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차이와 클럽(club) 순방
드디어 4개월 간의 해외여행을 마치고 이스라엘로 돌아가고 있다.
인천에서 밀라노로 13시간 비행을 하였다.
밤 8시에 도착하여 공항 근처 호텔에서 1박을 하였다.
내일 여기에서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밀라노 공항으로 가서 이스라엘로 가는 비행기를 타면 된다.
이스라엘 가족과 친구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지금 일본에 여행을 간 것으로 거짓말을 한 상황이다.
우리는 일주일 일본 여행을 한 후, 8월 초에 이스라엘로 돌아가겠다고 하고, 재작년에 찍어 두었던 일본에서의 옛날 사진을 인스타에 올리기도 하였다.
내가 지금 쓰려고 하는 내용은 아들과 한국에서 20일을 함께 보내면서 겪었었던 머리끝까지 울화가 치밀었던 사건 첫 번째 에피소드이다.
아들은 7개월의 남미 여행을 마치고, 내가 한국에서 한 달을 더 눌러앉기로 결정을 한 후에 갑작스럽게 한국을 방문하기로 결정하였다.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뉴욕에서 이스라엘에 돌아가는 일정을 바꾸어 갑작스럽게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아들이 9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게 되어 우리 가족은 몰라보게 어른이 되어있는 아이를 무척이나 반갑고 살갑게 맞이해 주셨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내가 엄마와 많은 시간을 지내기로 작정했고, 그리고 나의 엄마와 나의 아들이 가까이 지내기를 원했기 때문에 우리는 4일간의 부산 여행 기간을 제외하고는 엄마집에서 함께 지냈다.
아들은 엄마집 거실에서 자고. 나는 엄마와 같은 침대에서 잤다.
우리 엄마는 아들이 알아듣거나 말거나, 이 얘기 저 얘기를 아들에게 띄엄띄엄 한국어로 말씀을 하신다.
아들이 눈치껏 알아듣고 떠듬떠듬 대답을 하는 것을 보고 나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아들은 예상치 않게 한국말을 꽤 많이 알아 들었다. 대답도 반말과 공손한 말을 번갈아 가며 조금씩 서로 대화가 되는 듯했다.
내가 짜 놓은 아들의 일정에는 태권도 체험, 한국어 레슨 4차례, 롯데 타워 방문, 설악산 투어와 낙산사 방문, 그리고 부산 여행에 경주 하루 당일 투어와 부산 야경 유람선 투어를 미리 예약을 해 두었다.
아들에게 한국을 자랑하기 위하여 1주일을 고심하며 짜낸 일정이었다.
그런데 아들은 내가 짜 놓은 한국 여행 일정에 그다지 감흥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데리고 가니까 죽지 못해 따라오는 듯했다.
특히 낙산사와 불국사에 있는 사찰에 가자 불상 앞에서 인사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유대인이라 다른 신에게 참배하지 않겠다고 했다.
특히 낙산사에 걸어 올라가서 보여 주고 싶었던 해수 관음상과 건칠관음보살좌상은 아예 보지도 못했고, 중간에 있던 찻집에서 우렁차를 마시는 것으로 대신했다.
"아, 이놈은 한국 놈이 아니었지! 내 자식이지만 이스라엘 놈이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어찌할 수가 없었다.
소리 질러 끌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한국과 아들이 보고 싶은 한국에는 내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다.
아들은 내가 준비해 놓은 우리나라의 역사 탐방보다, 한국의 청년 나이트 라이프(night life)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아들은 밤이 되면 홍대와 이태원, 성수동의 틱톡과 인스타에 올려놓은 클럽을 혼자 찾아다녔다.
저녁 9시쯤이 되면 한껏 차려입고 나가 마지막 전철이 끝날 때쯤이면 돌아왔다.
처음 며칠은 나의 신용카드를 사용했기 때문에, 아이가 결제를 하게 되면 결제한 장소와 함께 금액이 내 핸드폰으로 "띠링" 울렸다.
하지만 3일째가 되자, 아이는 본인의 신용카드를 사용하겠다며, 정중히 나의 신용 카드를 반납하였다.
절약이 몸에 배어 있는 짠돌이 배낭 여행자였던 아이는 항상 5천 원 내의 비용을 결제하였다.
