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다 뜨지도 않았는데 허월은 서둘러 산에서 내려갔다. 마음이 들떠서 한숨도 못 잤는데도 피곤한 줄 몰랐다. 허월은 순식의 집으로 향하였다. 집을 지키던 군사들은 연락도 없이 갑자기 돌아온 허월에 놀랐으나 곧바로 대문을 열어 그를 들여보내 주었다.
“여보게, 집사. 아직 자는가?”
허월은 방문 밖에서 조용히 집사를 불렀다. 그러자 집사가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왔다. 막 잠에서 깼는지 두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아이고, 스님! 참으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 오랜만일세. 혹시 집에 먹을 것 좀 있는가? 떡이나 과일 같은 것 말일세.”
“예, 있습니다.”
“조금만 챙겨주게.”
허월이 부탁에 집사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보자기에 싼 음식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여기 있습니다. 제를 올리려 하시는지요?”
“쓸 데가 있어서 그렇다네. 고맙네. 다음에 보세나.”
“그냥 가시려고요? 기왕 이렇게 오셨는데 성주님과 함께 조반이라도 드시고 가시지요.”
“아닐세. 성주에게 안부나 전해주게. 잘 있게나.”
“아, 예. 그럼 살펴 가십시오.”
집사는 못내 아쉬워하며 서둘러 나가는 허월에게 인사를 하였다. 당장은 가족들을 만날 겨를이 없었다. 허월의 머릿속에는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바닷가 절벽에서 마주쳤던 기이한 여자아이. 그 아이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높은 절벽 위에서 파도가 치는 바다로 뛰어들고도 무사한지, 아이의 정체가 도깨비인지 인간인지도 확인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분명 마주친 기억이 전혀 없는데도 아이가 낯설지 않았다. 그것이 아이를 다시 한번 만나봐야 할 또 다른 이유였다.
허월은 전날 아이와 만났던 절벽으로 향하는 길목에 앉아서 아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서서히 떠오르는 햇빛이 바다에 반사되어 눈이 부셨으나 언제 아이가 나타날지 몰라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기다리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아침 식사도 거르고 서둘러 나온 탓이었다. 순식의 집에서 받아온 음식은 아이에게 주려고 가져온 것이었으나, 밀려오는 허기를 참기 어려웠던 허월은 결국 바랑에서 보따리를 꺼내어 떡을 조금 먹었다.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앉아있으려니 허월은 슬슬 졸음이 몰려왔다. 음식도 거의 절반을 먹어버린 상태였으나 아이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허월은 포기하고 암자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무척 아쉬웠으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다. 자신이 무작정 다가가는 바람에 겁을 먹었을 수도 있었다. 아이의 눈을 처음 마주쳤던 순간, 그것은 마치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을 본 눈빛이었다. 어쩌면 그리로 왔다가 먼저 와 있는 그를 발견하고 몰래 돌아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허월은 내일 다시 와 보기로 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내일은 다른 시간에 와서 눈에 띄지 않을 만한 곳에 숨어서 기다려 보기로 하였다.
“엇!”
돌아선 허월은 애타게 기다리던 아이가 기척도 없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자 깜짝 놀랐다. 아이도 덩달아 몸을 움찔하였다. 하지만 어제보다는 두려움이나 경계심이 적어 보였다. 막 물에서 나왔는지 아이는 흠뻑 젖은 채 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해초를 몸과 팔다리에 칭칭 감고 있었다. 마치 사람이 입는 옷을 흉내 낸 듯한 모양새였다.
“꼴이 그게 무엇이냐? 허허허……. 다시 만나서 반갑구나. 잘 있었느냐?”
허월의 인사에도 아이는 저번처럼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허월은 또다시 아이가 놀라서 달아나지 않도록 이번에는 거리를 두었다.
“내 말을 알아듣느냐?”
허월의 물음에 아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아이가 그에게 보여준 반응이었다. 아이와 말이 통한 허월은 몹시 기뻐서 절로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오, 그렇구나. 자, 이것 좀 먹어보련?”
허월은 남은 음식을 펼쳐 아이에게 내밀었다. 아이는 그런 음식을 처음 보았는지 떡과 과일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냄새를 맡았다. 냄새가 괜찮았는지 별 거부감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아이가 선뜻 음식을 집지 않자, 허월은 머루 한 알을 따서 입에 넣고 먹었다.
“자, 이렇게 먹으면 된다. 아무 짓도 안 하였으니 어서 먹으려무나. 너 주려고 일부러 가져온 것들이다.”
