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베데레 궁을 찾은 건 100% 클림트 때문이었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비엔나, 당연히 클림트의 키스를 다시 보고 싶었다. 처음 키스란 작품을 보던 순간은 잊을 수 없다. 금장식, 빛의 조화에다 색감, 그리고 마침 그 방에서 혼자서 볼 수 있었던 순간까지 겹쳐 지금도 잊지 못할 감동을 줬다. 거기에다 벨베데레는 처음으로 에곤 쉴레의 천재성을 느꼈던 공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여행의 순간에서 중요한 건, 매번 느끼지만 타이밍이다. 그걸 다시 확인했다. 벨베데레 상궁에서 클림트의 키스는 여전히 주목도 높게 전시돼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큰 감흥이 일지 않았다. 작품 감상을 방해한 건 무엇보다 인파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키스를 보려고 몰려들었고 작품 앞에서 사진 촬영에 한창이기까지 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줄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결국 먼발치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본 키스는 그냥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효과 말고는 큰 감흥이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벨베데레 궁의 다른 미술 작품들을 하나씩 보러 다녔다. 다행히 대부분 다른 방들은 한적했다. 그러던 중 한 작품 앞에서 내 발은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작품의 제목은 아마도 <가난> 정도였을 것이다. 처음 작품을 봤을 때는 아이가 밝은 빛을 받는 곳에 평화롭게 누워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바닥에 그 아이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성이 지쳐 쓰러져 있었다. 마치 관객을 쳐다보는 모습으로. 더 자세히 보니 숨져있는 듯 숨소리조차 전달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건 정말 지독한 가난의 모습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문득 나이가 들어 눈물이 많아졌나 싶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내 눈물의 이유는 큐레이터 때문이었다. 그 방의 대부분의 그림은 따사로운 햇살 속에 활짝 웃는 4인 가족 등 가정의 평화로움을 담은 그림들이었다. 그런 그림들을 감상하다가 이 작품을 봤으니 강렬한 대비 효과에 나도 모르게 작품이 주는 메시지에 몰입했던 것이다. 큐레이터의 의도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한 방 먹은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의 모든 작품들이 걸려 있는 방식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앞 방에서 클림트의 여성 전신상 작품도 방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눈이 가서 한참을 봤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 역시 큐레이터의 전시 방식 때문이었다. 4명의 여성 전신상 그림이 있었는데 흥미롭게도 왼편의 두 여성들의 시선은 오른편을, 그리고 오른편 작품의 여성의 시선은 왼편을 향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 클림트의 작품이 있었던 것이다. 큐레이터의 이런 의도 때문에 방에 들어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클림트 작품으로 눈길이 간 것이다. 게다가 흰색과 검은색의 대비까지. 또 한 번 벨베데레 미술관 전시실의 큐레이터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마침 시간이 남아 평소엔 건너뛰던 한 층 위의 작품들까지 감상했다. 현대 작품 위주라 난해하기도 하고, 워낙에 유명한 작품들이 아래층에 몰려있다 보니 평소엔 잘 안 가던 곳이다. 그러던 중 군데군데 현대 작품들 속에 에곤 쉴레의 작품이 끼어있었다. 역시 큐레이터의 웃음이 보이는 듯했다. 에곤 쉴레는 과거가 아니라 현대를 연 작가라는 큐레이터의 혼잣말.
미술 문외한의 입장에서 큐레이터의 의도를 대화하듯 찾아가는 재미, 그게 어쩌면 이번 벨베데레 방문의 성과였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네덜란드나 오스트리아는 상업적 전시의 전형을 미술관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누구나 좋아할 만한 명화들은 한 공간에 모아놓는다. 덕분에 한 방에서 즐길 수 있게 된다. 빈 미술사 박물관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 피테르 브뢰헬의 작품을 한 방에 몰아넣고 전시해 관람 편의성과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앞서 나를 눈물 나게 했던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이름은 발트뮐러였다. 오스트리아의 화가인데 예술 문외한인 나한테는 낯선 이름이지만 오스트리아에선 국민 화가급이었다. 그러데 놀라운 일은 또 일어났다. 그렇게 가난이란 작품에 한 방 먹은 느낌으로 다른 방을 지나가는데 또 한 그림 앞에서 발길이 자연스럽게 멈췄다.
아이들에게 성 축일에 꽃을 나눠주는 행복한 그림이었다. 그런데 두 명의 아이는 뭔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소녀는 눈물짓고 소년 한 명은 꽃을 받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그림이었다. 내가 제목을 붙인다면 소외쯤 되지 않을까 싶었다. 놀라운 건 같은 작가의 그림이었다는 점이다. 그러고 나서는 방을 돌며 일부러 작가들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감상했다. 그러다 발트뮐러의 자화상 그림을 찾았다.
배경이 따로 놀지 않고 얼굴에 비치는 빛의 효과로 마치 야외에서 자신의 모습을 그린듯한 작품이었다. 역시 시대 배경을 생각하면 혁신적인 방식이다. 나중에 귀국하면 이 작가를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는데 아직 그렇게까진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이 무뎌지기 전에 그날 벨베데레에선 만난 한 미술가의 이야기는 남겨놓고 싶어서 끄적여봤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벨베데레궁에서 만난 발트뮐러와 이름 모를 큐레이터에 대한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