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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뚜벅 Aug 20. 2021

하늘과 바다 사이, 친퀘테레 포도밭

포도밭이 더 감동적인 이유

친퀘테레는 ‘다섯 땅’이란 뜻이다. 몬테로소 알 마레, 베르나차, 코르닐리아,  마나롤라, 리오마조레 등 이탈리아 리비에라 다섯 마을이 그곳이다. 해안을 따라 18Km 정도 이어진 바닷가 마을인데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코발트 빛 해변과 알록달록한 파스텔톤 집들에 구불구불한 오솔길 산책로 등 여길 찾아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하지만 어쩌면 친퀘테레에서 더 눈길을 줘야 하는 곳은 '포도밭'이 아닐까? 관광객들의 눈길은 잘 미치지 않지만 포도밭은 이곳 친퀘테레가 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데 당연히 한몫을 하기까지 했다. '인간과 자연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인 이 동네의 상징? 난 누가 뭐래도 포도밭을 꼽겠다.

바닷가에 사람이 산 건 아주 오래전부터지만 특히 몬테로소는 643년 경 언덕 위에 살던 이들이 해안가로 쫓겨오면서 만들어진 마을로 추정된다. 리오마조레 역시 8세기경 비잔티움의 박해를 피해 도망친 그리스인들이 정착해 만든 마을이다.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모여서 정착한, 한 마디로 이탈리아의 ‘땅끝’이다.

하지만 이들을 맞은 건 척박한 땅이었다. 농사에 좋은 환경도 아니었다. 딱 봐도 평지가 아니라 산비탈이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 같은 포도 농사가 가능했을까? 암벽들로 가득 찬 땅에서. 그 비밀은 바로 ‘돌담’에 있다. 계단식으로 밭을 만들 때 돌담은 흙이 무너지지 않게 버티는 역할을 했다. 덕분에 포도 농사가 가능해졌고 와인도 만들 수 있게 됐다. 전체 5600Km 정도의 돌담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흙이 무너지지 않게 돌담을 쌓은 구간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돌담을 먼저 쌓고 새로 생긴 공간에다 흙을 퍼다 메워 밭을 만든 구간도 존재한다. 암벽 위로 돌담을 쌓고 공간을 만든 다음에 흙을 퍼 나른 것이다. 흙을 담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비탈을 거슬러 오르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왠지 모를 경외감까지 든다. 무슨 기계나 차량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시대였다. 주민들은 한 뼘 한 뼘 그렇게 밭을 만들었다. 묵묵히 땀으로 일궈 온 친퀘테레 포도밭, 절벽을 깎아 이들은 삶터를 일군 셈이다. 이곳에 모노레일이 설치된 건 그 후 70년대의 일이다.

게다가 이곳은 바닷가다. 무슨 얘기냐면 태풍이라도 몰아치면 포도밭은 쑥대밭이 되기 일쑤였다는 얘기다. 순식간에 포도 농사를 망쳤고 밭은 무너져 내렸다. 굵은 비에도 속절없이 돌담이 무너졌고 비탈길엔 산사태가 났다. 그렇게 한 해 포도 농사를 망치는 일은 자주 일어났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곳 사람들은 다시 돌담을 쌓았고 흙을 정비했고 포도 농사를 이어갔다. 그래서 이탈리아인들은 이곳 친퀘테레의 포도 농사를 ‘영웅적 포도 농사’라고 부른다.


이곳 와인의 품질은 프란치스코 교황 취임식 때 공식 와인으로 쓰이면서 더욱 인정받았다. ‘교황의 와인’이 된 것이다. 값비싼 와인 대신 거친 환경을 해쳐 나온 와인을 선택한 게 참으로 교황님 답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지금이 더 문제다. 무너져 내린 돌담을 복구하는 게 힘겨워서다. 영세한 농민들에겐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드는 일이다. 그래서 그냥 두는 경우도 많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무너져가는 돌담들이 보인다. 최근엔 기상 이변까지 잦아져 걱정이다. 2019년 가을 폭풍이 몰아쳤을 때도 타격이 꽤 컸다. 이런 식으로 돌담이 무너지면 포도 농사도 사라질 것이다. 그럼 친퀘테레도 사라질까? 생명력 때문에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다섯 마을의 이야기다.

사진은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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