그제야 아이는 머루 한 알을 따서 입에 넣고 씹었다. 새콤달콤한 맛에 놀랐는지 아이는 얼굴을 찡그렸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허월은 아이의 반응에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어떠냐? 맛있느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머루 한 알을 더 따서 입에 넣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떡을 집어 들었다. 말랑하고 쫀득한 느낌이 신기하였는지 먹지는 않고 손으로 찔러 보고 주무르기만 하였다.
“허허, 먹는 것으로 장난을 치면 아니 되느니라. 자, 이쪽에 편히 앉으렴.”
허월은 앉아있던 자리에 다시 앉았고, 아이도 그 앞에 마주 앉았다. 아이는 떡을 한입 베어 물고는 그 식감에 또 한 번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허월은 가져온 음식들을 아이가 거부하지 않고 잘 먹어서 마음이 놓였다.
“입에 맞는 모양이로구나, 허허. 다행이다. 참, 춥지 않으냐? 고뿔 들겠다.”
허월은 바랑을 열어 잘 개어진 옷가지를 꺼내어 아이에게 내밀었다. 아이는 옷을 받아서 마찬가지로 냄새를 맡았다. 그러더니 그 옷을 입지는 않고 입으로 가져가 물어뜯었다.
“아니, 아니! 그것은 먹는 것이 아니다.”
허월은 당황하며 아이를 저지하였다. 그는 아이의 몸에서 해초를 떼어내고 옷을 펼쳐 아이에게 입힌 뒤 옷깃을 여며주었다. 아이는 옷의 촉감이 어색하였는지 몸을 비틀고 긁적거리며 어쩔 줄을 몰랐다.
“옷을 입어본 적이 없느냐? 그렇다면 어디 벗어둔 게 아니라 늘 이런 꼴로 돌아다녔더란 말이냐? 허어……”
허월은 다시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알몸으로 다니는 점을 제외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여자아이였다. 그러나 떡도, 과일도, 옷도 모르는 것을 보면 아이는 최소한 육지에서 인간들과 함께 살아본 적이 없는 게 분명하였다. 어쩌면 인간이 아닐 수도 있었다. 높은 절벽에서 맨몸으로 뛰어내리고도 무사하니 예사롭지 않은 존재였다. 아이가 정말 도깨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허월은 두려우면서도 신묘한 일이라고 여겼다.
“나무관세음보살.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지. 사람이건 도깨비이건 무엇이 중요하랴? 인연이란 그 자체로 귀한 것이거늘. 허나, 도무지 알 수가 없구나. 어째서 네가 낯설지 않은 걸까?”
아이는 허월의 말에 딱히 귀를 기울이지 않고 몸을 긁적거리면서 남은 음식을 마저 먹었다. 허월은 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보며 최선을 다해 지난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그러나 분명 아이는 기억 속에 없었다.
허월이 기억의 궁궐에서 헤매는 사이, 잊고 있던 뭔가가 갑자기 떠오른 듯 아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어제와 같이 재빠르게 절벽 끝으로 달려갔다. 허월이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아이는 옷을 입은 채로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서둘러 뒤쫓아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역시나 아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거참, 옷을 입은 채로 물속으로 들어가다니……. 과연 범상치 않은 아이로구나. 꼭 다시 만나자꾸나.”
허월은 아이에게 들리길 바라며 홀로 중얼거렸다.
바다로 돌아온 아이는 허월이 입혀준 옷과 사투를 벌였다. 물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옷이 젖어 무거워지면서 헤엄치기가 힘들어졌다. 평소보다 오래 물 밖에 있었던지라 급하게 바다로 돌아오느라고 벌어진 일이었다. 뒤늦게 옷을 벗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어찌어찌 한쪽 팔을 빼내긴 하였으나 옷은 다리 사이로 휘감겨 그물처럼 아이를 옭아매었다. 아이는 덜컥 겁이 나서 울음을 터뜨렸다. 때마침 근처에 있던 을소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재빨리 헤엄쳐 왔다.
“무슨 일이니? 이거 옷이잖아? 어디서 났어?”
아이가 대답하지 못하고 울기만 하자 을소는 서둘러 아이의 몸에 엉킨 옷을 풀어내었다. 가까스로 풀려난 아이는 을소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을소는 아이의 등을 두드리며 달래주었다. 울음소리를 들은 다른 인어들도 하나둘 모여들었다.
“무슨 일이야? 초아는 왜 울어?”
을소는 옷을 들어 보였다.
“이게 몸에 엉켜서 놀랐나 봐. 헤엄을 못 치고 있더라고.”
“이게 뭔데? 이거 인간들이 몸에 두르는 거잖아?”
인어들은 옷을 만져보며 살펴보았다. 그러는 사이 세리도 그리로 왔고, 을소는 세리에게 가서 초아를 그의 품에 안겨주었다.