마법에 쓰인 듯, 내게 건네받은 교통카드로 서울 구석구석 밤에 핫(hot) 클럽을 찾아다녔다.
손자가 밤만 되면 혼자 뛰쳐나가버리자, 친정 엄마는 혹시 길이라도 잃어버리고, 서울에서 미아가 될까 봐 밤 12시까지 소파에서 손자를 기다리셨다.
나는 물론 아들이 돌아오거나 말거나, 12시 전에 이미 잠이 들었다. 아들을 믿었기 때문이다.
서울 구경을 끌고 다닐 때마다, 아이는 나보다 더 빨리 내릴 정류장을 알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앱을 사용하고 있는지, 귀신같이 목적지를 척척 찾아내었다.
"엄마, 나 8개월 남미를 돌아다녔어! 도대체 모가 걱정이야, 내가 알아서 다 찾아다닐 수 있어! 나 좀 내버려 둬"
아이는 서울에서 자유롭게 혼자 다니고 싶다며 단호하게 내게 요구했다.
어쩔 수 없었다. 아들은 아직도 물론 내 자식이다. 하지만 이제 내가 보살피지 않아도 된다. 아들은 이제 자신의 인생이 있다. 더욱이 내가 끼어들어 "이래라. 저래라"할 나이가 이미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이 내게 절실하게 도움을 요청했던 사건이 생겼다. 이 사건은 인천 문학 스테디움에서 터졌다.
아이는 인천에서 열렸던 "Kanye West" 콘서트에 가기로 했고, 공연이 끝나면 택시를 불러 언니가 살고 있는 인천 청라로 돌아가기로 했었다.
밤 10시 30분쯤 왓쯔업 전화 통화가 울렸다. 다급한 아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내 전화기 배터리 지금 2% 남았어. 택시를 주문할 수가 없어. 이모한테 나 좀 데리러 와 주라고 해줘! 내가 서 있는 곳 동영상으로 보낼게!"
아이는 5초짜리 거리 풍경을 보냈고, 그다음엔 전화기가 꺼진 듯, 아무 반응이 없다.
"흐흐흐, 이놈아! 그렇게 잘난 척을 하더니... 고생 좀 해 봐라! 엄마 없이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줄 아느냐!!"
언니에게 급하게 전화를 하고, 거리 동영상을 보내며, 천천히 조카 구조 작전을 요청했다.
언니는 인천 문학 스테디움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단다. 동영상이 아무 도움도 될 수가 없었다. 결국 큰 조카를 대동하고 인천 스테디움을 한 바퀴 돌아서라도 조카를 구조하겠다고 하며 나섰다.
인천에 스테디움에 도착하고 보니, 경찰이 경기장 주변의 모든 길을 진입 금지하며 보초를 서고 있더란다. 큰 조카가 대충 사진 속에 찍힌 표시판을 찾았고 들어가서 조카를 찾아야만 했다.
경찰에게 언니는 간절하게 부탁을 했다.
"경찰 아저씨, 저 쪽에 외국인 조카가 기다리고 있어요. 잠깐 들어가서 애만 태우고 나올게요!" 간절한 언니의 목소리는 경찰 아저씨를 설득했고, 언니는 길 안으로 들어가 40분 만에 조카를 구조할 수 있었다.
"야, 니 아들 잡았다!" 언니는 의기양양하게 내게 바로 전화를 주었다.
"언니, 파이팅! 너무 고마워!"
아들은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넉넉하게 배터리가 남아 있었지만, 광란의 공연 중에 마구 사진을 찍어 댄 탓에 자기도 모르게 배터리가 2%로 급격하게 소비됐던 것이란다.
다음날 아침 아들을 공항에서 만났고, 나는 멀쩡하게 짐을 끌고 오는 아이에게 보란 듯이 한마디를 하였다.
"아들! 어제 엄마랑 이모가 너 살렸다! 평생 고마워해야 해! 우리 아니면 넌 인천에서 고아 될 뺀 했어"
"네! 엄마! 고마워요!"
아들이 활짝 웃는다. 나는 가슴에 얹혔던 십 년 묵은 인절미가 내려앉는 기분이다. 아들에게 아직은 내가 필요하다.
"남의 남자 친구", "남의 남편"이 되기 전까지 아들에게 난 SOS 구조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