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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딸 키우기(2. 하프 타임)

양보하면 안 된다!

by Kevin Haim Lee
이스라엘 텔아비브 해변


37살에 낳은 둘째 딸은 올해 18살이 되었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1월에 군대에 입대한다. 이스라엘에서는 18살이 되면,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 동안 군 복무를 해야 한다.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아들을 한국식으로 키우려다가 생긴 시행착오를 둘째 딸에게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또한 낳고 나서 보니, 아들과 딸은 천성부터 가 바닥부터 달랐다. 다른 교육 방식이 필요했다.


아들은 집안에서 항상 '스파이더 맨'이 되어 펄쩍펄쩍 뛰어다니면서 내 정신을 흔들어 놓으며 자랐다.


초등학생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유소년 축구팀에 합류하면서 집에 있는 시간보다 축구장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리고 아들은 일단 시키면, 무엇이든 지 했다. 키우면서 그다지 충돌이 없었다.


남자아이와는 다르게, 딸은 조용히 방에서 인형을 갖고 놀았고, 거실에서는 방에 있던 이불을 꺼내와 바지락 바지락 조용히 텐트 요새를 만들며 놀았다.


그러나, 딸아이는 이미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싫어!', '아니야!'를 입에 달고 살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네'하고 대답을 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었다.


항상 눈알을 굴리며, 자기주장을 펼쳤다.


매주 토요일 늦잠을 자고 일어나면, 아들은 거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고, 딸은 자기 방부터 화장실, 부엌까지 이불들과 천조각으로 요새를 만들어 놓고 놀았다.


'그러려니' 하면서 일어난다. 하루 이틀 일어나는 일이 아니니까...


그러나, 홀딱 뒤집어진 거실을 보면 머리가 홱 돌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 꾹 참는다


나 자신에게 다시 쇠뇌를 시작한다.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면, 아이의 자존감이 떨어진다. 여긴 이스라엘이다. 소리 지르지 마! 참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딸아이는 아들에 비해 성격이 예민하고 감정적이었다. 특히 고집이, 동아줄처럼 단단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우리 집에 찾아온 딸아이의 비장 무기는, 다음과 같다.


1. 최후에는 눈물바다 드라마를 연출하기.

2. 징징 거리면서 될 때까지 떼쓰기.

3. 주변 사람을 들들 볶아서 목표 달성하기.

4.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거짓말하기.

5. 벌을 받을지언정 하고 싶은 것은 허락 없이도 일단 저지르기.

6. 괴물 같은 엄마보다는 아빠의 감정에 호소하여 소원 성취하기.

7. 마지막으로, '내가 버티면, 무조건 된다'를 잊지 않기.


이미 아들을 이스라엘에서 키우면서, 이곳에서는 자식을 윽박질러서, 엄마가 하자는 데로 교육하는 것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아이와 대화를 해야 하고, 아이가 하겠다고 할 때까지 기다려야 된다.


더욱이 생후 5개월부터 유아원과 유치원을 다닌 딸아이는 이스라엘 유치원 보모와 친구들에게서 듣고 배운 행동이 몸에 배어있다.


나는 아이가 앞으로 이스라엘에서 손해를 안 보고 살아남으려면, 다른 이스라엘 여자 아이처럼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딸아이에게는 이스라엘 부모처럼 항상

"무엇을 하고 싶니?" 물어보았고,

"이건 아닌 거 같은데..."싶어도

위험하지만 않다면, 딸아이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었다.


내가 이스라엘에서 이스라엘 딸을 키웠던 이스라엘 식 교육 방식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1. 양보와 배려를 가르치지 않았다.


양보와 배려를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이스라엘 식으로 절대 손해 보지 말고, 필요한 건 쟁취하는 용기를 키우고 싶었다.


이스라엘에서는 아이가 양보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아이가 양보를 한다고,

"애가 예의가 바르군!"

천만에 아무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점잖게 아이가 양보를 한다면 그 아이는 제 앞가림을 못하는 이상한 아이가 되기도 한다.


더불어 나도 아이를 변변찮게 못 키운 엄마가 된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 딸이 친구들에게 양보하지 않는 게 눈에 거슬렸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


2. 너희 주장을 굽히지 말아라!


일단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항상 아이의 생각을 경청했다.


