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죽음에는 두 가지 옵션이 있다.
이스라엘에서
인질로 가자에 잡혀 있다가
풀려 나온
그들의 경험을
들어오면
그들에게는
삶과 죽음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함께 존재했다.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니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자신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도 없는,
고립된 터널의
깜깜한 어둠 속에서
인질의 하루는
아무 것도 선택할 수 없는
터널밖의
우리와 똑같은
잔인한 24시간을
그들이 견뎌야하는 하루였다.
아직도 678일째 잡혀있는
50명의 인질 중에
살아 있을꺼라는 20명의 인질,
그들은 언제까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만약
나라면
차라리
날
죽여 달라고
애원할 것이다.
인질 협상을 위한
삶과 죽음이
담보로 잡혀있는
그들을 생각하며
나도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난
어디에서
어떻게
죽게 될까?
이스라엘?
아님 한국?
난
평범한 인간이니까
내가 선택하여
이 세상을 떠날 때와
떠날 방법을
계획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해마다
한국을
방문할 때 마다,
이방인이 되어버리는 나!
이스라엘에서도
이방인이라는 타이틀은
내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선택 불능의
고민이 찾아 온다.
마음 속에서
이제 결정하라고
내게 재촉한다.
살면서
힘들 때마다,
인간은 부모에 의해
강제적으로 태어나고,
태어났으니
나름대로 제 인생을
살아낼 것이다.
죽음에 대하여
생각이 들 때면
어느 인간이든
결국은
'모두 죽는다'는
사실에 위안이
될 때가 있었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그러나
나이 드신 엄마를
염두해 두면,
언제가는 일어날
내 어머니의 죽음은
여전히 내게
공포스럽다.
난
신을 믿지 않는다.
전생과
죽음 후의 환생도
믿지 않는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죽는다는 것이
인생의
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죽는다면,
죽은 자는
삶에서 사라지지만,
죽은자는
애도의
장례식장에
그의 마지막 생을
남긴다.
죽은자의
육체는 사라지지만
그의 존재는
여전히
이 생에 남아 있다.
그래서
내가 죽어도
나는
사람들의 기억속에
여전히
존재하게 될 것이리라!
2025년 8월
살아 있을
이스라엘 인질들의
운명을
가슴 아파하며
내가
어디에서
죽어야 할지
결정을 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30년을 살았고,
이스라엘에서 결혼하고
25년을 살았다.
한국에서 죽는다면
내 아이들이
나를 기억해야할
추모 거리가
너무 멀다.
내가 죽는다면
나는 이생에서
사라질 것이고,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싶지
않다.
난 아직도
살 날이 많이 남았다고
믿고 싶다,
그래도
내 인생의
큰 시나리오는
미리미리
정리하고
싶다.
내 생의
제일 큰 딜레마
생의 마지막을
어디에서
맞을 것인가!
오락가락하다
드디어
마음이
정해졌다.
내가
죽을 곳은
이스라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