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을 거닐며

by 이연

오랜만에 서촌을 왔다.


서촌은 옛 한옥 건물과 현대 건물이 잘 어우러져 공존해 있다. 서울 곳곳을 탐방하며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도 서울은 복잡하고 사람이 많다는 생각에 미리 갈 카페와 음식점을 알아 놓고 간다. 하지만 주말이면 기본적으로 웨이팅이 길어 미리 알아봤다고 한들 다른 곳을 가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아쉬운 마음에 들어가지 못하는 카페의 앞 문을 향해 불쌍한 강아지 마냥 긴 시선을 두고 서성거리다 떠나야 한다. 평일이면 말이 달라진다. 주말에 갔을 때는 발도 들이지 못하는 카페에 좋은 자리를 선점하여 차지할 수 있다. (직장인들이 테이크아웃을 많이 해가는 카페가 아니라면 가능하다.)


서촌은 경복궁역에 내려서 여러 골목들을 굽이굽이 따라가다 보면 막힌 길이 나올 때도, 예상치 못한 멋스러운 한옥집이 나오기도 한다. 어떤 골목들은 돌담길로 되어있고 벽은 울긋불긋한 벽돌로 이루어져있기도 하다. 정갈한 돌들의 배열과 무질서하게 배치되어 있는 돌들이 같은 공간을 이루고 있는데, 이 모습이 이상하게도 조화로워 보이며 예스러운 느낌을 한층 더 극대화시켜 준다. 길을 걷다 보니 햇볕이 돌담길을 따스하게 비추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지나 까맣게 물든 벽돌과 울긋불긋한 빛바랜 벽돌로 이루어진 벽을 따라 자연스레 길을 걷다 보니 이 추운 날씨에도 푸른 초록빛을 띠며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잎사귀들이 삐죽삐죽 나와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사이로 주홍색을 띠는 꽃들이 군데군데 피어있는데, 이 모습이 서촌 골목과 썩 잘 어울려있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기왓장이 촘촘하게 올려져 있는 한옥집이 보인다. 기왓장 위를 살펴보니 갈색 잡초들이 빼꼼하고 기왓장 사이마다 엉성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저기서 잡초가 자랄 수가 있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고동색의 나이테가 보이는 세월을 맞은 문은 니스칠을 해놓은 것인지 멋스럽게 번쩍거리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정갈하게 밝은 회색의 둥근돌들이 견고하게 한옥벽을 이루고 있고 역시나 한옥 집 입구 안 쪽에도 알 수 없는 긴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이곳이 실제 가정집인지, 무얼 하는 곳인지는 모르나 골목마다 예상치 못하게 한옥들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먼저 꺼내 들고 우아하고 입을 떡하니 벌리며 셔터질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무언가 부끄러운 마음에 사람들이 지나가면 후다닥 휴대폰을 주머니 속으로 구겨 넣었으나, 그 사람들 마저 다들 한옥 집에 멈춰서 감탄을 한 뒤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어 보이는 모습에 '역시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배실배실 웃어 보인다.


