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밴드의 소중함

by 정수TV

강화도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가 이따금 생각난다. 작은 학교에 4,5,6학년을 모두 데리고 강화도란 곳으로 수학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시골학교라 4,5,6학년을 모두 합쳐봐야 버스 한 대 정도로 아이들이 적었다. 나는 강화도란 곳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거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보통은 경주나 수도권을 돌아봐야 하는데 강화도라. 그런데 그곳에 도착하고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세상에 온통 유적지 천지였다. 그 작은 섬과 같은 곳에 왜 그렇게 많은 유적지가 있던지 놀라웠다. 고려시대 때 무신정권이 몽고와 싸우기 위해 40년 이상을 수도로 이용한 곳이 강화도였고, 구한말 외국과 그렇게 싸운 곳도 강화도였다. 정말 그 작은 곳에 있어야 할 것은 모두 있는 듯싶었다. 가는 곳마다 놀라움에 연속이라 아이들은 뭐가 뭔지 모르고 신나게 뛰어다니는데 나를 비롯한 선생님들은 역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귀중한 시간이 되는 장소였다.

저녁이 되어 근처 숙소로 향하게 되었다. 그런데 시골길을 들어가도 너무 들어갔다. 깜깜한 밤길을 버스 한 대가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다 보니 숙소 외 불빛 하나 없는 곳에 도착하였다. 그렇게 짐을 풀고 작은 유스호스텔에 방을 배정받고 아이들과 저녁을 먹었다. 사장님께서 선생님들을 위해 몇 호실에 삼겹살을 준비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런 문화가 없어졌지만 벌써 20년도 더 된 이야기이니 이해해 주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신나게 방에서 떠들고 여행온 분위기에 한껏 젖어 있었고 선생님들은 같이 간 교감선생님과 함께 사장님이 준비해 주신 삼겹살을 불판에 구워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삼겹살 판에 기름 빠지는 나사를 풀지 않고 삼겹살을 구웠더니 점점 기름이 튀기기 시작했다.

순간 교감선생님께서 급하게 펄펄 끓는 기름 속에 엄지손톱을 넣어 나사를 풀려고 하셨다. 초임시절부터 같이 근무했던 교감선생님이기에 성격이 급한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일단 가스불을 끄고 뭔가 드라이버를 찾거나 동전으로 풀면 되는데 갑자기 손톱으로 돌리려고 하니 나사는 돌아가지 않고 엄하게 교감선생님 엄지만 기름에 데고 말았다. 붉게 변한 엄지를 보며 아무렇지 않은 듯 소주잔에 소주를 붓고 손을 담그고 계셨다. 그 모습이 너무 딱해 보여 주인아저씨께 근처 병원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니 엄청 멀리 있다고 하였다. 급한 대로 가지고 온 응급함을 열어 화상약을 찾아보니 없었다. 화상에는 화상거즈라고 그걸 붙이면 열도 내리고 덧나지도 않아 좋은데 도대체 이 시골 깊숙한 곳에 그걸 찾기란 어려웠다. 무엇보다 나는 선생님들에게 맛있는 삼겹살을 구워주기 위해 노력해 주신 교감선생님께서 화상을 입으신 거에 마음이 아팠다.

사실 첫 발령에서 교감선생님과 같이 근무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초등교사인데 특수 연수를 받고 특수교사역할을 하고 계셨는데 그날 특수반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그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특수아이가 달려들어 선생님의 뺨을 강하게 때리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 이 놈을 가만두면 안 되겠다 싶었는데 특수 선생님께서 괜찮다고 가끔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이렇게 군다고 하며 또다시 나와 대화를 이어갔다. 지금도 그 당시를 떠올리면 기가 막히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특수아이라도 이렇게 함부로 군단 말인가. 그 후 또다시 만났을 때 교감선생님으로 승진되어 계셔서 참 좋았다.

그렇게 하루가 흘렀고 교감선생님께서는 어제 데인 엄지손가락은 괜찮다며 말씀하시는데 나는 사실 괜찮지 않았다. 응급함을 준비할 때 보건선생님께서 챙겨주셨는데 그냥 가방만 들고 오는 게 아니라 내가 한번 더 확인했어야 했다.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항상 학교행사로 운동회를 할 때나 현장체험학습을 갈 때, 어디 아이들이 대회에 참여할 때 응급함을 준비하면서 꼭 화상거즈를 한 장 넣는다. 그때의 교감선생님께 못 붙여 들였던 게 죄송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이들과 현장체험학습을 가면서 학교에서 따로 구급함을 준비해 주지 않아 집에 있는 약품통을 열어 이것저것 챙기면서 혹시 이게 쓰일 일이 있을까? 하며 가방에 약을 챙겼다. 그렇게 아이들과 현장체험학습을 떠나 대형 수족관에서 앉아 큰 물고기를 보고 있는데 옆에 있는 아이의 무릎을 보니 온통 상처 투성이었다. "너, 너, 너 이게 왜 그래?"라고 물으니 본인이 심심할 때마다 손으로 뜯었더니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아! 마음에 상처가 있는 아이구나!' 갑자기 가방 속 응급약품들이 생각나서 주섬 주섬 꺼내 아이가 손톱으로 오랫동안 뜯어 피가 나는 곳에 준비해 간 약과 밴드를 모두 붙여주니 마음이 좋고 편안해졌다. 집에 가는 버스에서 그 학생을 보니 내가 붙여준 밴드가 잘 붙어 있는 것을 보니 예전에 교감선생님께 못 해 드렸던 치료를 해준 거 같아 기분 좋았다. 이토록 작은 약이 마음의 상처까지도 치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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