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예전부터 풀지 못한 숙제가 하나 있다. 바로 어머니. 어머니는 나처럼 초등학교 교사셨고 지금은 조기 명퇴하여 혼자서 생활하고 계신다. 주말에 가끔 들려 같이 텃밭을 관리한다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등 누가 보면 참 좋은 관계로 보인다. 하지만, 나에게는 참 어려운 분이다. 어릴 적부터 매사 본인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른 소리라 하시며 말씀을 하는데 그게 가슴을 후벼 판다. 결혼초 집사람과 같이 살았는데 어찌나 나에게 말을 심하게 하던지 끝내 나는 나의 가족들을 데리고 나올 정도였다.
보통은 집사람이 못 견뎌 나와야 정상인데 아들인 내가 못 견뎌 나왔다면 얼마나 나에게 심하게 굴었는지 알 것 같다. 몇 해 전에는 학교에서 문제가 생겨 내가 상담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학교에서 동료 간에 갈등이 깊어졌는데 전문 상담가의 첫 질문이 나의 어렸을 적 가정생활이었다. 역시 포인트는 어머니와의 관계였다. 본인이 생각했을 때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이 관철될 때까지 얘기를 하니 어렸을 때 가정에서도 바람 잘날 없었다. 대학시절 큰 병이 들어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께 평소에 궁금했던 것을 물은 적이 있다. 내가 어렸을 적 왜 그렇게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지. 아버지 말씀은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면 이해할 거라 말씀하셨다.
지난 주말에 텃밭에서 자란 감나무가 많은 수확을 얻어 집에 가져왔다 어떻게 할 줄 몰라 많이 상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께서 이번 주말에 또 감을 준다기에 이번에 가져오면 주위의 추천이 많아 감식초란 것을 담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어머니댁에 도착하여 즐거운 마음에 과일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려고 하는데 갑자기 감식초 얘기를 꺼내시며 나를 몰아붙였다. 감식초를 만들 수 있느냐?부터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데 하겠느냐? 등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문제를 나중에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했다.
"그럼 감 안 가져갈게요"라고 얘기했고 반가웠던 분위기는 급하게 냉각되기 시작했다. 대화는 무슨 대화 얼른 도망치듯 집을 나오며 나는 과연 누구에게 마음을 의지하지? 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보통은 부모님께 의지하며 사는 게 정상이라고 하는데 나는 어렸을 적부터 그러지 못했다. 도대체 의지를 못했다. 매사 이런 식으로 나를 몰아붙이고 본인 감정대로 말과 행동을 하는데 정말 지옥과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은 안 계신 아버님께서 말씀하신 게 이 부분인 듯싶다. 나도 편하게 의지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된다.
요 근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책에서 보았던 작고하신 백세희 작가와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보았던 부분이 생각난다. 작가는 어렸을 적부터 위축되고 수줍음이 많았다. 그런데 작가의 어머니께서는 "아휴, 아이가 수줍음이 많아요"라고 남들에게 얘기하며, 작가 스스로도 "제가 수줍음이 많아 그게 걱정이에요"라고 얘기하면 화를 냈다고 한다. 작가는 이 부분을 짧게 언급하고 끝냈지만 내가 보기에 작가의 어머니께서도 체면을 중시하는 모습이었다. 체면을 중시하는 부모는 아이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나 또한 아동학대 건으로 교육청에서 징계를 하겠다고 등기우편을 받았다. 곧 공무원징계위원회가 열릴 예정이다. 오죽했으면 친하게 지내는 후배가 내가 오늘 당장 잘못돼도 이상할 게 없다고 할 정도이니 내가 처한 상황이 외롭고 의지할 곳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였을까? 첫 상담받았을 때 상담선생님께 나에게 항상 내 마음 의지할 곳을 반드시 찾아야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집사람도 10년 전쯤 어떤 문제가 생겨 서먹서먹하여 의지할 수 없는 상황인데 나에게 도대체 의지할 만한 사람이 있기나 한지 궁금하다. 진짜 그때 상담선생님 말씀처럼 내가 의지할 무언가를 찾는데 에너지를 쏟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게 자연스럽게 나에게 올 수 있도록 잘 살펴보아야겠다.