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단 한 번도 소설을 써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정신건강간호사 수련을 마치면서 뭔가 새로운 것을 도전하기 위해 소설 쓰기를 해보았다. 하지만 글 쓰는 것을 배워본 적이 없는 나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조차 감이 잡히지 않아 한 페이지에서 두 페이지를 겨우 끄적거리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글쓰기 책을 봐도 '사소한 것이라도 써봐라', 혹은 '일상에서 영감을 얻어라'와 같은 조언뿐이었다.
'와. 글 쓰는 것이 정말 어려운 것이구나.'
나는 글쓰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일지 몸소 체험하는 느낌이었다. 소설 쓰기를 도전하기 전까지는 나는 나름 상상력이 풍부하고 잡생각이 많아 글을 쓰면 후루룩 써버리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는 크나큰 나만의 착각이었다.
도저히 이대로 가다간 진척 없이 끝날 것 같아 조금이라도 써보는 연습을 하기 위해 글쓰기 강좌를 열심히 찾아보았다. 하지만 이름 있는 글쓰기 강좌들은 오프라인으로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나가서 들어야만 했고, 삼 교대를 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참여할 수가 없었다. 상심하고 있던 터에 어떤 강좌는 줌을 통해서 하는 것이 가능했고, 참여를 못하면 일주일 전에만 말하면 이메일로 강의를 보내준다는 글을 보고 '이거다'싶어 바로 등록하였다.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지만 '한번쯤은 어때'라는 마음으로 강좌를 등록하였다. 몇 주 간 8~10명의 수강생이 강의를 듣고, 피드백을 받고 합평을 하며 13페이지 이하의 글을 작성한 뒤 글을 엮어 책 한 권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정말 독특한 강좌였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나는 줌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질문을 받으면 각자의 생각과 의견을 말하는 시간이 곤혹스러웠다. 물론 삼교대로 시간이 안 맞을 때가 많았지만(조금은 변명이기도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강의를 들었다.
각 주마다 내가 2~3페이지가량 소설을 채워 넣고 강사분께 피드백을 받았는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라고 생각했지만 피드백 내용을 보고는 내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이고 엉터리로 글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너무나도 부끄러웠고 '역시 나는 작가가 되려면 멀었구나'를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좋은 직장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금방 퇴사하고 이후로 계속해서 취업 시장에 밀리며, 어머니의 암 소식까지 들은 우울증 환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글을 썼다. 물론 내가 지금까지 정신과 간호사로 일을 하며 보았던 여러 환자들을 모티브로 하기도 했다.
나는 간호사로 일을 할 때 가끔은 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젊은 환자인데 왜 새롭게 도전하지 않고 이렇게 우울해하고만 있지'라는 생각 혹은 '왜 자꾸 먹은 것을 억지로 토하지?' 등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지고 일을 할 때가 많았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우울증을 겪는 주인공이 되어 얼마나 암담하고 괴로운 지 조금은 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원래 나는 글을 우울하게 시작해서 우울하게 끝내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증상이 좋아져서 퇴원하는 환자들을 보고 처음에는 기뻤지만 같은 이유로 다시 증상이 재발하여 재 입원하는 경우를 여럿 보았기 때문이다. 증상이 좋아지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고, 본인이 얼마나 많이 노력해야 하는지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우울증을 겪는 주인공이 13페이지라는 짧은 글 속에서 치료를 받고 금방 나아서 일상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았다는 글을 쓰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사님께서는 '글이 계속해서 주인공의 내면에만 집중하는 것 같네요. 외부로 끌어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계속해서 우울한 상황만 연출되는 것 같습니다.'의 피드백을 해주셨기에 마지막에는 주인공이 히키코모리에서 밖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는지 써보았다.
나는 '이건 현실과 동 떨어진 이야기 같습니다. 갑자기 이러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은 억지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등과 같은 피드백을 받고 수정을 하기 시작했다.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그 상황은 사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내용이었으나 현실이 얼마나 극악스럽고 미쳐 돌아가는지, 보통 사람들이 들으면 얼마나 경악을 금치 못할 만한 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한 피드백을 받으며 나는 조금 실소를 내보였다. '그래. 이게 실화라니. 나도 믿기지 않는다.' 그 믿을 수 없는 내용은 50세인 미혼인 여자가 암 말기에 걸려 가족같이 끔찍이 아끼는 강아지를 친오빠가 '동생은 곧 죽을 테니 이 강아지는 키울 사람이 없다'라고 판단하여 안락사시켰다는 내용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여자는 충격을 먹어 그 자리에서 혼절하였다. 이 이야기는 사실 지인의 이야기라 처음 들었을 때 '그 오빠는 사이코패스 아니야? 동생이 아직 멀쩡히 살아있는데 어떻게 동생의 사랑하는 강아지를 그렇게 잔인하게 안락사시켜 놓을 수가 있지?'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당연히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강사님께서는 너무나도 억지스러운 설정이라고 생각하셨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든 몇 주간의 강의 끝에 나는 13페이지의 단편 소설을 마무리했다.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어찌 되었든 글을 마무리해 보았다는 사실에 나는 너무나도 기뻤다. 내가 하나의 세상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지만 나만의 소중한 세상.
결코 쉽지 않았고 글을 쓰는 모든 작가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뿐이다. 앞으로도 글을 써보고 싶다. 나만의 세상을 마구마구 만들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