서촌을 여러 번 와 봤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나는 서촌을 잘 모르는 게 맞는 것 같다. 나는 낯선 동네를 탐방하며 노트북 하나만 들고 독서를 하는 취미가 있는데, 한 번은 서촌의 매력에 빠져 가끔씩 와 보곤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낯선 골목과 낯선 풍경을 마주하곤 한다. 그럴 때에는 나는 조용히 그 길을 멈춰 서서 풍경을 조심스레 음미해 보곤 한다. 지나가는 사람이 많을 때에는 뻘쭘하지만, 비교적 평일에는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기에 나에게는 딱이었다. 서촌은 북촌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예전에 서촌을 몰랐을 때에는 북촌 동네를 좋아했다. 처음 북촌을 갔을 때는 고등학생이었다. 우연히 부모님과 함께 지나갔던 북촌. 특이하게 영어 이름의 카페도 한글 간판으로 되어있는 인사동은 다른 서울 지역과는 다르게 우리나라의 예스러움이 잘 묻어나있다고 생각이 들게 하였다. 하염없이 외국 관광객들을 겨냥한 듯한 한국 전통 물건들을 파는 가게들을 구경하며 걷다 보면, 삼청동이 나온다. 당연히 모두가 잘 알 거라고 생각한 그 동네를 용인 친구들은 삼청동이 어디냐고 물어봤었기에 나는 뿌듯한 마음에 돌아가며 친구들을 삼청동으로 데려와 구경시켜 주곤 했고, 다들 내가 처음 삼청동을 봤을 때와 같이 신기해하고 현대적인 건물 사이로 보이는 돌담길과 한옥의 모습에 점차 빠져들었다. 거기다 어릴 적 부모님께서 학창 시절 공부하러 가셨던 정독 도서관에 올라가 보면, 계절마다 바뀌어있는 나무들의 풍경에 넋을 놓게 된다. 벚꽃과 울긋불긋 진 낙엽. 나는 정독 도서관의 자연과 어우러진 풍경을 보다 보면 '과연 정말 사람들이 공부가 될 까?'싶을 정도로 나도 모르게 설레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멀지만 꾸준히 북촌을 왔었고, 몇 년을 이곳만 온 결과 어느새 그 설렘이 무뎌지게 되었고 언젠가부터는 북촌에 발길을 돌리지 않게 되었다.


스무 살 중 후반이 되고 나는 서울에서 자취를 하게 되며 용인에서 다닐 때 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 흥분하여 서울 이곳저곳을 탐방하기 시작했다. 왕십리, 동묘, 신당동, 망원동, 서촌 등 정말 많은 동네를 미친 듯이 쫓아다녔다. 혼자서 다니다 보니 처음 가보는 동네를 목적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녔고, 낯선 동네의 모습에 이상하게 도파민이 돌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처음 동묘란 동네를 갔을 때에는 역 앞에 나와 보니 작은 공원이 있는데, 이상하게 그곳에 발길이 가졌다. 동묘 공원에 들어가 보니 뜬금없이 관우 목조상이 세워져 있고, 더 들어가 보니 '관운장'을 모시는 사당임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찾아보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이벤트는 마치 소소한 선물 같이 느껴져 낯선 동네 탐방은 하나의 취미가 되어버렸다.

그러다 우연히 서촌을 가보게 되었는데, 나는 예전 북촌이나 동묘 공원과 같은 낯섦과 예스러운 풍경에 압도되어 버렸다. 이후로 시간이 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서촌으로 몸을 이끌게 되었는데, 서촌을 올 때마다 괜히 설레는 마음이 든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소개해주고 싶지만 이곳은 북촌보다 용인에서 더 멀기에 다들 꺼려했다. 안타까웠지만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한 번쯤 친구들도 이곳을 와본다면 서촌의 매력에 빠질 텐데라는 생각은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바쁜 삶 속에서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서촌 동네를 찾아왔다. 처음 가보는 골목에서 나는 또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대었고, 그 앞에 멈추어서 여유로움을 만끽해 보였다. 처음 가보는 카페에 앉아 그동안 미뤄두었던 책을 펼쳐 읽어보다 오늘 마주친 골목과 한옥들이 자꾸 이상하게 머리에서 맴돌았다. 서촌 골목에서 마주했던 그 강렬한 인상을 잊고 싶지 않아 이렇게 글을 써본다. 글을 쓰면서 나는 서촌이라는 동네에 얼마나 빠져있었는지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다.

서촌 동네의 매력을 전해주고 싶었다. 현대적인 건물 사이사이로 시간이 멈춰 있는 듯한 옛 한옥과 돌담길. 그리고 그 사이를 메꿔주는 정리되어있지 않은 꽃과 나무들. 꼭 한 번 와 보기를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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