“무슨 일 있었어? 괜찮아, 울지 마.”
을소는 대답 대신 인어들이 구경하고 있는 옷을 가리켰다. 그것을 본 세리는 표정이 굳어졌다. 세리는 포옹을 풀고 초아의 얼굴을 마주 보며 다그쳤다.
“너 저거 어디서 났어?”
초아는 대답을 망설였다. 육지에서 인간을 만났고 그 인간에게 받았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은 세리뿐만 아니라 기리에게도 혼이 날 만 한 일이었다. 바다로 뛰어들기 전에 옷을 벗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어서 말해. 어디서 났냐니까? 너 저게 뭐인 줄은 아니?”
“……땅에서 줬어.”
“땅에서? 누가? 인간이? 너 인간이랑 마주쳤니? 어서 말해 봐!”
세리가 버럭 화를 내자 초아는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리는 경악하며 초아를 몰아붙였다.
“그럼 너 또 땅 위에 올라갔던 거지? 거기서 마주쳤구나, 그렇지?”
초아는 차마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서 또 고개를 끄덕였다. 세리는 을소를 노려보았다. 초아와 함께 거짓말을 한 그는 세리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였다.
“네가 더 나빠. 홀로 아이를 키우려면 힘이 들 테니까 도와주겠다면서? 이게 도와주는 거야? 네가 말렸어야지!”
을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세리가 소리를 지르자 점점 더 많은 인어들이 모여들었고, 기리와 라미도 그들을 따라 나왔다.
“무슨 일이니? 누가 울어?”
기리가 물었으나 세리는 초아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집으로 갈게.”
모두의 이목이 쏠리자 세리는 서둘러 초아를 집으로 데려갔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라미는 어리둥절하여 을소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으나, 을소는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기리는 인어들이 들고 있는 옷을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초아가 땅 위에 올라가서 인간을 만났니?”
“예…….”
기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집으로 돌아온 세리는 초아를 앉혀 놓고 말없이 보고만 있었다. 초아는 세리의 얼굴을 마주 보기가 힘들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세리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초아는 성장하면서 점차 제멋대로 행동하고 위험한 짓을 일삼았다. 이미 규칙을 여러 번 어긴 그가 이제는 거짓말까지 하였다.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가는 늘 걱정하던 대로 인간에게 봉변을 당할 게 불 보듯 뻔하였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이 깊어졌다.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니? 땅은 무서운 곳이라고 몇 번을 말했어? 인간들 눈에 띄면 안 된다고 할머니랑 내가 여러 번 얘기했잖아. 큰바위에서 뛰놀지 말라고 한 것도 그 위에서 놀다가 잘못하면 떨어져서 다치니까 올라가지 말라고 한 거야.”
“그렇지만 재미있단 말이야.”
초아가 볼멘소리로 말대꾸를 하자 세리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서 살 수는 없어. 엄마가 어렸을 때도 그랬어. 할머니가 이것도 하지 마라, 저것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게 못마땅했지. 하지만 나이를 먹고 보니까 할머니는 다 우리를 지켜주려고 그렇게 했던 거였어. 엄마도 마찬가지야. 엄마는 네가 다치거나 나쁜 일을 당하는 게 싫어. 그래서 너에게도 할머니랑 똑같이 하는 거야. 그런데도 너는 자꾸만 말을 안 듣고 멋대로 굴잖니.”
이미 지겹도록 들은 말이었으나 하나도 틀린 구석이 없어 초아는 더 대꾸하지 못하고 입만 삐쭉 내밀었다. 세리는 초아가 자신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엄마도 더는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앞으로 밤에 이야기 안 들려줄 거야.”
세리가 벌을 내리자 초아는 울상이 되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세리는 붙잡지 않았다. 그도 벌을 주고 싶지는 않았으나 달리 방법이 없다고 여겼다. 초아가 나가고 밖에 있던 라미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괜찮니? 초아가 성이 많이 났던데.”
“앞으로 이야기 들려주지 않겠다고 했어.”
“그랬어?”
라미는 안타까웠으나 초아의 편을 들어주기에는 세리의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았다.
“을소에게 물어보니까 초아가 집에 안 가려고 해서 구슬리느라고 같이 거짓말을 해줬다더라. 너를 속이려고 한 건 아니었대.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을 받아 놓았으니까 너그러이 넘어가 줘.”
“휴……”
세리는 여전히 을소에게 화가 풀리지 않았으나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엄마 노릇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어. 언니는 어때? 도로는 말 잘 들어?”
“얘, 아이들은 다 똑같아. 우리는 어릴 때 어른들 말 잘 들었니? 너도 할머니 말 안 듣고 억지 부려서 초아를 데려왔잖아.”