만약 '아니다'싶으면, 아이를 무시하고 내 맘대로 하고 싶었지만, 내가 꾹 참았다.

콩알만 한 아이가 징징거리면서 할 일을 거부하면, 하고 싶을 때까지 대화를 해서 아이의 '동의'를 받고 하게 했다.


특히 이스라엘 아빠는 어찌나 작은 것까지 아이에게 설명을 하고, 아이를 기다려 주는지, 옆에 있는 나는 답답해서 머리가 돌 지경이었다.


내가 엄마로서, 아이가 기계 체조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서 아이가 6살쯤 체조에 학원에 등록을 시켰지만, 아이는 두 달 동안 의자에만 앉아 있었다. 6살짜리 꼬마의 시위다.


온갖 선물로서 아이를 설득했지만, '기계 체조 선생님'이 마귀처럼 소리를 질러대기 때문에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안 하고 싶은 '이유'가 명확한 아이에게 더 이상 강요할 수 없었다.


3. 당당하게 살아라! 체력이 국력이다!


"좀 얌전해라!"

"좀 참아라!"


남자와 여자는 어렸을 때부터 '힘의 강도'가 다르다. 가끔씩 오빠가 힘으로 여동생을 제압하는 경우가 눈에 띄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되자, 아이는 기계체조를 다시 하고 싶어 했다. 아직도 몸이 엿가락처럼 유연해서 다리를 일자로 '쩍! 쩍!' 벌릴 수 있었다.


쇠심줄 같았던 마음이 바뀐 것은 기계체조를 하는 반 친구들이 몇 명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내친김에 유도와 수영도 함께 하게 시켰다. 같이 할 친구가 있으면, 아이는 고민을 하다가 같이 하겠다고 결정했다.


이스라엘 아빠가 운동의 중요성을 따박따박 딸아이에게 설명을 해 주었고, 특히 여자이기 때문에 체력적인 방어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딸아이는 유도는 3년, 수영은 6년, 기계체조는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 계속 연습했다.


4. 성년이 되면 내버려 두자. 내 인생이 아니라, 그녀의 인생이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법칙대로 살아온 딸아이는 본능적으로 몸과 마음에 자신감이 붙어있다.


이스라엘에서 여자가 성년이 되는 나이는 만 12살 때이다.


아이는 이 성년식이 끝나고 나서 서서히 성숙해지기 시작했다. 축구에 올인을 해서 방과 후에 축구 빼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오빠와는 기본 루틴이 달랐다.


초등학교 6학년쯤부터 베이비시팅을 시작해서 돈을 벌었다.


이스라엘에서는 법적으로 만 15세부터 정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월급을 받을 수 있다.


딸아이는 만 15살이 되자마자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임시로 우체국에서 은행 계좌를 만들고 월급을 받았다.


본인이 월급을 받고 나면서부터, 아이는 더욱더 자립심이 강해졌다.


우리는 아이가 가끔씩 전해 주는 새로운 소식을 듣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경제적인 문제, 학교에서의 교우 관계, 방과 후의 시간 관리 등 많은 문제들을 아이는 혼자 계획하고 살았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부터, 이미 아이는 제 식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갔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스라엘 교육 방식의 핵심은, 내 생각에 '대화'인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집은 '금요일 저녁'은 네 명이 함께 준비하고, 같이 먹어야 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자신의 일주일을 얘기하고, 고민되는 문제를 얘기하고, 다른 가족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부모라고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나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는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결정은 본인들이 하고, 그러니까 책임도 고스란히 그들의 몫이다.


이스라엘에서는 '듣기'보다 '말하기'를 먼저 가르친다. 나 또한 이스라엘에서 이스라엘 방식으로 딸아이를 키웠다.


난 아직도 아이가 한밤중에 친구를 만나러 나가면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그렇지만 결코 내색하지 않는다.

자신의 앞가림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성인이 된 것을 알고 그 아이를 믿기 때문이다.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기는 하지만, 전화기는 항상 침대 근처에 나 두고 잔다.


혹시라도 새벽에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연락을 해도 된다고 내가 말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제 18세가 된 딸아이는 당당하고, 무슨 일이든 빠릿빠릿하다.

익숙해진 이스라엘에서 살게 되면서, 이스라엘 식으로 딸아이에게 자존감을 높여 주려고 내가 내 방식의 교육을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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