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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뚜벅 Jun 03. 2022

한국 추상화가 유영국

복잡한 세상이라설까? 점점 추상화가 마음을 두드린다. 이건희 컬렉션을 볼 때도 마찬 가지였다. 많은 작품들이 물론 좋았지만 흥미롭게도 유영국의 작품이 마음 속에 오래 남았다. 산을 그린 추상화였다. 내친 김에 국제갤러리의 유영국 전까지 찾았다. 올 여름 제일 잘 한 일 중 하나다. 그리고 국제갤러리에서 본 소묘 덕분에 언뜻 보면 간단한 삼각형으로 보이는 저 구도가 엄청난 고민의 산물임을 알게 됐다. 단순화시켜 정수만 남은 산의 모습이 왜 마음을 두드리는 걸까? 색감 때문이었을까?


작가의 말에 비밀이 담겨있다.


"색채란 써보면 참 재미있는 거요. 옆에 어떤 색을 가져와야 이 색도 살고 또 이 색도 살고. 그림이란 게 그래요. 음악의 경우에 심포니 같은 걸 들으면, 멜로디가 흐르다가 갑자기 '자자자 잔' 하지요. 그림도 이렇게 보는 사람에게 자극을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림은 시각예술이니까 입하고 귀하고는 상관없고, 그러면 색은 필요한 겁니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색채는 균형과 하모니를 이루도록 구성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주 세밀하게 계산을 해낼 수는 없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음과 음이 붙어 멜로디와 하모니를 만들 듯 색과 색이 만나 머릿속에서 리듬감을 만드는 것이다. 한 색 옆에 어떤 색을 두느냐에 따라 산이 주는 느낌은 달라진다. 고요한 산, 포효하는 산, 치솟는 울분이 느껴지는 산, 어둠이 깔려 침잠하는 산, 아련한 추억 같은 산. 모두 가능하다. 게다가 이게 모두 한국의 산이다.


이 대목에서 작가 유영국을 보며 세잔이 떠올랐다. 세잔 역시 말년에 고향 엑상 프로방스로 돌아가 생트 빅트와르 산을 그리고 또 그렸다. 그렇게 87편의 연작이 탄생했다. 그가 그린 산의 이미지는 나중엔 점차 추상의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빛이 만드는 파편의 이미지로 산을 그렸기 때문이다.   

유영국의 그림 인생은 경성제2고등보통학교에서 출발한다. 거기서 미술교사 사토 쿠니오를 만나 미술을 배웠고 일본으로 유학까지 가게 된다. 유명한 분들을 보면 대가로 크기 전에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데, 유영국의 입학 동기 중엔 장욱진도 있었다. <나룻배> 작품으로 유명한 분이다. 유학을 하면서 처음 추상미술을 접했고 이게 평생의 업이 됐다.  


흥미로운 건 43년 귀국한 후엔 고향 울진에서 고기잡이 배를 타며 생계를 유지했다는 점이다. 원래 울진에서 잘 살던 집안이었다는 점과 화가로선 생계가 유지되지 않는 등등 여러 이유가 있었을 텐데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게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소주 사업에 뛰어들기도 한 것도 이채롭다. 망향이란 브랜드로 소주를 만들었다는데 전쟁 통에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이름이다. 소주병 라벨도 직접 디자인했다고 하지만 유영국의 인생에서 이때는 ‘잃어버린 10년’으로 얘기된다. 그림보다는 생업에 몰두했던 시기였다.      

그리고 55년부터 다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이 시작된다. 이때가 한국적인 추상미술이 만들어지는 시기로 읽힌다. 자연을 단순화시켜 원과 삼각형으로 표현했다. 색감의 깊이를 통해 원근을 만들고 대비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색의 차갑기와 따뜻함으로 원근을 만들기도 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다. 무겁게 가라앉은 색 위로 밝게 빛나는 색의 원색적 대비는 사람들 마음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작가가 심포니의 '자자자 잔'이라 표현했던 감동처럼. 그래서 추상미술임에도 그림은 늘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당시에 대해 부인 김기순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계처럼 그림을 그렸다’고 증언한다. 아침 8시 반에 화실로 가 붓을 들었고 점심과 저녁 시간을 빼면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영국은 생전에 ‘내 그림은 내 살아생전에는 팔리지 않아’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추상미술이 익숙하지 않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런데 삼성 이병철 회장이 75년에 첫 구매자가 됐다고 한다. 지금 이건희 전에서 그의 작품을 만나게 된 이유다.  그리고 역시 드러나지 않지만 생업을 꾸려나갔을 부인의 노고가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가 남긴 말 중 또 하나 유명한 말이 있다.


“바라볼 때마다 변하는 것이 산이다.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다”란 말이다.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내가 느낀 산을 그린다는 말. 그래설까? 나이가 들면서 그의 산도 점점 더 부드럽게 평화로운 모습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그가 그린 마지막 작품에서 산은 극도의 단순화를 통해 상승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전쟁을 겪고 가난에 시달렸으며 62세에 시작된 병으로 25년 투병 생활을 해야 했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삶이 느껴져 숙연해진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그림을 그릴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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