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혹은 노예 3

<반지의 제왕> 재개봉 기념 리뷰

by 어둠의 극락
2편에서 이어짐


일루바타르 창조한 아이누와 엘프, 인간, 그리고 그 외에 난쟁이와 호빗 같은 종족들 모두 자아 지닌 인격체이다. 탄생과 함께 형성되는 자아는 곧 이들의 정체성과 존재를 상징한다. 성장하면서 발전하고 머릿속에 자리 잡아 삶을 설계하는 스템의 역할도 한다. 그런데 육신과 달리 자아는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몸집이 커지면서 자아는 동물의 욕구와는 결이 다른 욕망을 생성한다. 식욕과 성욕은 비록 시간이 흘러 되살아나라도 해소가 가능 반면 자아실현 욕구는 한계를 모른다. 자아가 비대해지면 그를 충족하려는 욕망의 크기도 덩달아 커는 탓에 주변의 인정, 회적 지위와 명예, 권력 등에 집착하게 된다. 러다 보면 어느새 자아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간이 찾아온다. 것이 동물처럼 육신에 얽매이지도, 본능적인 욕구에 휘둘리지도 않는 이누 정신을 흐려 리석은 판단을 내리게 만들었다. 창조주에게 가장 많은 선물을 받은 피조물이며 열다섯 중에서도 으뜸이었던 발라 멜코르는 "아르다의 새 창조주 모르고스"의 자아에 집어삼켜지고 말았다. 절대 채워지지 않을 욕심을 채우 위해 창조주와 동족을 적으로 돌서 싸움과 파괴를 일삼, 아르다를 비추던 두 나무의 수액과 발리노르의 보물까지 먹어치워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진 웅골리안트에게 숨을 위협받는다. 아울레를 따르며 그에게서 얻은 지식으로 증기기관과 힘의 반지를 만들 만큼 똑똑하고 유능했던 마이아 마이론은 "가운데땅의 지배자 사우론"의 자아에 사로잡혀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발을 내디뎠다. 운데땅을 지배할 권력을 탐하여 스스로 만든 절대반지에 운명이 속박되어 반지가 파괴되면 모든 것을 잃는 처지가 되었고, 자신이 반지를 차지하여 가운데땅을 지배할 욕심을 품은 사루만과 신뢰할 수 없는 동맹을 맺는다. 둘은 끝없이 팽창하는 자아의 노예가 되어 제정신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럼 자아 매우 작거나 아예 없는 게 좋을까? 그렇지도 않다. 앞서 말한 대로 자아는 인간의 상징이다. 그것이 없으면 껍데기뿐이다. 루바타르의 선물인 죽음을 빼앗기고 사우론의 종이 되어 그가 시키는 대로만 하다가 최후까지 뒤따르는 나즈굴과 머리 위에 있던 조종수가 창을 맞고 떨어져 매달리면서 귀를 잡아당기자 그 방향으로 그대로 달려서 같은 편을 들이받고 쓰러지는 짐승 "올리펀트"처럼 스스로 아무것도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가 된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괴롭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자기애와 욕망의 노예, 자아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게 너무도 어렵다.

정녕 막을 수 없는 비극이었을까? 만일 멜코르가 일루바타르의 경고를 새겨듣고 멈추었다면 그의 만용을 용서받고 창조주의 가장 충직하고 아름다운 작품이자 모두에게 칭송받는 고귀한 발라로 살아갔을지 모른다. 사우론 욕심부리지 않고 아울레의 부하로 남았다면 영원히 후회할 결과를 가져올 일을 저지지 않을 것이다. 전능한 일루바타르 일찌감치 반란의 싹을 직접 잘라버렸다면 해결될 일이었다. 그러나 루바타르는 그러지 않았다. 는 되도록 아르다의 역사에 개입하지 않는다. 반지전쟁 시기에는 발로그를 처치하고 명이 다한 간달프를 부활시킨 것과 프로도의 손가락을 물어뜯어 기어이 반지를 빼앗은 골룸이 반지와 함께 용암으로 추락하도록 발을 헛디디게 만든 것이 전부이다. 만일 일루바타르가 완벽을 추구하며 모든 일을 직접 해결한다면 그도 모르고스, 사우론과 다를 바가 없다. 피조물들의 삶과 의지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원대한 창세를 위해 그는 뒤로 물러나서 피조물들이 스스로 선택한 길에 따르는 결과와 책임을 감당하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하도록 돕는다. 그리고 운명의 산에 도착해서 절대반지를 파괴하지 못하고 손가락에 끼워버린 프로도처럼 최선을 다하였음에도 극복하지 못할 위기에 놓였을 때 비로소 작은 자비를 베푼다. 그것이 창조주의 진정한 사랑이기에.

바닷물로 갈증을 해소하려 한 모르고스와 사우론의 삶에서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다른 아이누들도 마찬가지이다. 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우월한 존재들인데도 저마다 부족한 면을 보인다. 아울레는 자신의 지식을 전하고 멜코르에게 대항할 수 있는 종족을 원하여 직접 난쟁이를 만들었으나 이는 일루바타르의 계획에 없던 일이기에 질책을 받았다. 아울레가 용서를 구하며 제 손으로 난쟁이를 전부 죽이려 하자, 일루바타르는 멜코르의 오만과는 다른 아울레의 진심과 이미 생명이 깃들어 울부짖는 난쟁이들을 보고 그들의 존재를 허락하였다. 모르고스의 마지막 발악이었던 "분노의 전쟁"에 참전하여 선봉에 섰던 마이아 "에온웨"는 모르고스를 붙잡아 압송하고 사우론도 끌고 가려다 그가 용서를 빌며 애원하자, 심판할 권한도 없고 사우론이 진심으로 뉘우친다고 믿어 그를 놓아준다. 그 결과 사우론은 숨어서 또 다른 전쟁의 싹을 틔운다. 악을 억제하기 위해 발라들이 가운데땅으로 파견한 다섯 마이아 마법사 "이스타리"는 간달프를 제외하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자연에 묻혀 지내거나 사루만처럼 본분을 잊고 또 다른 악의 세력이 되어버린다. 인간처럼 이들도 완벽할 수 없었다. 모두 작품 밖 현실의 인간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탐욕에 눈이 멀어 삶을 지옥으로 만들거나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사공 없는 배처럼 물길 따라 떠다니는 어리석고 불쌍한 존재.


세상을 파괴하고 너무나 많은 생명을 빼앗은 거대한 악이지만 한편으로는 모르고스와 사우론이 가엽다. 버티지 못할 만큼 커져버린 자아가 설정한 목표를 좇던 그들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서야 멈추었다. 돌아갈 길을 끊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동안 그들은 한순간이라도 행복하였을까? 만일 목표를 이루었다면 만족하고 행복였을까?오히려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스스로 만든 지옥을 거쳐 목적지에 도착하면 또 하나의 지옥이 새로 시작될 뿐이다. 사우론과 절대반지처럼 나와 자아는 둘이면서 하나이다. 자아가 채운 목줄에 끌려다니다가 자승자박으로 삶을 끝낸 자들을 기억하며 주도권을 빼앗기지 말자. 어렵더라도 마지막까지 사명을 다한 간달프와 프로도처럼 포기하지 말자. 그러면 일루바타르의 자비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