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스라엘 - 정년퇴직

21년의 이스라엘 직장 생홯

by Kevin Haim Lee


이스라엘 텔아비브 벤 구리온 국제공항과 서울 인천 국제공항과의 직선거리는 약 8,000km 정도입니다.


보통 소요 시간은 경유를 조건으로 16시간 에서 20시 정도 걸립니다.


대한항공 직항 코스가 몇 년 전에 있었지만 코로나와 전쟁의 여파로 지금까지 모든 대한항공의 직항은 취소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 방문을 하려고 하면 파격적인 항공 가격과 소요시간을 잘 계산해서 선택해야 합니다.


1년 반전에 에티아드 항공을 이용하여 한국을 방문하고 다시 인천에서 텔아비브까지 오는데 아부다비 경유 시간이 9시간이나 되어서 저는 경유시간을 고문처럼 느끼며 엄청 고생을 했었습니다.


우리 엄마 말처럼 왜 이리 먼 곳으로 시집을 왔는지 비행을 할 때마다 후회가 살짝 옵니다.


저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서른까지는 몰랐고 33살 때 스피드하게 결혼 신고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유대교에 따라 집안에 누가 돌아가시면 1년 정도 결혼식 같은 연회를 하지 않고 애도의 표시를 합니다.


마침 신랑의 형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우리는 결혼식을 하지 않고 한국 대사관에서 간단한 의식을 마치고 혼인 신고를 하였습니다.


저도 원래부터 결혼식은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있어서 이 상황이 오히려 저에게는 잘 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혼인 신고를 먼저 하고 2002년에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 예식장에서 결혼사진을 찍은 거로 결혼식에 대한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나는 한 번도 국제결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운대가 맞았었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을 방문하였을 때 미래에 대한 결정을 하지 못해서 방황하고 있을 때 지금의 신랑을 만나서 조언과 우려를 받으면서 순간적으로 고맙다는 생각이 하게 되었습니다.


런던으로 다시 돌아가 한 학기를 마치고 다음 해 6월에 두 달의 방학을 계기로 하여 이스라엘에 도착하면서 남편과의 연애가 시작되고 결국 일 년이 지난 후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일 년이 지난 후에 첫아들을 낳았고 이스라엘에 100% 뿌리를 박는 것으로 마음을 잡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서 살 자신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국제결혼에 대해서 부정적인 흐름의 정서가 있을 때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세계적으로 국제결혼이 많았고 그다지 특이하고 부정적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직장을 다니며 아이는 영아유치원에 보내고 오후 3시까지 근무하면서 아이를 4시에 픽업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반적으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사회 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으면 당연히 아빠나 엄마가 근무 중에 관리자의 눈치를 받지 않고 조퇴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족이 일 순위이고 작장은 가족보다 덜 중요합니다.


나도 처음에는 한국의 관리 체계처럼 직장을 제1순위로 하여 열심히 일을 했었는데 주변의 직장 동료들이 가족을 제일 중하게 여기면서 회사를 다니는 것을 보고 그들처럼 생각하고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조퇴를 하게 되면 프로젝트의 데드라인을 생각하고 그다음 날 몇 배로 더 열심히 일하여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만듭니다.


나로 인해서 프로젝트가 엇갈릴 수는 없습니다. 모든 개인은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자신의 역할을 책임 있게 하여 데드라인을 지켜야 합니다.


자신의 프로젝트에 나로 인해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매니저는 직원들을 일일이 간섭하지 않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있는 매니저와의 미팅에서는 가족들의 안녕을 묻고 업무를 하는데 문제가 있는지 매니저가 확인을 합니다.


나는 이스라엘에 친가족과 외가족이 없어서 나를 도와줄 가족이 없다고 얘기했고 아이가 아프면 내가 데리러 가야 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나의 매니저는 나의 상황을 이해했고 업무 평가를 할 때 그다지 낮은 점수를 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운이 엄청 좋았던 것 같습니다. 3명의 매니저가 12년을 근무하면서 바뀌었지만 모두들 나의 상황을 이해해 주었습니다.


이 회사를 12년을 다닌 후에 나는 이 회사를 자발적으로 관두고 제2의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에 둘째 딸을 낳았고, 아들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첫째 아이를 낳았을 때 키운 경험으로 둘째를 키울 때는 훨씬 아이를 키우기가 순조로워씁니다.


이스라엘에서 2번째 회사에 입사를 하고 8년을 다니다가 2021년에 회사에 사표를 냈습니다.


회사에 사표를 내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이유는 나에게 번아웃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출근과 퇴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고, 불면증과 우울증도 함께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현재까지 다시 일을 하지 않고 있고, 다시 회사 생활을 할 계획도 없습니다. 21년 동안 이방인의 나라에서 일을 한 나를 칭찬하고 싶습니다.


내가 나의 이스라엘 적응에 점수를 매긴다면 10만 점에 10을 줄 수 있습니다. 돌아보면 아이 둘을 키우면서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이제는 책도 읽고 공부도 하면서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덕분에 브런치에 글도 올리면서 마음이 든든하고 주변의 사소함에도 관심을 가지며 내 글의 주제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60살이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글을 올리고 싶고 언젠가는 책도 만들고 싶습니다.


나는 나의 미래를 위하여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서 살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나의 중년은 흔들리지 않고 단단한 인생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장기 유럽 여행의 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