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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하기에 위험하다

영화 <반지의 제왕> 삼부작 리뷰

by 어둠의 극락

판타지에 한 획을 그은, 가히 판타지의 성서라고도 할 수 있는 걸작이다. 나는 영화 전체보다는 영화 속 특정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나의 생각을 풀어 보고자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원작 소설과 세계관 전체를 서술한 <실마릴리온>을 인용하였다.


Bârî'n Khatarâd
Îdô Nidir nê
Nêpâm
nêd abârat
Dir nênâkham
Nêbâbitham ma
gâna nânê
Nêtab dâur...

"The Lords of Unending Life
Behold!
We the Nine
We take unto ourselves power
We are the Nine
We renounce our Maker
We cling, We take
We cleave the darkness..."

무한한 삶의 군주들.
보라!
우리 아홉을.
우리는 스스로 힘을 취한다.
우리는 아홉이다.
우리는 우리의 조물주를 부정한다.
우리는 집착한다. 우리는 쟁취한다.
우리는 어둠을 가른다.


(영화에서 나즈굴이 등장할 때 나오는 음악에 삽입된 가사이다.)


선물의 군주 "안나타르"는 가운데땅의 엘프들에게 "힘의 반지"를 만드는 기술을 전수해 준다. 반지들은 엘프에게는 세 개, 난쟁이에게는 일곱 개, 그리고 인간에게는 아홉 개가 각각 주어진다. 이 반지들은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 모든 것이 시들고 사라지는 가운데땅에서 엘프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그들의 영원한 삶을 함께하도록 도와주었고, 멸의 존재들에게는 수명을 늘려주어 오랜 세월 동안 부와 권력을 쌓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이는 함정이었다. 안나타르의 정체는 한때 창조주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몰락한 "모르고스"의 부하였던 사우론이었다. 그는 주인이 패망한 후 자신이 가운데땅을 지배할 목적으로 여러 종족을 반지의 힘으로 현혹한 것이었다. 리고 모든 힘의 반지들을 지배할 절대반지를 운명의 산에서 제작한다. 엘프들은 그 진실을 깨닫고 저항하였으나, 탐욕스러운 난쟁이와 인간은 반지의 영향으로 더욱 커진 욕망 탓에 멸의 길로 향하고 만다.

인간은 쉽게 반지의 힘에 사로잡혔고, 절대반지로 모든 반지를 불러들여 그것을 가진 종족들을 종시려는 사우론의 계략에 넘어간다. 들은 어둠에 잠식되어 자아와 육신을 잃고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반지악령, 나즈굴이 되어버린다. 자유와 의지마저 빼앗긴 그들은 사우론의 노예가 되어 가운데땅의 여러 왕국과 종족들을 짓밟는다. 그러나 사우론은 프와 반지의 힘에 굴복하지 않은 인간의 동맹으로 육신과 절대반지를 잃고 패배한다. 이후 나즈굴은 다시 세력을 결집하고 사우론을 부활시키려 절대반지를 찾아 나선다. 절대반지는 사우론이 온 힘을 쏟아부어 만드느라 자신의 운명까지 반지에 종속되었기에 반드시 되찾아야만 하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들은 주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였다. 말을 타고도 두 발로 도망치는 주인공 "프로도" 일행을 강가에서 놓치고, 일행이 아간 여관에서 "아라고른"(사우론을 패망시키고 전사한 인간 왕 "엘렌딜"의 후손)의 계책으로 호빗들이 누워있는 것처럼 위장한 빈 침대만 칼로 찔러대다가 프로도를 또 놓친다. 그래도 추격을 멈추지 않고 결국 일행을 찾아내어 프로도를 단검으로 찌르고 반지를 빼앗으려던 찰나 아라고른에게 퇴치당한다(다섯 명이 한 명을 못 당하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다).

