 입은 인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용은 아는 것이 많다는 기리의 말이 사실이었다. 세리는 마음이 들뜨면서도 긴장되었다. 늘 이야기로만 전해 들었던 용을 직접 만나게 되면 어떤 모습과 느낌일지 조금은 두렵기도 하였다.
한참을 더 이동하자 어떤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소리는 여러 방향에서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세리는 근처에 고래가 있는 줄 알았으나 고래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인어들의 노래였다. 셀 수 없이 많은 인어들이 주위를 맴돌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골짜기의 인어들은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노랫소리는 참으로 신비롭게 들렸다. 육지의 인간들이 부르는 노래와는 전혀 달랐다. 인어들은 고래보다도 아름다운 목소리로 바닷속을 가득 채웠다.
일행은 어느덧 높고 거대한 장벽으로 가로막혀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선두에 있던 인어가 팔을 들어 신호를 보내자 모두 제자리에 멈추었다. 노래하던 인어들도 일제히 조용해졌다. 세리가 다 왔는지 물으려고 하자 갑옷 입은 인어들은 장벽을 향하여 고개를 숙였다. 세리는 자신도 그들처럼 고개를 숙여야 하는지 헷갈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였다.
“데려왔습니다.”
갑옷 입은 인어들이 다시 고개를 들며 말하자 지진이라도 난 듯 진동이 느껴졌다. 세리와 라미, 을소는 당황하며 거북의 등딱지를 붙잡았다. 그들은 곧 자신들의 두 눈을 의심하였다. 온 바다를 뒤흔드는 진동과 함께 장벽이 움직이고 있었다. 회오리가 일어나며 토양과 부유물이 흩날렸다. 한바탕 폭풍이 가신 뒤, 인어들의 눈앞에 밝게 빛나는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것은 거대한 눈이었다. 검은 동공이 다 자란 고래보다도 큰 엄청난 크기의 눈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세리와 라미, 을소는 비명도 못 지르고 거북의 등 위에서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안개처럼 일어났던 토양과 부유물이 가라앉으며 그 눈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다시 보니 장벽은 어마어마하게 큰 용의 몸이었다. 깊은 바다의 밑바닥에서 똬리를 틀고 누워 인어들의 노래를 감상하고 있던 전설 속의 용신(龍神)이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용신이 잔뜩 겁에 질린 세리를 들여다보며 묻자 마치 하늘과 땅을 다 뒤집어엎을 듯한 목소리가 바닷속에 울려 퍼졌다. 세리는 입을 뗄 수조차 없었다. 용신은 그가 그동안 보았던 존재들 가운데 가장 컸다. 압도적인 크기의 용을 직접 보니 숨이 턱 막히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세리가 아무 말도 못 하고 떠는 모습을 본 용신은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의 몸집이 서서히 줄어들더니 세리의 시야에 머리가 다 들어올 정도의 크기가 되었다.
“아이의 이름이 무엇이냐?”
“ㅊ, 초, 초아……”
그제야 세리는 겨우 물음에 답할 수 있었다. 용신은 여전히 머리만 해도 고래보다 훨씬 컸다. 용신은 커다란 눈을 초아에게 들이대며 그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엄청나게 큰 눈을 본 초아는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다. 세리는 초아를 살살 흔들며 달래었다. 용신은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그들을 향하여 물방울을 뿜었다. 물방울은 세리와 초아에게 다가오며 점점 고리 모양으로 변하였고, 고리는 그대로 그들을 통과하여 지나간 뒤 흩어져 사라졌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세리는 통증이 가셨고, 초아는 울음을 뚝 그쳤다.
“돌아가거라.”
“예? 저……”
“네가 이 아이를 아끼고 살리고자 하는 마음에 티끌만큼의 거짓도 없다면 너는 이미 이 아이의 어미이니라. 돌아가면 다 알게 된다.”
말을 마친 용신은 뒤로 물러났다.
“노래를 마저 하라. 쉬어야겠다.”
용신이 조금 전과 같이 바닥에 똬리를 틀고 몸을 누이자 인어들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리고는 거북들을 이끌고 물러났다. 세리는 어리둥절하여 넋을 놓고 있었다. 좀 더 자세한 답을 듣고 싶었으나 용신은 귀찮다는 듯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았다. 다시 울려 퍼지는 인어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세리와 일행들은 용신의 보금자리를 떠났다. 세리는 용신의 답이 만족스럽지 않았으나 그의 태도에서 더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어 보였다.
골짜기로 돌아온 세리와 라미, 을소는 고향 친구들에게 둘러싸였다.
“어서 와. 큰 바다는 어땠어? 미르님도 만났니?”
“미르님이 뭐래? 답은 들었니?”
“아기는 괜찮아? 아직도 울어?”
