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니 주위의 사람들은 잘 사는 거 같은데 그와 비교하면 점점 기운만 빠지고 도대체 왜 하는 일마다 잘 안 풀리는지 게다가 동기, 후배들은 모두 승진하는데 나만 도태되고 있다고 느껴질 때 또한 집사람 마저 농담인지 신체적으로 내가 나이 들어간다고 핀잔을 줄 때 참 서글퍼진다. 그러면서 문뜩 옛날 일이 생각났다. 때는 영어 센터라는 곳에 근무할 때이다.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에게 영어공부를 시켰으며 일주일에 한 번꼴로 숙직을 하는 등 엄청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무렵 몸에 무리가 왔는지 치질까지 심해졌다. 그런던 어느 날 한참 수업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나를 불렀다.
"선생님, 누군가 맞고 있어요!" 창밖을 보던 아이가 파랗게 얼굴이 질려 나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뭐?" 난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천천히 창밖을 바라보니 이게 웬일일까? 웬 여자분이 남자에게 심하게 맞고 있는 게 보였다. 이리저리 피하려고 해도 남자가 차로 끌고 가려는지 때리고 있었다. 나는 수업을 멈추고 달려 나갔다. 세상에 주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 몰랐다. 100명 정도의 사람들이 그냥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달려가 "왜 그러느냐?" 남자에게 물었다. "상관없는 일에 신경 쓰지 말라!"며 나에게 경고를 하였다. 얼마나 맞았는지 얼굴이 벌겋게 된 여성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에게 "도와주세요!"라고 다급하게 말했다. 나도 모르게 여자를 때리는 남자의 손을 잡았다. 무슨 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사실 엄청나게 급박한 상황이고 나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다. 그랬더니 내가 잡은 팔을 뿌리치며 또 여성에게 달려들었다. 나도 이번엔 안 되겠다 싶어 그 남자 몸과 팔을 또 잡고 늘어졌다. 그 순간 같이 근무하던 주무관 한분이 같이 도와줘 남자를 제압하고 여성에게는 빨리 가라고 손짓을 보냈더니 달아났다. 남자를 한참 잡고 있었는데 나중에 안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을 받고 돌아갔지만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지 심히 걱정이 되었다.
사실 그날은 옆 건물에서 유치원 선생님을 상대로 교육을 하고 있었고 그 많던 사람들은 모두 교육이 끝나고 나오다가 그 광경을 목격한 듯싶었다. 정말 아무도 그 여자분을 도와주지 않았다. 남은 수업이 생각나 교실로 돌아오니 아이들이 손뼉을 치며 잘하셨다고 한다. "뭐 대수롭지 않은 일로 그러니?"라며 수업을 이어갔고 그날 집에 돌아와 보니 세상에 얼마나 그 남자가 나의 제지를 벗어나려고 버둥거렸는지 내 팔 안쪽이 모두 까져있었다.
작년 겨울 학교에 방학 중에 근무하고 있는데 급하게 교무실로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 달려가 보니 외국인 남자가 앉아 있었다. 올해 파키스탄에서 한국으로 발령받아 온 연구원인데 딸아이를 입학시키고 싶은데 어떻게 안내할 방법을 몰라 나를 불렀던 것이다. 다행히 영어센터에 근무했던 경험이 있기에 기본적인 대화가 가능했다. 첫 입학 시 준비물과 급식에 관한 이야기, 방과 후 학교 등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상식으로 통하는데 외국인들에게 매우 낯설게 느껴졌는지 궁금한 부분을 몇 번이고 다시 질문했다. 그렇게 아주 만족해하며 돌아가는 파키스탄 아빠를 보면서 그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기쁨을 느꼈다. 그 후 좀 더 영어공부를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의 모습에 누군가가 참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때만 생각하면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구나 생각이 든다. 정말 세상은 넓고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있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