그러고도 포기하지 않고 단검의 독으로 인해 악령으로 변해가는 프로도를 피신시키는 엘프 "아르웬"을 뒤쫓으나, 강에서 엘프의 마법으로 일으킨 파도에 휩쓸려 사라진다(원작에서는 글로르핀델이라는 남자 엘프).

을 수 없는 악령이기에 말만 잃고 돌아온 나즈굴은 거대한 날짐승을 타고 다시 등장하여 추적을 이어나간다. 한편으로는 마지막 남은 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사우론의 군대를 지휘하여 엘렌딜과 그의 아들들이 통치하던 곤도르 왕국을 공격한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반지를 찾지도, 전투에서 승리하지도 못하고 절대반지가 파괴되면서 사우론과 함께 소멸하고 만다.

원작에서는 나즈굴의 행적이 더 초라하다. 반지를 추적하다가 귀찮게 하지 말라며 위협하는 호빗 농부에게 쫓겨나거나, 법사 "간달프"를 공격했다가 아홉 명이 간달프 한 명을 이기지 못하고 퇴한다(간달프는 사우론과 동급의 존재). 안쓰러울 지경이다. 아무리 사악한 악령이 되었어도 결국 본질이 인간이기에 이런 모습을 보인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공포스러운 외형과 존재감에도 이들이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두건 아래 본모습을 잃고 그 자리를 대신 채운 어둠. 삶을 빼앗기고 죽음도 허락받지 못한 비참함 표출지 모든 살아 숨 쉬는 것들의 영혼을 갈가리 찢어버릴 듯한 비명소리. 그럼에도 들은 인간이었다. 때는 위대한 군주들이었으나 욕망 씌운 멍에로 악의 꼭두각시가 되어 악행을 저지르다가 내 몰락하고 마는 안타까운 존재.

인간은 나약하다. 나약하기에 쉽게 욕망에 휘둘리고 이성을 잃는다. 그리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아르웬의 아버지 "엘론드"는 인간 때문에 반지가 존속한다며 일갈한다.는 운명의 산에서 엘렌딜의 아들 "이실두르"가 사우론의 손에서 잘라낸 절대반지를 파괴하길 거부하고 신이 차지는 광경을 목격하였. 이실두르는 오크들의 기습을 피해 강에 뛰어들었다가 반지의 배신으로 위치를 들켜 살해당한다. 프로도 또한 같은 장소에서 반지를 파괴하지 못하고 자신의 손가락에 끼우고 만다. 프로도는 반지를 빼앗으려는 골룸에게 손가락을 잃고 여정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다가 가운데땅을 떠나 엘프와 신들의 땅 발리노르로 향한다. 반지 대한 집착으로 몸싸움 끝에 함께 낚시하던 사촌을 살해고 500년이 넘는 세월을 죽지도 못하고 살아있가 반지와 함께 용암에 빠지는 최후를 맞는 스미골/골룸의 처지는 말할 것도 없다.

판타지 소설도 결국은 현실을 기반으로 쓰인다. 금빛으로 빛나는 작은 반지의 유혹으로 인해 스미골이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낚시하던 평화로운 강은 한순간에 살육의 현장과 전쟁의 도화선으로 변하였다. 욕심 없이 소박하게 살며 악에 대한 강한 저항력을 타고난 호빗들조차 버티지 못하는 절대반지와 같은 력한 유혹은 현실에도 충분히 존재한다. 고난 높은 지능으로 인류가 창조한 수많은 것들이 우리의 욕망을 자극한다. 한 번 사로잡히면 나도 모르게 되돌아갈 수 없는 탐욕의 길로 끌려 들어간다. 무리 자신을 돌아보고 경계하더라도 탐욕은 아주 미세한 틈새로도 파고든다. 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자신이 우월하고 강인한 존재라는 믿음과 동물의 본성이 부딪혀 일으키는 괴리로 평생 고통받아야 하는 삶. 지금도 누군가는 이미 나즈굴의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고 있을지 모른다.



이미지 출처 - 영화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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