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좋은 일로 생각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10년 전 어느 작은 시골 학교로 발령받아 생활할 때 갑자기 과학 전담교사가 되었다. 작은 학교라서 과학만 수업하는 게 아니라 음악도 같이 했다. 생각보다 꽉 짜인 스케줄에 정신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분은 나를 도와주는 과학보조 실무원이었다. 아이들이 실험이 있으면 실험 준비를 하고 끝나면 깨끗하게 설거지까지 해줬으니 고마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항상 그분께 미안함과 고마움을 함께 하고 있었던 듯싶다.
문제의 어느 날을 맞기 전까지는 참 좋았던 듯싶다. 그날은 교내 과학행사로 매년 4월에 학교마다 과학주간이라고 1주일 정도 교내대회를 갖기도 하고 잘하는 아이들 시상도 하는 좋은 행사였다. 그러다 보니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나는 눈곱 뜰 새 없이 바빴다. 어느 교실에서 과학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모두들 바쁘다 보니 쓰레기 봉지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과학실무원에게 전화해서 행사하는 교실에 쓰레기 봉지를 가져다 달라고 하고 나는 나의 일을 하고 있었다. 흔쾌히 그분께서 쓰레기봉투를 가져와 행사하면서 생긴 쓰레기를 그곳에 담은 기억이 있다. 작은 학교에서의 행사는 모든 교직원이 달라붙어야 할 수 있는 것으로 나도 다른 행사를 할 때 적극적으로 협조한다. 게다가 과학 행사는 과학을 맡은 교직원은 필수로 참여하여 행사를 진행했기에 어떠한 궂은일도 즐겁게 임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과학 실무원이 나에 대한 말과 태도가 험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상했지만 뭔가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하며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작은 학교이다 보니 내가 맡은 업무가 과학뿐 아니라 다음 해엔 도서관도 같이 맡게 되었다. 도서관은 매해 새 책을 구입해야 하는데 보통은 도서관에 근무하는 사서 선생님이 하셨는데 작은 학교다 보니 과학 실무원이 이 학교에 사서 역할도 하고 있어 잘되었다 싶어 새 책을 구입해 달라고 얘기했더니 갑자기 자기 일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이상했다. 분명 주위에서는 그분께 얘기하면 될 거라는 말을 들었는데 본인 일이 아니라고 하니 작년에 어떻게 했는지 공문을 찾아보니 예상대로 이 분이 책을 구입한 게 기록에 남아 있는데 왜 자기 일이 아니라고 했는지 궁금했다. 나는 다시 찾아가 그 부분을 이야기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작년엔 담담자가 달랐어요"라는 이야기였다. 즉, 담당자가 내가 아닌 다른 선생님일 때는 본인이 일을 했고 내가 담당자이니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였다. 갑자기 공기가 얼어붙는 분위기라서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 없어 도서관을 나왔고 나로서는 참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후 정확하게 생각은 안 나지만 어떤 행사를 하다 나에게 매우 심한 소리를 하는 게 들렸다. 나는 정말 화가 난 듯싶다. 그래서 행사 후 잠깐 나와 얘기 좀 하자고 했고 학교 벤치에 앉아 그분을 기다렸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나를 공개적으로 망신주는 말을 했던가? 이번 일은 도저히 넘어갈 수 없겠다 생각 들어 기다리고 있는데 나올까 싶었다. 잠시 후 그분이 나왔고 나는 직접적으로 물어보았다. 도대체 나에게 왜 심한 말을 했냐고 돌아오는 대답은 작년의 과학의 날 행사에 대한 부분이었다. 그 당시 내가 쓰레기봉투를 가져달라고 해서 기분이 나빴다는 것이다. 나는 과학의 날 행사에는 모든 교직원이 일을 했다고 얘기했는데 본인도 그것은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쓰레기봉투를 가져왔는데 그 당시 내가 다른 선생님과 웃으며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게 기분 나쁘다는 것이다. 즉, 자신을 무시해서 쓰레기봉투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참 기가 막히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모두 듣고 그런 생각으로 말을 했을 리 없지 않냐고 얘기했더니 이번에는 또 다른 이해할 수 없는 서운했던 이야기를 전개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화는 계속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분과는 이야기를 더 하면 할수록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이야기 나눌 의미를 못 찾고 일어섰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갑자기 이 분이 생각나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 후 이 분과는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작은 학교이다 보니 행사가 많았고 그럴 때마다 얼굴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게 떠나는 날까지도 화해는 없었다. 나는 이 부분이 참 안타깝다.
시간이 한참을 흘러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이분은 자격지심의 굴레에 갇힌 듯싶다. 사람이면 누구나 자격지심(자기가 일을 해 놓고 그 일에 대해 스스로 미흡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다. 나도 사실은 그렇다. 그런데 이 또한 에너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쓸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그분을 실무원이라고 무시하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본인 스스로 자신을 남들이 무시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싶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이 들면 상대가 정말로 무시를 했든 안 했든 상대에게 공격적으로 지내온 것이다. 새삼 자격지심이 이토록 무서웠나 생각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