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좋은 간호사

by 이연

“너 책 좀 그만 읽고 피아노 연습이나 마저 해! “


한 손은 피아노 건반 위에 얹어두고 다른 한 손은 피아노 건반 아래로 동화책을 읽고 있는 나였다.

피아노 소리가 끊기자 이상함에 나를 보러 온 어머니는 나의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며 책을 빼앗아 버렸다. 나는 피아노 치는 것이 싫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어머니 밑에서 음악과 거리가 먼 나를 어떻게든 음악가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나는 더 반항기가 심해졌다. 물론, 이제 막 초등학교를 들어간 나는 독서광인 아버지 덕에 집 안에 도서관처럼 많은 책이 있었기에 다양한 책을 접할 기회가 많아 자연스레 독서를 좋아하게 되었다.


수능 준비를 위해 공부를 하던 고등학생 시절 나는 짧은 글이라도 시나 소설이 나오면 동태눈을 하고 있다가도 금세 생기가 돌았다.

‘수능 끝나면 꼭 고전, 근대, 현대 문학 책을 읽어봐야지! “

나는 다짐했으나 수능이 끝나자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성인을 맞이하며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에 바빠 그 생각은 점차 잊혀갔다.


간호학과를 들어가면서부턴 전공에 치이고 병원 실습, 미국 교환학생, 스펙 쌓기를 하며 친구들과 놀기도 열심히 놀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전공책 외에는 독서와는 거리가 확연히 멀어졌다. 마음의 양식? 나는 당장의 스트레스를 풀며 취업을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몸은 고되지고 정신은 허해지기 시작했다. 졸업을 하고 나서는 취업을 했고, 대학병원에서 일을 하며 나의 정신은 스트레스로 좀 먹기 시작하여 사직을 하였다.

‘다시는 임상에 가지 않을 거야.‘

스무 살 중반 나는 간호직 공무원에 도전하게 되었고, 그때 다시 중고등학생 때 보던 문학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이상한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잊고 있었던 소설과 시들을 보며 옛 친구를 재회하는 기분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공무원 시험에 낙방하고 나서, 나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짧은 공백기를 가지게 되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치고 소진된 나 자신을 채워줄 것은 그 무엇도 없었다. 그때 힘들어하던 나를 위해 어머니는 책 몇 권을 추천해 주었다. 평소 백화점에서 하는 강연을 방청하러 다니시던 어머니는 강연을 듣고 좋은 책이 있으면 내게 추천해주기도 했다. 평소였다면 흘려들었을 어머니의 말을 그 당시에 나는 실제로 책을 사서 읽어보았다.

처음 독서를 다시 하려니 너무나도 힘들었다. 내가 난독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글일 읽기 힘들었고, 매일 SNS에서 짧은 글이나 영상만 보던 내가 긴 글을 읽으려니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놓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읽고 덮더라도 꾸준히 보려 했다. 이상했다. 어릴 때 백과사전 만한 소설책도 몇 시간 동안 틀어박혀 후루룩 읽으며 즐겨했는데, 성인이 되니깐 왜 나아지지 못하고 퇴보하였는가. 스스로한테 짜증도 나고 답답함도 느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자 나는 조금씩 독서하는 취미를 다시 가지게 되었다. 책방에 가서 책 냄새를 맡으며 책을 사는 것은 나를 다시금 설레게 하였다. 자주는 아니지만 꾸준히 독서를 하기 시작했다.


독서를 하다 보니 나 스스로와 대화를 많이 하기 시작했다. 장면을 연상하기도 하며, 책에 대한 내 생각을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게 했다. 이 모든 것들이 쌓이면서 나는 더 큰 답답함을 느꼈고, 결국엔 이 답답함이 커져 글을 쓰며 표출하기 시작했다. 글을 쓴다 하지만 장황한 것이 아니었다.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독후감인지 일기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막 뱉어내었다. 조금씩 마음속에 막혀있던 무언가가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스무 살 후반이 되어 정신과 간호사의 길을 택하면서 나는 정신과 환자들을 접할 일이 많았다. 그들과 대화하면서 정신과 간호사가 되기 전에는 느끼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게 되면서 내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병원을 나갈 수 있을까?

그들은 무슨 죄가 있어 이 병원에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 삶을 살게 되었을까?

정신질환을 앓고 회복된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가족들에게 버림받아 다른 환우들에게 의지하는 그들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정신질환이 무엇이길래?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며 나를 괴롭혔고, 그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어디에 글을 써볼까 하다 우연히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었고, 남이 나의 글을 보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웠지만 용기를 내었다. 부족한 나의 글을 과연 보는 사람이나 있을까 싶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저 ‘나‘를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었으니깐.

그렇게 가끔 글을 작성하여 브런치에 글을 올리게 되었고, 벌써 3년이 지나게 된 것 같다. 3년 가까이 글을 쓰다 보니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평소 지나쳤을 일들을 자세히 보게 되었고,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게 되었다. 무작정 떠오르는 대로 글을 쓰다 보니 답답함도 사라지게 되었다.


타이핑하는 소리도 좋고, 내 안에 혼자서만 간직해 오던 생각을 글로 표현해 보니 생각 정리도 되었다. 어느샌가 나는 독서를 시작으로 자연스레 글쓰기라는 취미까지 생겨버린 것이다. 주변 친구들 중에 독서나 글쓰기의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다들 나를 보고 ‘특이하다 ‘라는 말을 많이 했다. 독서와 글쓰기의 취미를 신기하다고 하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되려 그들이 신기해졌다.

‘그럼 너는 어떻게 생각을 정리하고 어디서 흥미를 얻어?‘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어하며 나도 더 이상 친구들에게 독서와 글쓰기를 추천하지 않게 되었지만 함께 공유할 사람이 없어 슬프긴 했다. 내향형이라 독서 모임이나 글쓰기 모임을 가입하여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시도하지 못했다. 모임을 가지게 된다면 많은 정보를 얻을 기회가 생기겠지만 어차피 독서와 글쓰기는 혼자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어찌 되었든 독서와 글쓰기를 하며 간호사에서 나중에는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자연스럽게 품게 되었다. 앞으로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뭐든 즐기는 자를 이길 자는 없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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