“아니, 그건……”
정곡을 찔린 세리는 뭐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 저대로 내버려 둘 순 없잖아. 자칫하면 다치니까 큰바위 위에서 놀지 말라고 했던 건데, 말도 안 듣고 인간의 눈에 띄기까지 했어. 이러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
“네가 뭘 두려워하는지는 다 알아. 하지만 초아가 그렇게까지 땅 위에 가보고 싶어 하는 건 어쩌면 자기가 태어난 곳이라서가 아닐까? 몸이 물속에 있어도 자기도 모르게 땅에 끌리는 거지.”
“그럼 을소는? 을소도 땅으로 돌아가고 싶어 해?”
“글쎄,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는데……. 아유, 모르겠다. 네 말대로 엄마 노릇은 참 어려워. 아이들을 어디 가둬 놓을 수도 없고 답답하네.”
라미는 진저리를 내며 드러누워 버렸다. 세리도 그 옆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라미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비록 세리의 젖을 먹고 자라서 물속에서 인어들과 함께 살았어도, 초아는 본래 육지에서 태어난 인간이었다. 근본이 육지에 있으니 그곳에 이끌리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세리는 바로 그것이 두려웠다. 육지를 향한 초아의 동경과 호기심이 커질수록 자신으로부터 멀어질 것만 같았다.
초아는 멀리 나가지 않고 골짜기 초입에 있었다. 서운한 마음에 집을 뛰쳐나왔으나 막상 갈 곳이 없었다. 답답하기는 초아도 마찬가지였다. 매번 인간에게 잡아먹힌 인어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위험하다는 이유로 물 밖으로 못 나가게 하니 화도 나고 세리가 미워지려 하였다. 처음 만나본 인간은 참으로 친절하였고, 그가 준 음식처럼 육지는 신기한 것들투성이였다. 피부에 와닿지 않으니 정말 육지가 그토록 위험한 곳이 맞는지도 의심스러웠다. 그 탓에 호기심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여기 있었구나.”
어느 틈에 기리가 제자리에서 발장구를 치고 있는 초아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기리는 얼굴이 불만으로 가득 찬 초아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엄마에게 꾸지람을 들었구나. 그래서 입이 이렇게 튀어나왔니?”
기리가 장난스럽게 초아의 볼을 살짝 찔렀으나 초아는 전혀 웃지 않았다.
“엄마가 밤에 이야기 들려주지 않겠대요.”
“저런, 안 되었구나. 엄마가 성을 많이 내던?”
“저번만큼은 아니었어요.”
초아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아 기리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엄마가 밉니?”
“모르겠어요. 저도 성이 나긴 하는데 엄마가 미워서는 아닌 것 같아요.”
“그래? 성은 나는데 엄마가 밉지 않다면 우리 초아가 엄마 마음을 헤아리고 있다는 뜻이로구나. 엄마가 왜 땅 위로 못 올라가게 하는지 말이야.”
초아는 침묵으로 긍정하였다.
“그거 아니? 세리도 어렸을 때 너와 똑같았단다. 그러지 말라고 해도 날마다 물 밖으로 나가서 땅을 둘러보고는 하였지. 그뿐만 아니라 너와 처음 만났을 때 너를 집에 데려가겠다면서 버티기도 하였단다. 그때의 너는 물속에서 살 수 없었으니 내가 데려가지 말라고 하였는데도 말이지.”
“참말요?”
“그럼. 얼마나 속을 썩였는지 몰라. 너를 키우면서부터 철이 들었는지 더는 그런 일이 없었단다. 너를 지켜줘야 하니 더는 땅으로 올라가지 않기로 한 거지. 세리도 이제는 이 할머니 마음을 잘 알 거야.”
초아는 세리가 자신을 낳아준 어미가 아니라는 사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둘이 똑 닮았다는 말을 들으니 신기하면서도 기뻤다. 기리의 말을 듣고 나니 답답하고 못마땅하던 마음이 어느 정도 풀어졌다.
“오늘은 할머니랑 잘까?”
“아니요. 집으로 갈게요. 이젠 괜찮아요.”
기특하게도 초아는 어리광을 부리지 않았다. 기리는 환하게 웃으며 초아를 양팔로 꼭 안아주었다.
“그래, 착하기도 하지. 같이 갈까?”
“네, 할머니.”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꼭 말해주어야 한다?”
“네, 그럴게요.”
기리와 초아는 손을 잡고 함께 골짜기 아래로 내려갔다. 기리는 차츰 성숙해지는 초아가 대견스러웠다. 아무리 말썽꾸러기였어도 어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용어 해석>
고뿔 : 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