인어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질문을 쏟아내는 바람에 세리는 어느 것부터 답해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아유, 이것들아! 숨 돌릴 틈은 줘야지. 얼마나 힘들었는데.”
라미가 성을 내며 인어들을 밀어내려 하였으나 그들은 하나같이 세리의 품에 안긴 초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버텼다.
“얼른 집에 들어가. 가서 쉬어.”
라미는 인어들을 막아선 채 세리에게 손짓하며 말하였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너무해. 언니는 큰 바다까지 따라가면서 실컷 봤을 거 아냐.”
“맞아. 우리도 좀 보자.”
“날 밝고 보면 되잖아. 쉬어야 한다니까?”
세리는 초아를 데리고 소란스러운 자리를 벗어나 집으로 향하였다.
혼자서 사는 작은 굴 안으로 들어온 세리는 피로한 몸을 누였다. 그리 오랫동안 떠나있지도 않았는데 굉장히 오랜만에 돌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세리는 초아를 곁에 조심스럽게 눕히고 팔베개를 해주었다. 대양에서 그토록 험난한 일을 겪고도 물방울은 초아를 굳게 지켜주고 있었다. 비록 물방울 안에 있는 초아에게 손이 닿지는 않았지만 둘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였다. 초아는 또다시 잠이 쏟아지는지 조그만 입을 벌리며 하품을 하였다. 세리는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서 웃음을 터뜨리며 물방울을 감싸 안았다.
“초아야, 사랑해.”
세리는 얼굴을 초아에게 가까이 들이대며 속삭였다. 초아가 잠에 빠져들자, 긴장이 풀린 세리도 덩달아 졸음이 몰려오며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눈이 반쯤 감기려는 찰나, 세리의 눈앞에 하얀 뭔가가 둥둥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언뜻 부유물처럼 보였으나 다시 눈을 뜨고 자세히 보니 실오라기처럼 길고 가느다란 것이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서서히 퍼지면서 곧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세리는 그것을 잡아보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것은 잡히지 않고 흩어질 뿐이었다. 감촉조차 없었다. 그것이 이어진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자신의 몸에서, 그것도 젖가슴에서 나오고 있었다. 세리는 놀라며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하얀 액체가 또 새어 나와 물결을 따라 흘렀다. 세리는 그제야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젖이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세리는 몹시 흥분되고 기뻐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졸음이 확 달아난 그는 초아를 안고 재빠르게 수면으로 올라갔다.
수면 위로 올라오니 밤하늘에 뜬 별이 셀 수가 없었다. 별들이 머리 위로 쏟아질 것처럼 보여 아찔할 정도였다. 잠시 하늘에 넋을 빼앗겼던 세리는 올라 앉을만한 장소를 찾아 해안가로 다가갔다. 표면이 비교적 매끄럽게 깎인 암초를 찾은 세리는 그 위에 걸터앉았다. 한밤중이라 해안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본능적으로 초아에게 젖을 물리려던 세리는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물방울이 여전히 초아를 감싸고 있었다.
“아……”
세리는 탄식하며 물방울을 손가락으로 찔러 보았다. 그러나 터지기는커녕 힘주어 찔러넣었던 손가락을 튕겨냈다. 이빨로 깨물어도 보고 암초의 거친 면에 대고 비벼도 보았으나 소용없었다. 물방울을 만든 기리를 찾아가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세리는 기껏 수면으로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야 하게 생기자 허탈해졌다.
“미르님께서 네 바람을 이루어주셨구나.”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물속으로 들어가려던 세리는 화들짝 놀랐다. 언제 따라왔는지 기리가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할머니, 안 자고 있었어?”
“네가 또 물 밖으로 나가길래 무슨 일인가 하고 따라왔다. 젖이 나오는 거지?”
“응. 그래서 먹이려고 이리로 왔어. 이거 할머니가 만들었으니까 없앨 수도 있지? 어떻게 해도 안 터지더라.”
“그래.”
기리는 손을 뻗어서 물방울에 대고 터지는 모양을 흉내 내듯 손을 오므렸다가 폈다. 그러자 물방울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서 사라졌다. 초아는 물방울 안으로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였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도 세리는 자연스럽게 초아의 머리를 손으로 받치고 가슴에 안아 젖을 물게 하였다.
“잘하는구나. 그렇게 하면 돼.”
잠자코 지켜보던 기리는 세리를 칭찬하였다. 처음 느껴보는 감촉이 어색하고 간지러웠으나 꾹 참았다. 며칠 만에 초아를 다시 직접 안을 수 있게 된 세리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살면서 그토록 행복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이 행복을 초아도 꼭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리라 다짐하였다. 반면 앞으로 세리가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기리는 차마 함께 웃어주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당장은 세리의 행복을 깨지 않고 지켜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