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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 부부싸움

내 남편은 내가 잡을 수 있어요!

by Kevin Haim Lee

나의 한국 이름은 이현욱이다. 전형적인 남자이름이다. 추측하겠지만 위에 언니가 한 명 있고, 내 아래로 세 살 터울 남동생이 있다. 장남이셨던 아버지가 내리 둘을 딸로 출산하셨다.


할아버지는 나를 "엎어나" 하셨을 정도로 실망하셨고 나의 출생 신고를 1년이나 지난 후에 남자 동생을 반드시 내 밑으로 볼 수 있게 부적처럼 이현욱이라고 남자 이름으로 당당히 출생 신고를 하셨다. 나는 없어도 되는 딸이었다.


난 한국에서 살면서 이름 때문에 그리고 1년 늦게 등록된 생년월일 때문에 가끔씩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너무 딸로서 태어난 나에 존재에 무심한 어른들 결정으로 30년을 한국에서 살면서 성질이 많이 삐딱하게 되었다.


여자로서 내 존재를 당당히 주장하기 위해서 남들보다 더 독하고 강하게 살아야 했다고 생각한다. 체격은 충청도 산골 막내딸이었던 엄마를 닮아서 작은 키에 말라깽이였다. 매년 새 학년이 되면 키 순서로 번호를 정하게 되는데 나는 1번 아니면 2번이었다. 거기에 이름까지도 완전 남자다. 나의 존재에 대한 자존감은 나를 항상 초라하게 했다.


이스라엘에서 국제결혼을 하고 5년이 지나자 이스라엘 시민권이 주어지면서 이스라엘 시스템에 등록될 이름과 성을 정하라고 했다.

내 이름이 영어로 발음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남편에게 처음 자기소개를 할 때 난 케븐이라고 이름을 알려줬다. 그때에 영화배우 케븐 코스트너를 너무 좋아해서 영어 이름도 남자였던 그의 이름으로 나 스스로 정했었다.


남편은 5년 동안 나를 케븐으로 알고 불렀다. 한국에 친정 엄마도 나를 "케븐아" 하고 부르신다. 그래서 자신 있게 이스라엘 시스템에 "케븐 현욱, 하임 리"라고 길게 등록을 하였다.


남편 성이 하임인데 남편 성이 나랑 다르면 나중에 아이들을 같이 관리하기도 우편물을 대신 받는데도 문제가 된다고 해서 고심하여 이렇게 지었다. 아이들의 성은 내성과 아빠성을 같이 한 "하임 리"로 등록되어 있다.


나에게는 남녀평등이 태어날 때부터 중요한 이슈였다. 한국에서 살 때는 3대가 함께 사는 가부장적 우리 집 가족 분위기에 아빠와 많이 부딪혔었다. 직장에서도 남자와 여자는 초봉부터 월급이 다르고 승진에도 남녀 차별이 있다는 사실에 삼성에 들어갔다가 10개월 만에 뒤도 안 돌아보고 관뒀다.


이스라엘은 한국과 다르다. 우선 여자나 남자 모두 18살이 되면 군대를 간다. 물론 복무 기간과 복무 장소가 성별에 따라 다르지만 여자가 원한다면 남자처럼 전투병이 될 수도 있고 최전방에서 근무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이 여자와 남자가 공평하게 똑같다는 것은 아니다. 여기도 차별이 있다. 월급 기준이 다르고, 대부분 가정의 주요 수입원은 남자이다. 여자도 결혼 후에 대부분 일을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주요 양육자는 여자가 된다.


2001년도에 결혼하고 2002년도 1월에 첫아들을 낳았다. 8월까지만 집에서 육아를 했다. 독박 육아였다. 우리 남편은 알아서 도와주는 남자는 아니었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고, 그 사람도 아빠가 처음이다. 치열하게 육아로 남편과 싸우면서 6개월을 버텼다.


9월이 되면서 아이를 유아미쉬파톤에 보내고 운 좋게 이스라엘 스타트업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더 남편과 육아와 살림을 공평하게 나누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자동으로 된 건 아니다. 서로 힘들다며 부부싸움도 많이 하고 이혼 얘기도 해마다 떠올랐다.


25년이 지난 지금 큰아들은 22살이고 둘째 딸은 17살이다. 남편은 빨래 돌리기와 널기 담당이고 저녁 식사의 주된 책임자고 난 금요일 가족 저녁과 집안 청소, 학교 교육과 사교육을 전적으로 책임진다.


청소가 너무 힘들어서 2주일에 한 번씩 전문 집안 청소 하시는 분이 우리 집에 오셔서 청소를 해 주신다. 비용은 내가 전적으로 부담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아들이 집 바닥 물청소를 한다. 빨래를 개는 일은 내일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방 정리와 자기가 먹은 그릇은 바로 설거지를 해야 한다. 금요일에는 아들과 딸이 번갈아 가며 금요일 가족 저녁을 준비하며 내가 쏟아낸 그릇들을 설거지한다.


남편의 월급과 내 월급은 각각 본인이 관리한다. 자세하게 생활비 사용 내역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설명하지는 못하겠다. 교육에 관계된 비용은 거의 내가 부담하고 집에 관계된 공과금은 남편이 부담한다. 1년에 1번씩 나가는 가족 해외여행은 둘이 정확히 총비용의 반반씩 부담한다.

처음부터 아렇게 온 가족이 집안일을 나누어하지 못했었다. 피나게 싸우고 맞춰가면서 아이들이 크다 보니까 하나씩 하나씩 제 자리에 맞춰졌다. 부부싸움을 하면서 1주일간 말을 안 한 적도 있다.


우리 집은 남자 여자 불평등이 없다고 생각한다. 가족이 각자의 개성에 따라서 나누어한다.

"네가 하기 싫은 것은 나도 하기 싫다"

"네가 힘든 건 나도 힘들다"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면 누가 이기냐고요?

대부분 무승부로 끝나고 가끔 성격 사나운 불굴의 대한민국 딸인 내가 이긴다. 그러니까 25년을 남의 땅에서 살 수 있었다. 우리 엄마처럼 절대로 살고 싶지 않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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