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항상 나의 마음속에 간직한 어느 에피소드에 관한 이야기이다. 때는 서슬 퍼런 군시절 열심히 훈련받고 저녁때 씻고 다음날 또 훈련받고 또 씻고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간부가 나를 불렀다. "조일병", "예, 부르셨습니까?"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나와 옆 내무반에 있는 또 다른 김 일병을 함께 불렀다. "너희 둘은 내일부터 작업하지 말고 이거나 연습해"라며 책상 위로 툭 던진 것은 나팔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설명 "내가 보니 대학물 먹고 일병 정도인 애들은 우리 중대에서 너희들 뿐이라 그 정도면 충분히 불 수 있을 거라 생각 든다, 이상" 우리의 생각과 선택을 들을 상황도 아니었고 그 당시 군 생활은 이게 오히려 더 자연스러웠다. "예, 알겠습니다"
내무실로 그 문제의 나팔을 갖고 왔다. 새것이라 그런지 금색깔은 정말 장난 아니었다. 번쩍번쩍하고 엄청 귀하게 생겼다. 그런데 버튼이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가 지급받은 나팔은 트럼펫이 아니라 오로지 입으로 소리를 조절하며 음을 내는 아주 단순한 악기 었다.
그렇게 다음 날부터 빛도 안 들어오는 어느 허름한 창고에 각 중대별로 두 명씩 모여 배우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레슨도 없는 나팔이란 악기를 소리 내는 연습을 했다. 그런데 나팔은 입을 대는 부분이 리코더 같은 형태가 아니라 주둥이가 둥근 형태였다. 소리를 내는 부분이 음악을 업으로 하는 전문가 영역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지급받은 나팔을 각자 연습했다. "와! 이건 도대체 소리가 왜 이렇게 안 나지?" 게다가 받은 악보도 있는데 악보를 따라 하기에는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 하겠는가? 군대는 시키면 하는 곳인걸. 그렇게 이틀 정도 소리를 내어보니 정말 소리가 나지 않고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났다. 같이 연습했던 동료들도 슬슬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고 나와 같이 온 김 일병 만이 이 세상을 한탄하며 큰일 났다고 했다. 1주일 뒤에 검사를 하겠다는 간부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1주일이 지나도록 "삑"소리도 안 나고 그냥 타이어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났다. '뭐가 문제일까?' 지금이야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통해 잘하는 사람들의 설명을 들을 수도 있지만 그 당시 삐삐가 세상에 처음 나올 시기이니 어디 물어볼 때도 없었다. 단지 음이 하나만 나오면 악보 대로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만 주워들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여겼다.
그렇게 2주일이란 시간이 흘렀고 언제 연주를 할 거냐며 간부의 닦달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밤에 잠도 오지 않았다. 다들 삽 들고 방어 진지 구축하는데 나는 이 창고에서 소리도 안나는 나팔을 불고 있으려니 차라리 삽 들고 허리 아프게 작업하는 동료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나 도저히 안 되겠어, 차라리 몇 대 맞더라도 이건 정말 안된다고 해야 할 거 같아" 그렇게 김 일병이랑 얘기하고 그날 저녁 그 간부를 찾아갔다. 군생활 최초로 어렵다는 얘기를 했다. 정말 몇 대 맞고 조인트 까일 각오는 되어 있었다. 그런데 불호령이 떨어지고 난리를 칠 거 같은 예상된 분위기와는 다르게 부드러운 상황이 이어졌다. 그게 더 무서웠다.
"그래, 소리가 안 나는 게 당연하지. 조 일병 이거 하나 알아둬 인생에서 안 되는 일이 많은데 안되더라도 6개월을 해야 돼 그래도 안되면 포기하는 거야, 6개월 뒤 다시 이야기하지, 이상"
나는 그 순간 정말 아무 말 없이 얼어붙었다. 군대에서 이런 인생의 진리를 듣게 될 줄이야 그리고 그놈의 나팔 인생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다시 터덜터덜 내무반으로 돌아왔고 이제 선임들 마저도 "야, 도대체 언제 나팔 불어줄 거야? 연습한다고 작업을 몇 주나 빠졌는데 소리하나 못 내냐?" 별의별 얘기를 들어야 했다.
'그래, 어차피 나팔 때문에 죽을 바에 이판사판이다.'
그 후로 정말 6개월간의 연습을 마음으로 혼신을 다해 소리를 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일이 생겼다. "뿡"거리며 방귀 뀌는 소리가 몇 주 만에 딱 한번 소리를 냈다. 정말 우연하게 소리 내는 구간을 찾은 것이다. 같이 연습하던 동료들도 놀란 듯 어떻게 한 거냐며 물어보였다. 학창 시절 단소를 불듯이 입모양을 하고 평소 입에서만 소리 냈는데 이번엔 배에서 나오는 힘으로 한 번에 바람을 부니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며칠뒤 정말 악보의 음을 모두 소리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가 그랬듯이 한 음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 후 정말 신들린 듯 연습을 했다. 모든 악보를 외우고 불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나중에 저녁때 씻으려고 거울을 보니 얼마나 연습을 했던지 입술주위가 둥그렇게 퍼런 멍이 들어있었다. 그래도 나팔의 소리가 나니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즐거웠다.
그 후 그 간부와는 사이좋게 지냈으며 가끔 야간에 취침나팔을 불어주라는 얘기에 옥상에 올라가 취침나팔을 불어주곤 했다. 그 후 내무반에 돌아와 잠을 자려고 했는데 선임 한 명이 나에게 이런 농담을 던졌다. "조 일병 너의 취침나팔 소리에 잠 모두 달아났다. 어쩔 거야?"
올해 제대한 지 벌써 30년이 지났지만 무슨 일이든 포기하기까지 6개월이란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어느 누가 이런 말을 해주었던가? 어떤 책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