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에 대학에 다니는 아이들도 돌아오고 해서 장으로 보러 마트에 혼자가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 좋아하던 과일과 초밥을 사면서 어찌나 즐겁던지 그런데 결재를 하려고 가고 있는데 행사 상품에서 LA갈비를 팔고 있었다. LA갈비는 그 기원이 어찌 되나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1960년대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 1세대들은 값싼 미국 소고기를 인건비가 많이 드는 전통 손질 방식 대신 육절기로 쓱쓱 쓴 모양의 현재 LA갈비가 인기였다고 한다. 그것이 역으로 한국으로 들어와 입맛을 사로잡은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적 먹었던 LA갈비를 좋아하던 모습이 생각나 일하시는 아줌마들에게 이거 얼마 하냐고 물어보니 4Kg을 구입하면 엄청 저렴하게 준다는 말에 그렇게 해달라고 했고 4kg은 생각보다 엄청 많았다. 결재할 때 보니 그 LA갈비만 12만 원 정도 되었다. 순간 '이거 뭔가 잘못되었다' 생각 들었지만 이미 물건을 담았기에 사나이 자존심에 물릴 수는 없었다.
역시나 집에 도착해서 장 봐온 것을 풀어놓으니 집사람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애써 못 들은 척 "싸다고 해서 샀어"라고 얘기했지만 나 스스로 참 호구 같은 짓을 또 한 것이다. 나는 이상하게 아줌마들의 물건 강요를 뿌리친 적이 없다. 특히, 집 근처 작은 마트 생선가게 아줌마의 손쉬운 먹잇감이 나였다.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오징어, 새우, 동태, 대구 등 그날 들어온 물건은 딱히 필요가 없는대도 구입하곤 하였다. "새로 들어왔어요", "오늘 세일해요" 이런 말을 듣고서는 나도 모르게 카트에 물건을 담는다. 그러니 이번 LA갈비도 뭐 그리 새롭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살다 살다 갈비를 12만 원어치 사는 사람이 있냐며" 구박을 엄청 받으며 냉동실에 그 많은 LA갈비를 구겨 넣었다.
추석을 맞이하여 아이들이 돌아와 집이 오랜만에 시끌벅적해졌다. 한참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문제의 LA갈비가 생각났다. "오늘 아빠가 LA갈비를 준비했다" 그렇게 시작된 LA갈비 파티를 하고 의외로 반응이 엄청 좋았다. 생각보다 맛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한입 먹으니 소고기에 저며든 갈비 양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담백하고 입맛에 맞았다. 특히, 흰쌀밥과 같이 먹는 양념 갈비는 밥도둑 그 자체였다. 그렇게 많은 양의 갈비를 소비하고서 모두들 잘 구입했다며 칭찬 일색이었다. 게다가 앞으로 매년 추석은 LA갈비를 먹는 날로 정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LA갈비를 먹으며 예전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 아버님께서 집 근처 새로 생긴 고급 음식점에 가자고 해서 온 가족이 그곳에 가게 되었다.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아가씨가 우리 가족을 인도하며 고급스러운 방으로 들어섰는데 그곳에서 평소에 보지 못한 고급스러움이 함께 있었다. 메뉴를 훌터보던 어머니께서 갑자기 나가자고 하셨다. 나를 비롯한 가족들은 비싸도 이곳에서 한번 먹어보자고 얘기했으나 어머니는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다. 나는 매우 아쉬워하며 그곳을 나와 집으로 다시 돌아온 기억이 난다. 그곳이 바로 LA갈비 전문점이었다. 세상에 내 기억 속에 그때의 가격도 생각난다. LA갈비 한 줄에 8천 원이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리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는데 그 당시 나의 느낌은 그래도 조금이라도 맛보았다면 어땠을까 싶다. 가족들끼리 추억이 너무 없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대학생 시절 돌아가셨기 때문에 변변한 추억이 부족했고 지금은 모두들 가족이 생겨 자기 가족들 챙기느라 또 추억을 쌓을 시간이 부족하다.
그때 못 먹은 LA갈비는 지금 나의 가족들과 원 없이 먹고 있지만, 나의 원래 가족들과 꼭 한 번은 먹고 싶었던 음식이었다. LA갈비는 가족 간의 사랑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